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망치는 포비아 정치. 그림 - 생성형AI로 제작
이단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은 바로 ‘포비아’다. 포비아(phobia)는 ‘특정 대상, 상황, 활동 등에 대해 강렬하고 비합리적인 두려움이나 혐오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두려움과 혐오감이 함께 간다고 보면 된다.
이는 심리학적 용어인데 한국어로는 공포증으로 번역된다. 단순한 불편함이나 싫음과는 달리, 포비아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할 수 있으며, 공황 발작이나 회피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공포증에 걸리면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비논리적, 비이성적으로 변한다. 사회적 포비아 또는 정치적 포비아는 개인 또는 집단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 사람들을 비논리적으로 만든다.
베르나르도 키클러(Bernardo Kucinski)가 편집한 ‘포비아 조작하기(Manufacturing Phobias)’에는 사회적, 정치적 포비아를 "사회적·정치적 목표를 위해 조작된 공포"로 정의하며, 두려움이 권력과 통제의 도구로 사용되는 과정이 소개된다.
키클러 등에 따르면 포비아는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중을 분열시키고, 강압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된다. 미디어와 정치 수사는 이러한 두려움을 증폭시키며, 합리적 논의보다 감정적 반응을 우선하게 만든다. 키클러는 포비아를 자연 발생적 현상이 아닌 인위적 조작으로 규정한다. 포비아는 대중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단 사이비 종교 교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게 포비아가 작동하도록 심리 조작을 한다. 프랭크 푸레디(영국 켄트대 석좌교수)는 자신의 저서 ‘두려움의 문화(Culture of Fear)’에서 현대 사회가 공포를 상품화하고 이를 통해 권력자들이 대중을 통제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그는 이 책에서 ‘공포 정치’를 설명하면서 공포를 조금만 조장하고 강화하기만 해도 이것은 매우 유용하고 손쉬운 정치적 자원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리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일지라도 ‘포비아’에 걸려들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예를 들어, 어떤 이단 사이비 종교 교주가 “당신은 우리 집단에서 떠나면 자식이 아프거나 죽을 거야”라고 한다면 보통 “그걸 누가 믿고 빠져들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감정적인 연결이 되어 있는 상태의 리더가 그렇게 말하면 큰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단 사이비 종교에 빠질까’라고 질문을 하곤 하는데 ‘포비아’에 걸려들면 하버드대를 나오건 서울대를 나오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전광훈. 사진 - MBC PD 수첩
한국 정치 분야에서도 ‘포비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목사라고 불려지는 전광훈 씨다. 그는 어떻게 ‘포비아’를 이용할까. 그는 ‘빨갱이 포비아’를 이용한다. 더불어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면 온 나라가 다 붉게 물든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는 게 ‘빨갱이 포비아’다. 여기에는 공포심과 혐오가 섞여 있다.
13일 해병대자유통일추진본부가 윤상현 의원의 주도로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의 요지는 “해병대 400여명이 하루 전날 윤석열을 맹비난한 것이 마음에 걸려 반박하려고 나왔다”는 것이다. ‘국민 투표를 통해 뽑은 대통령을 대항해 그렇게 말할 수 있냐’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들에게 70대쯤으로 보이는 그들은 “(당신) 빨갱이 언론 아니지?”라고 물어보거나 “빨갱이들 때문에 상처 많이 입었다”라고 말하는 등 그들이 쏟아낸 핵심어는 ‘빨갱이’였다. 윤석열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어르신들에게 모두 ‘빨갱이’로 보이고 나라를 온통 공산주의로 물들게 만드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전광훈이 주장하는 핵심어와 세계관이 맞아 떨어져 너무 쉽게 연대를 이루게 된다.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6.25 전쟁을 겪었기에 ‘빨갱이 포비아’는 정치, 종교 리더들이 간편하게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빨갱이 포비아’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탄핵 소추 후 1차 체포 당시 많은 사람이 대통령 관저 정문 앞에서 연좌 농성을 했는데 그들은 대부분은 ‘빨갱이 포비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중에는 꽤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이 열리면 이재명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것은 곧 나라가 ‘공산화’되는 길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처절할 정도로 ‘윤석열 구하기’에 열정적이다.
그런 ‘포비아’가 이미 존재해 있고 포비아를 잘 이용하면 군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에 전광훈과 윤석열은 그것을 적절하게, 아니 철저하게 이용했다. 탄핵 반대 집회에 가보면 ‘빨갱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되는데 이는 군중의 마음을 집결하는 중요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포비아’와 커플처럼 묶이는 포비아는 ‘호모 포비아’다. 동성연애자를 극혐하는 포비아인데 역시 같은 집회나 극우 유튜버 채널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호모’ ‘동성연애자’ 등이다. 이것이 ‘빨갱이’와 커플이 되면 특정 그룹의 마음을 쉽게 살 수 있고 그들의 주머니는 쉽게 열리게 된다. 개신교와 ‘빨갱이 포비아’ ‘호모 포비아’를 유포하는 자들과 연합이 잘 되는 이유는 서로의세계관이 이 두 포비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포비아’가 적절하게 잘 섞일수록 군중의 수와 열정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슈퍼챗으로 돈을 많이 버는 유튜버들을 보면 ‘빨갱이 포비아’ ‘호모 포비아’ ‘중국 포비아’를 키워드로 사용한다. ‘중국 포비아’까지 가세하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함께 느껴지는 게 ‘중국 포비아’다.
세계적인 학자인 에드워드 허먼과 노엄 촘스키는 1988년에 쓴 책 ‘여론조작’(Manufacturing Consent)’에서 미디어가 공포와 위협을 과장해 표현하면서 특정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공포, 포비아는 한마디로 돈벌이와 명분 세우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부정 선거론을 주장할 때 자주 등장하는 나라는 북한과 중국인데 이는 ‘빨갱이 포비아’와 ‘중국 포비아’를 적절하게 융합시킨 자들이 사용하는 수법이다. 부정 선거를 주도한 자들이 북한과 중국이라는 주장이 펼쳐진다.
어떤 나쁜 일에 ‘북한’과 ‘중국’을 도입하면 금세 사람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호모 포비아’까지 끼어들어가면 팔로워들은 광분을 하게 된다. 광분하면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기 시작한다.
‘포비아’에 ‘미국’을 덧입히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미국은 60-70대 연령의 세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고 ‘메시아와 같은 나라’이고 대한민국을 강대국의 침략으로부터 영원히 지켜줄 나라로 여겨진다. 극우 세력들의 집회에서 성조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미국 이야기를 잠깐 하면, 도널드 트럼프가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중국 포비아’ ‘빨갱이 포비아’ ‘호모 포비아’ ‘외국인 포비아(제노 포비아)’ ‘이슬람 포비아’를 적절하게 잘 쓰기 때문이다. 5가지로 모든 사안을 돌려 막기 하면 지지 세력은 트럼프를 떠나지 않는다.
이 밖에 젠더 이슈를 다루는 사람들은 ‘젠더 포비아’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비기독교 국가에서는 크리스찬 포비아로 기독교인에 대한 혐오를 일으켜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함께 움직인다.
헨리 타즈펠과 존 터너(Tajfel & Turner, 1986)가 개발한 사회정체성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의하면 집단 간 갈등이 상대 집단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심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데 포비아에 한 번 걸리면 나중에 상대 집단을 괴물로 만드는 게 너무 쉽다. 과거 반공교육이 심했을 때 청소년들은 북한 사람들이 ‘괴물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포비아는 이렇게 인간에게 비뚫어진 마음을 안겨준다.
포비아에 걸려들면 사람이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갖게 되고 회피 행동이 심해지고 빠른 심장 박동, 발한, 떨림, 어지럼증의 현상도 일어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떤 20대 여성이 최근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에 나와 “제 아빠는 서울대 법대 출신인데 부정 선거를 믿으신다”라고 말했다. 그 여성의 아버지는 아마도 ‘빨갱이 포비아’ ‘중국 포비아’ 같은 것에 걸려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해당 여성이 소위 ‘커밍 아웃(탄핵 찬성)’을 하자 자신의 부친은 너무 진지하게 ‘연을 끊자’고 했다고 한다. 심지어 부친의 생각에 동의하는 엄마도 똑같이 말했다고 했다. 지금도 부친과 서먹서먹하게 지낸다고 그 여성은 덧붙였다.
포비아는 이렇게 심각하다.
공포심과 혐오를 사용하는 것은 사회를 망치는 일이지만 돈을 쫓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도구가 된다.
‘포비아’를 잘 활용한 사람은 바로 전두환이었다. 전두환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회 혼란’과 ‘북한 개입설’을 부각하며 사회적 포비아를 조성했고, 이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언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중의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정당화되었다.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자신도 대학에 들어가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공포 정치’와 ‘가짜뉴스’의 마수에 넘어가 ‘광주 시민을 폭도로 여겼고 그들을 욕하곤 했다’고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한 바 있다.
저명한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론(State of Exception)’에 따르면, 권력자는 공포를 이용해 법적 예외 상태를 만들고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려고 한다. 전두환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고 최근 비상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도 ‘예외 상태’를 만들고자 부던히 애를 썼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뜬금없게’ 느껴지는 계엄령을 선포한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예외 상태’에는 공포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래서 윤석열은 북한와 러시아를 자극하면서 공포스런 전쟁의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공포를 활용한 ‘예외상태’의 남용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불신과 민주주의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위에 거론한 것처럼 포비아는 대중을 통제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며, 민주적 가치와 시민의 권리를 잠식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된다.
민주사회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정당, 단체가 조장하는 공포의 진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예외상태가 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의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번 비상 계엄사태로 윤석열을 탄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견제와 균형의 체제를 더 강화킬 수 있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약화시키는 시스템을 위한 개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윤석열보다 더 잘할까.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이재명도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자칫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잠재성이 있다. 그 어느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비슷할 것이다.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이번 기회에 잘 갖춰지고 ‘포비아’에 기대어 사람들을 컨트롤하는 정치인들이 발붙일 곳에 없게 만들기를 막연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