‘보색’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상반되는 색이라는 건데요. 두 색이 합쳐지면, 무채색을 띠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얀색이나 검은색이 되는 거죠. 일상에서 보색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는, 노란색과 검은색이 서로 맞물려 그려지는 무늬입니다. ‘접근 금지’ 혹은 ‘위험’을 표시할 때 사용합니다. 안전사고와 직결되니, 가장 눈에 띄는 색을 사용하는 겁니다. 본래 노란색의 보색은 파란색과 남색 계열이지만, 일상에서는 명시성을 주시해서 검은색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참조: 나무위키)
상반되기 때문에 잘 보입니다.
바둑판의 돌도 검은색과 흰색인 이유가, 상반된 색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서로 보색은 아니지만, 상반되는 색이라, 깔린 돌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도 보색과 같은 관계가 존재합니다.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찾아보면 이런 관계가 많이 있을 겁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두 단어가 있는데요.
‘위기’와 ‘기회’입니다.
위기는 원하지 않지만, 기회는 원하죠. 이것만 봐도, 상반되는 개념인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죠? 상반되는 개념인데 상관관계인 것처럼 설명합니다. 왜 이런 말이 있을까요?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의미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위기가 닥치면 부정적인 마음이 먼저 올라오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떨칠 수 있는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인 거죠.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기회가 기회임을 알아차리는,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기회가 기회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원하는 방식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 생각대로 벌어지지 않는 상황을, 기회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정의한 기회가, 그건 아니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게 기회였네!”라고 깨닫게 됩니다. 기회는 위기 뒤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뒤에 숨어서 필요할 때는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사라집니다.
“강력한 시련은, 더 큰 기회를 찾도록 도와준다.”
이 말의 의미가 뭘까요? 위기를 돌파했던 때를 떠올려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던 방법이었습니다. 위기가 닥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니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때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방법인 거죠. 지금까지 얻지 못한 기회를 얻게 됩니다. 사람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위기 자체가 기회가 아니라, 위기를 통해 기회를 불러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공기’와 ‘물’에 대한 느낌과 같습니다. 평소에는 어떤가요? 있는지 없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일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공기가 부족해서 숨이 막히는 상황이 되면 어떤가요? 목이 타들어 갈 정도로 갈증이 날 때는요? 그것만큼 간절한 것도 없습니다. 생명과 직결되니까요. 사막에서 500mL 물 한 통을 천만 원 아니 일억에 판다고 해도, 팔릴 겁니다. 평소에는 그냥 치이던 그 물이요. 영화 <터널>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죠? 주유소에서 받은 물 두 통을 귀찮다는 듯, 뒷자리에 던져두었는데요. 터널이 붕괴해서 갇히자, 그 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절박할 때 공기와 물의 느낌은 어떤가요?
감사로 가득 찹니다. 깊은숨을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고, 물 한 모금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삶의 기회라는 겁니다. 감사할 기회라는 거죠. 일상을 감사해야 더 큰 것도 얻게 됩니다. 두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각각 사탕 하나씩을 줍니다. 한 아이는 시큰둥하게 받습니다. 한 아이는 사탕 한 봉지를 받은 것처럼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다음에 과자가 생기면 누가 생각날까요? 이것이 바로 감사의 힘 아닐까요?
어느 날 문득, 이런 묵상을 하게 됐습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지혜를 청했다면, 나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청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마주하는 위기가, 기회가 되는 순간인 거죠. 위기 자체가 기회는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기회가 됩니다. 기회를 지어는 삶을 살아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