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윤석열 정부는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119대 29로, 한국이 사우디에 완패했다. 부산은 리야드에 완전히 무너졌다.
완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2030 엑스포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국민 담화에서 “96개국 정상과 약 150차례 만났고, 수십 개국 정상과는 직접 전화 통화도 했지만, 민관 접촉을 통해 파악한 분위기와 실제 결과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당시 영국 매체 ‘디 아티클(The Article)’은 엑스포 유치국 발표 하루 전,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사우디의 인권 유린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기록을 고려할 때, 리야드가 2030년 세계 박람회 개최지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인권 유린의) 야만성에 대해 눈을 감게 하는 것은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리야드는 인권 유린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10대 선진국에 속하는 한국, 문화 강국인 한국을 기술, 아이디어, 미래 관점에서 압도했다. 그 차이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부산의 프레젠테이션은 사우디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했다.
아래 두 영상을 비교해보라. 어떤 차이를 볼 수 있는가?
부산 엑스포 영상은 Transforming Our World, Navigating Toward a Better World(세상을 변화시키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항해하기)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지만, 메시지는 구체성이 부족했고 단지 비전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쳤다. 만약 필자가 표를 주는 입장이었다면, 감동도 유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리야드 엑스포 영상은 변화된 세상과 더 나은 미래를 시각적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우리는 과거를 자랑하며 미래는 보여주지 않은 채 구호만 외쳤고, 리야드는 실질적인 변화를 영상으로 전달했다. 이는 단순한 오일 머니의 힘이 아니라, 세계관과 상상력에서 밀렸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사막 위에 세워진 미래 도시와 기술은 영상 속에서 생생히 드러났다. 개발도상국 대표단은 ‘우리도 저렇게 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 미래학자는 당시 미래교육 관련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는 우리 내부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이 현상을 진영의 문제로 치환하는 해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이 가진 거버넌스는 진영 갈등을 넘어서 문화적 문제다. 사우디의 프레젠테이션은 ‘foresight(선견지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이는 미래를 다각도로 상상하고 준비하려는 문화적 태도다. ‘foresight’는 열린 미래 예측이다. 미래가 다양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음을 지식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이를 문화적으로 수용해 미래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는다. 즉, 열린 미래를 인식하고 함께 열어가겠다는 의미다.” 그는 결론지었다. “한국은 미래가 없었다. 한국의 엘리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부산 엑스포 발표에서도 ‘미래’라는 단어는 존재했지만, 실제로 미래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우디는 세계관과 상상력 측면에서 부산을 압도했다. 자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였다.
세계관은 ‘어떤 지식이나 관점을 바탕으로 세계를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나 틀’이다. 한국이 과거 지향적 세계관을 보여줬다면, 사우디는 미래 지향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사우디의 영상은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했고, 매우 실질적이었다.
사우디는 영상을 통해 관객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했고, 부산은 미래를 도무지 그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10일, 공교롭게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 출정을 각각 영상과 국회에서 발표했다. 이재명 대표는 영상을 통해, 한동훈 대표는 수백 명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했다.
두 전 대표의 발표를 보며 필자는 자연스럽게 2023년 엑스포 유치전을 떠올렸다. 이재명 전 대표의 발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렇게 설계되겠구나’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사우디의 프레젠테이션과 닮아 있었다. 반면, 한동훈 전 대표는 수많은 공약을 나열하긴 했지만, ‘저 일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만 들게 했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좋은 말 잔치’에 그쳤다.
이재명 전 대표는 차분하게,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자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미래를 찬찬히 그려냈다. 반면 한동훈 전 대표는 지지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만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한 가지는 있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악당처럼 묘사되었다는 것’
수많은 공약을 제시했지만 왜 그 이미지만 남았을까. 이는 한 전 대표가 쏟아낸 수많은 공약들에 대해선 ‘그가 과연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당을 잡는 능력은 그가 검사 시절부터 보여준 대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학습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전 수많은 공약을 남발했지만 지켜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는 이재명과 민주당을 적대시하며, 결국 뜬금없는 계엄 시도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아쉽게도 한동훈과 윤석열 사이에 큰 차이는 없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들에게는 국가 경영을 위한 콘텐츠가 없고, 악당을 때려잡는 콘텐츠만 가득했다. 또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도울 유능한 인재도 주변에 부족했다. 이런 이들이 아무리 다양한 공약을 내세워도,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그것이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지기는 어렵다.
아래 두 영상을 보면, 필자가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 보다 선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훈은 윤석열과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보다 한동훈 전 대표가 조금 더 열려 있고, 조금 더 정의롭다는 인상은 있었으나, 콘텐츠 면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오늘 나열한 공약들은 차기 대선에서는 현실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려면 다음 대선 때까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