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매회 반복)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서울. 이곳은 한때 민주주의의 심장이었으나, 이제는 차가운 군홧발 아래 신음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자유를 위해 싸워온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정당한 권력은 폭력으로 대체되었고, 국회와 언론은 무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뀌던 날이었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국회의사당은 군인들에 의해 봉쇄되었고,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총구 앞에서 무력했다. 언론은 무너졌고, 방송국은 계엄군의 손에 넘어갔다. 거리는 침묵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숨죽이며 다가올 날들을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는 침묵 속에서도 움직인다. 무너진 국회와 억눌린 언론 뒤편에서, 자유를 향한 작은 불씨가 살아남아 있었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은 저항자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며, 한 시대의 비극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침묵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역사는 이를 기억할 것이다.
제9장 국제사회의 압력
2025년 1월 1일, 새해 첫날. 대한민국, 서울.
계엄령이 선포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거리의 잔해는 치워졌지만,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정부의 ‘안정과 재건’은 공염불처럼 들렸다, 그 이면에는 공포와 억압이 짙게 깔려 있었다. 계엄군은 공식적으로 해산되었지만, 서울 곳곳을 감시하는 비공식 병력과 정보기관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계엄군은 국회의 계엄해제 요청에 의해 해제되지는 못했다. 151명이 해제 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라가 이렇게 쑥대밭이 되었어도 여당 의원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신을 위한 주판알만 튕기고 있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해 윤석준 대통령 스스로 계엄을 해제했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윤석준 대통령의 선언 아래, 정부는 경제 부흥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외국 자본은 빠르게 유출되었으며, 국제 제재가 가해지면서 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거슬러 올라가, 2025년 12월6일.
약 한 달 전, 지하 시민 조직들이 목숨을 걸고 퍼뜨린 영상과 문서들은 국경을 넘어 해외 언론과 인권 단체에 도달했다.
충격적인 영상에는 계엄군이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하는 장면, 고문을 당한 시민들의 증언, 그리고 실종된 이들의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유엔은 즉각적인 긴급 조사위원회를 조직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대한민국 내에서 자행된 전쟁범죄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윤석준 정부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특히 미국은 ‘주한미군 개입’ 카드까지 검토하며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는 윤석준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해외로 탈출한 반정부 인사들은 각국의 외교 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폭정을 고발했다.
“윤석준을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
외국 언론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붕괴를 집중 보도하며 국제 사회의 적극 개입을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사실상 내전 중인 한국 내 정세를 예의주시한 강대국들은 내부적으로 개입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외부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계엄 정부 내부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계엄령 강경 진압을 주도했던 군 지도부 사이에서는 불안한 기류가 감돌았다. 일부 군부 인사들은 국제 제재와 외교적 고립을 우려하며 윤석준에 하야를 촉구했지만, 윤석준은 침묵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장군들을 요직에서 해임했고, 반란 가능성이 있는 군 내부 조직들을 감시했다.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켰다.
대통령 주변에서도 권력 투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일부 고위 관료들은 이미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었고, 일부는 미국과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군 내부에서는 ‘윤석준을 사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마저 흘러나왔다.
한편, 시민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한때 침묵 속에 머물렀던 거리 곳곳에서 작은 저항의 불씨가 타올랐다. 광화문에서 응원봉과 촛볼이 켜지자, 이를 본 시민들이 하나둘씩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우리는 잊지 않았다.”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지하로 숨어들었던 대학생, 노동자, 그리고 반정부 세력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가 공유되었고, 벽보가 붙었으며, 곳곳에서 ‘붉은 새벽’을 외치는 낙서가 발견되었다. 시민들은 점점 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한 시민 리더가 말했다. "평화 시위하던 시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는 게 제대로 된 대통령인가. 이 사람 제정신이 아니다." "완전 미친놈이다. 어떻게해서든 강제로라도 끌어내려야 한다." 옆에 있던 다른 리더가 답했다.
최후의 선택
2025년 1월 1일, 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내부 불안 속에서 마침내 반군 지도자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경제는 붕괴 직전이었다. 정부는 협상을 통해 시간을 벌려 했고, 반군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협상장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부 대표단 맞은편에는 해외에서 망명 활동을 해온 반군 지도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는 책임을 묻겠습니다.”
반군 지도자 중 한 명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엄으로 인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고문당했고, 실종되었습니다. 윤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윤석준 정부 측 대표는 침묵했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타협을 원하는 세력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 내부에서도 점차 윤석준의 리더십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협상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반군은 계엄 책임자들의 처벌과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한편, 미국과 유엔은 협상의 중재자로 나섰으며, 정부가 강경 노선을 유지할 경우 추가적인 경제 제재 및 국제 군사 개입 가능성까지 암시했다.
결국, 협상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대한민국은 결코 이전과 같은 나라가 아니었다.
이미 국회의원 149명이 세상을 떠났고 시민, 반란군 수천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수만 명에 이르렀다. 의료대란 때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은 자발적으로 병원으로 복귀해 부상자들을 치료했지만 의사의 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주요 야당 지도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운명적으로 일본에 있던 추영숙 의원이 거의 유일하게 남았고 그가 야당측 지도자 역할을 했다. 추 의원은 여당 의원들을 설득했지만 계엄해제 표결로 이끌지는 못한 바 있다.
"나라가 엉망이 되었어도, 여당 의원들은 자기 안위만 생각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추 의원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당 정치는 사실상 멈춰버렸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여당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그것은 국제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준 스스로 계엄을 해제했지만 그가 시도한 것은 불법 계엄이 분명했고 그는 내란뿐만 아니라 내전을 일으킨 전범이라는 손가락질을 국내와 전 세계에서 받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불편한 관계였던 추영숙 의원과 윤석준 대통령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하야 하시죠. 국제 사회가 더는 윤 대통령을 참지 않을 겁니다." 추 의원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윤석준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하야 하지 않으시면 주한미군, 유엔군이 동원되어 강제 하야 되실 겁니다. 이미 내란범, 전범으로 국제사회는 평가하고 있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겁니까?"
윤석준은 별 말이 없었다. 그는 독재체제를 구축하고자 계엄령을 선포했고 아내인 김숙희를 통일 한국의 대통령으로 세우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 자신보다 한유정이가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술사들이 옆에서 그런 얘기를 해줬다. 한유정이 통일 한국의 대통령이 될 거라고.
윤석준과 한유정은 늘 주술사를 옆에 끼고 살았다.
이들의 헛된 욕망이 사실상 선진국이었던 나라를 후진국으로 만들었다. 주식 시장은 폭망했고 내수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수출도 막혔고 일반 시민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대통령 부부가 나라를 망쳐놓았다. 역대급 폭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