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매회 반복)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서울. 이곳은 한때 민주주의의 심장이었으나, 이제는 차가운 군홧발 아래 신음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자유를 위해 싸워온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정당한 권력은 폭력으로 대체되었고, 국회와 언론은 무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뀌던 날이었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국회의사당은 군인들에 의해 봉쇄되었고,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총구 앞에서 무력했다. 언론은 무너졌고, 방송국은 계엄군의 손에 넘어갔다. 거리는 침묵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숨죽이며 다가올 날들을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는 침묵 속에서도 움직인다. 무너진 국회와 억눌린 언론 뒤편에서, 자유를 향한 작은 불씨가 살아남아 있었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은 저항자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며, 한 시대의 비극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침묵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역사는 이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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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저항과 침묵의 거리
12월 4일 새벽, 서울의 거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새벽부터 짙은 안개가 깔렸고, 차가운 공기가 도시를 감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서늘한 것은 사람들의 침묵이었다. 처음에는 강력히 저항했으나 계엄군이 강력히 제압하면서 기세는 완전히 꺾였다.
모든 방송국은 계엄군의 통제 아래 놓였다. KBF에서는 대통령의 지난 활동을 미화하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명품백을 '쪼만한 백'이라고 말했던 KBF의 박순범 사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계엄령 발표 이후의 공식 성명만 반복적으로 송출됐다. 주요 언론사 기자들은 연행됐고 특히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 편집장과 기자들은 연행되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계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사람들도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진보 유트버들은 새벽까지 비판을 가했지만 유트브도 곧 접속이 차단됐다.
오전 7시, 서울 전역에서 시민들의 소규모 저항이 일어났다. 홍대와 강남, 국회앞, 광화문에 시민들이 모여들어 계엄령 철회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계엄령을 해제하라!" 저항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높아졌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총을 든 무장한 계엄군과 경찰 특수팀이 출동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바로 연행되었고, 무력 진압이 가해졌다.
“잡아! 저항하면 바로 제압해!”
한 경찰 지휘관이 외쳤다.
경찰 방패에 밀려 땅에 쓰러진 시민들은 그대로 연행되었다. 오전 9시, SNS가 끊긴 상황에서 인터넷 검열은 더욱 강화되었다. 정부는 포털 사이트 세이버와 더움을 통해 ‘국가 안정과 국민 안전을 위한 협조’를 요구하며 모든 반정부성 기사를 삭제했다. 각 언론사 웹사이트 기사도 검열되기 시작했고 삭제로 이어졌다. 오직 윤석준의 메시지와 정부의 입장만 보도될 수 있었다. 진보 언론 기사는 이미 삭제되었고 이틀전 기사만 메인 화면에 떠 있었다. 보수 언론은 소위 '정부 빨아주는 기사'만 계속 올렸다.
과거 전두광 쿠데타 직후 한국 언론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SNS뿐만 아니라 유트브, 키키오톡 같은 주요 플랫폼도 정부 감시망 아래 놓였다. 키키오톡 화면 상단에는 '반정부 메시지를 교환하는 것을 금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해외 뉴스 사이트 접속이 차단되었고, 시민들은 정보가 통제된 세상 속에서 갇혀 버렸다. 디지털 세상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그나마 톨레그램으로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서 톨레그램의 한국 가입자가 하루 만에 1천 만명이 넘었다고 이 회사는 발표했다. 그러나 윤 정부는 톨레그램의 접속을 끊어버릴 것을 고심했다.
광장에서의 시위는 점차 줄어들었다. 계엄군의 존재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고, 거리 곳곳에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시민들은 침묵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작은 속삭임조차 감시당하는 느낌이었다. 포고령에 집회를 할 수 없다고 나왔기에 시위대는 속속 연행되기 시작했다.
강제 연행된 사람들은 계엄군이 운영하는 비밀 시설로 끌려갔다.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사람들은 이미 체포돼 구금되어 있던 정치인,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그리고 단순히 저항의 목소리를 낸 일반 시민들의 체포대열에 합류했다.
비밀 시설은 C1 벙커로 불렸다. 시설 내부에는 무채색 벽과 쇠창살이 이어졌고, 곳곳에서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전등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공간, 어둠 속에서 군인들이 서 있었다.
“이름과 직업을 말해라.”
쇠창살 앞에 선 군인이 명령했다.
“난… 김민성 기자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목소리를 냈을 뿐이야.”
20대 젊은 기자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군인은 조용히 손짓했다. 이어진 것은 둔탁한 타격음이었다.
도시는 조용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언론은 통제당했으며, 거리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모든 활동은 통제됐다. 국회의사당에 있던, 그리고 진입하려고 했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체포돼 계엄해제 표결도 할 수 없었다. 윤석준 대통령은 비상회의체를 구성하려고 분주했다. 최덕만 경제부총리에게 새벽에 재정을 마련하라고 명령했고 비상회의체 재정은 이날 오전에 F4 회의를 통해 마련됐다. 비상회의체는 의회를 대신하는 협의체다.
대한민국은 침묵의 나라가 되었다. 불법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저항이 서서히 움트고 있었다.
포고령 1호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 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 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김영철(50대)은 스마트폰에 뜬 포고령을 읽었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정당 활동 금지라니… 민주주의가 끝났군.”
옆에서 함께 포고령을 읽은 김영철의 20대 아들 김민수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 “이게 말이 돼요? 집회조차 금지한다고요? 이건 독재예요! 교과서에서나 보던 일을 우리가 겪다니…”
아내 정미선(50대)은 손가락을 입술에 올리며 말한다. “제발 조용히 해요. 군인들이 들으면 큰일 나”
할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이라 병원에 와 있던 이 가족은 병원에서 의사들이 분노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을대병원의 한 전공의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전공의들이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된단다" “의사들을 완전히 몰아세우네. 우린 다 죽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 이정수(60대)는 포고령을 읽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국가세력? 누가 반국가세력이야?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났는데 계엄선포하는 게 반국가세력 아니야? 전쟁도 사변도 없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광장의 스피커에서는 계속해서 계엄군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재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이므로, 모든 시민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법 집회 및 선동 행위는 엄중히 처벌될 것입니다.”
한쪽에서 고개를 떨군 노인이 중얼거렸다. “이 나라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갔구나…”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거리에는 말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누구도 크게 소리 내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침묵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추영숙 의원은 계엄령이 포고됐을 때 마침 일본에서 열린 한 정치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서둘러 한국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국회의원들이 모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투쟁을 위해 일본에 남았다. 그는 도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톨레그램으로 전해지는 메시지를 일본 언론들과 전 세계 언론에 전했다. 이곳에는 전 세계 언론사 기자들이 모두 집결했다.
뉴욕에서 온 한 기자가 영어로 물었다.
"윤석준 대통령은 왜 비상계엄을 한 겁니까?"("Why did President Yoon Seok-jun declare martial law?")
추영숙 의원은 답했다.
"원래 그렇게 독재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일이 안 되면 저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경고를 했어요. 이전 대통령이 그를 검찰총장으로 뽑아준 게 실책입니다. 결국 나라가 윤 대통령으로인해 엉망이 됐습니다. 현재 민주주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차단시켜버렸어요. 대한민국을 도와주십시오." ("He has always had a dictatorial mindset. If things don't go his way, he makes extreme decisions like this. I've been warning about this for a long time. It was a mistake for the previous president to appoint him as Prosecutor General. In the end, the country has been thrown into chaos because of President Yoon. He has blocked everything that can be done in a democracy. Please help South Korea.")
추 의원의 기자회견은 CNN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