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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 직감, 즉 ‘gut feeling(겉 필링)’이 발동하는 순간이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필자의 이성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원치 않았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감이 아니었으며, 대선 막판까지도 그의 승리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암살의 위기에서 살아남았을 때, 그리고 미국에 거주하는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눈 순간, 나의 '겉 필링'은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주었다. 이성은 끝까지 원치 않았지만 그 직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졌고, 결국 현실이 되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보면서 나는 비슷한 ‘gut feeling’을 가지게 됐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그에 대한 나의 태도는 트럼프에 대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재명 대표는 트럼프처럼 사법 리스크가 많고, 여러 논란 속에서도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형수를 향한 욕설, 경기도지사 시절의 의혹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재명 관련 서적을 집필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천사조차 받지 못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등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아갔다. 그러나 2024년 초, 그가 칼에 찔렸지만 생명선을 살짝 비켜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의 ‘gut feeling’은 본격적으로 작동했다. '아,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겠구나'라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극적으로 구속 수사가 기각되었던 때에도 유사한 직감이 발동한 바 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나의 ‘gut feeling’은 이재명의 당선을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는 이재명의 당선을 원치 않으면서도, 본능적으로 그의 승리를 예감하는 이 복잡한 감정은 트럼프 때와 유사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한민국은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는 더는 필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는 어찌됐든 꾸역꾸역 올라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보이기에 어떤 대통령이 되는지에 기자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취재하면서 그 점에 집중해 그의 발언과 행동을 분석했다.
그리고 내 안에 생긴 질문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어떤 리더십을 보여야 할까?'였다. 지금 많은 사람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에 그가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나라가 그나마 좋은 나라가 될지 생각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을 한 후에 필자는 그가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을 닮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범호 감독이 취임했을 때, 고참 선수들은 “감독님은 가만히 있으면 된다”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조언했다고 한다. 이범호 감독은 그들의 말을 존중해 “정말 가만히 있었더니” 고참 선수들이 알아서 팀을 운영했고, 그 결과 팀의 분위기가 좋아져 결국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가만히 있다’는 것은 방관이 아니라, 잘되는 부분을 흐름대로 두고 감독이 간섭하지 않고 필요한 조율만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한국 대통령들은 지나치게 많은 분야에 개입하려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데도 깊숙이 개입하면, 오히려 시스템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99%를 자신이 발언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직접 결정을 내리는 구조에서 비전문가의 결정에 의해 국가 행정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을 닮아 경제부총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교육부 장관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국방부 장관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이는 대통령의 말을 잘 듣는 장관이 아니라,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대통령처럼 행정할 수 있도록 하면 '선군'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통령은 전체적인 조율을 맡고, 각 부처의 전문가들이 자율적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독재자로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딱 하나 칭찬 받을 일을 한 게 있다. 바로 김재익 경제수석을 ‘경제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일. 김재익은 한국 경제의 급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경제 정책을 대통령이 아닌 전문가가 주도한 좋은 사례로 남아 있다. 이재명이 만약 제2, 제3의 김재익을 발굴해 그들에게 최대한 권한을 주고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범호 리더십을 닮아 성공하는 길이다.
문제는,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잘 알려진 이재명이 과연 이런 종류의 리더십을 구현할 수 있을지다. 김재익의 사례가 있기에 '좋은 리더'를 발굴해낸다면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재명 행정부는 역대급 정부로 기록될 수 있다.
생성형 AI로 만든 그림.
Gut Feeling 이란
영어로 gut feel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직역하면 "내장(장기)에서 오는 느낌"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의미는 직감, 육감, 본능적인 느낌을 가리킨다.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경험이나 감각에 의해 자연스럽게 드는 강한 느낌이나 예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I have a gut feeling that something is wrong.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든다.) 또는 Trust your gut feeling—it’s usually right. (직감을 믿어, 보통 맞는 경우가 많아.)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intuition(직관)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gut feeling은 더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감각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