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법사 및 민주주의 전통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귀연 판사의 일련의 결정은 '사법의 독립'과 '공개재판의 원칙', '법의 지배(rule of law)'에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재판의 비공개 처리, 형평성을 해치는 절차 운용, 그리고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법 해석은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된다.
1. ‘공개재판의 원칙’ 위배
서양의 헌법 전통에서 가장 강하게 자리 잡은 원칙 중 하나는 공개재판(open trial)의 원칙이다. 이는 영국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 미국 수정헌법 제6조, 유럽인권협약 제6조 1항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공개재판은 권력 남용 방지, 재판의 공정성 확보, 국민의 사법 감시 권한 실현을 위한 헌법적 기둥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의 윤석열 탄핵 재판을 녹화 중계로 지켜보면서 공개재판의 효용성을 경험한 바 있다.
“Justice should not only be done, but should manifestly and undoubtedly be seen to be done.
정의는 실현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실현되는 것으로 명확하게 보이기도 해야 한다.”
— 영국, 서섹스 재판소 사건, 1924년(1924)
영국 대법원은 이 판례를 통해 “정의는 실현되는 것뿐만 아니라, 실현되는 것으로 보여져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지귀연 판사의 비공개 재판 결정이 얼마나 심각한 법적 일탈인지 서양 법 전통에서는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지점이다. 지귀연 재판은 정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대한민국법원은 재판공개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법원이 공개적으로 절차를 수행해야 한다는 요청을 의미한다. 그 의의는 심리와 판결을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국민 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데 있다. 재판공개원칙은 민주 적 법치국가 원리의 구현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주석, 서용성, 이단비가 사법정책연구원 2023년 2월호에 발표한 「재판공개원칙의 현대적 의미와 한계」 논문에 따르면, 서구 주요국들은 각기 다른 법체계를 갖고 있음에도 재판의 공개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 원리로 간주하고 있다.
세 저자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기본법(Grundgesetz)에 재판공개에 대한 명문 규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민주국가와 법치국가의 원리와 결부하여 재판공개의 원칙을 사실상 헌법적 수준에서 보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국민의 사법 감시권과 재판의 투명성을 민주주의 질서의 본질적 요소로 인식하는 독일 헌법해석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프랑스 역시 헌법 조문에 직접적인 명시는 없지만, 재판공개원칙은 헌법적 가치로 이해되며, 이는 시민의 알 권리와 권력 감시 기능이 재판을 통해 실현돼야 한다는 프랑스 공화주의 전통을 반영한다.
영국은 불문헌법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재판공개는 오랜 법률 전통 속에서 관습헌법 수준의 지위를 지닌다. 재판의 공개는 사법부의 신뢰를 확보하는 기본 전제로 간주되며, 단지 성문 규정이 아닌 보통법(common law)과 법원의 재량, 성문법의 예외 조항에 근거해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비공개가 허용된다.
이처럼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재판공개를 단순한 절차적 요소가 아닌, 시민의 권리이자 권력 분립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공개재판의 원칙을 훼손하는 어떤 결정이든, 그것은 민주주의적 정당성과 사법의 독립성을 동시에 침식시키는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2. 형벌 회피의 우려: 일사부재리 원칙의 남용
만약 지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일사부재리(Double Jeopardy) 원칙에 따라 내란죄에 대한 재판은 불가능해진다. 이는 미국 연방헌법 수정 제5조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오직 적법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쳤을 때에만 이 원칙이 존중된다.
하지만 절차적 정당성(procedural due process)이 무너진 채 권력과 결탁된 판단이 이뤄졌다면, 이는 더 이상 ‘정당한 재판’이 아니라 사법의 오염된 결정으로 간주되며, 정치적 기소 남용이나 면죄의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서방의 법학자들은 이를 사법 쿠데타(judicial coup) 또는 사법적 방조(judicial collusion)로 규정한다.
“When courts become the shield for political impunity, the very idea of justice collapses.
법원이 정치권력의 면책을 위한 방패가 될 때, 정의의 개념 자체는 무너진다”
— 토머스 캐로더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사법 쿠데타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는 법원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민주헌정질서를 유린할 때 발생하는 실제적 헌정위기이며, 세계 각국은 이를 헌법·형법·국제법의 틀 안에서 실질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은 부당한 재판을 내린 판사를 탄핵하거나 연방 검찰이 기소에 나선다. 독일은 ‘법왜곡죄’(Rechtsbeugung)를 형법으로 규정하고, 헌법재판소가 판사의 파면을 결정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독재 정권에 협력한 법관들을 형사법정에 세우는 데까지 나아갔다. 반면, 한국은 인혁당 사건, 조작간첩 사건 등 수많은 재심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그 판결을 만든 사법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법적 책임의 공백이 존재한다.
사법 쿠데타보다 더 교묘한 위협은 사법적 방조(judicial collusion)다. 이는 판사가 법의 외피를 입고 정치권력의 범죄를 침묵으로 통과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재판을 통해 불법을 합법으로 포장하고, 무책임을 법적 판단으로 둔갑시킬 때, 사법은 본질을 상실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재판이 그렇게 흘러가는 분위기다. 구속기간을 시간단위로 환산해 석방을 허용하고, 공판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재판 촬영을 불허하는 결정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절차적 일탈은 ‘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의 침묵일 수 있다.
우리는 묻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그리고 다시 묻는다. “지금은 안전한가?” 과거보다 법원은 더 독립적이고, 헌법은 인권을 더 넓게 보장하며, 시민은 더 많은 권리를 알고 있다. 하지만 사법이 과거의 오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기억의 부재는 반복의 조건이 된다. 독일이 나치 시절 법원과 판사의 침묵을 끝없이 되짚은 것은 그런 이유다. “그때도 법대로 했다”는 변명은 역사의 법정에서는 유효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형법은 이미 사법의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탄핵, 징계, 형법상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국가배상청구권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법적 책임을 묻는 구조가 제도적으로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방치된다면, 사법은 권력의 안전망이 될 뿐이다.
더 이상 ‘중립’이라는 알리바이로 침묵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법의 침묵은 때때로 불의를 향한 명백한 동조다. 우리는 지금, 사법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용기,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 그리고 시민의 감시 속에서 서야 할 의무를 되새겨야 한다. 정의는 단지 판결의 문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판결을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권력에 대해 내리는가에 따라 증명된다.
사법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그러나 그 보루가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 공동체는 법적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법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출발은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법에게 다시 묻는다. 그 침묵은 중립이었는가, 아니면 방조였는가. 법이, 아니 지귀연이 답을 할 차례다.
3. 민주주의 통제기제로서의 사법
비교헌법학과 비교정치기구론의 권위자인 카를 뢰벤슈타인(Karl Loewenstein)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비교하며, 전체주의가 사법을 ‘정권 정당화의 도구’로 전락시킬 때 민주주의는 사법을 ‘정권 견제의 기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지귀연 판사의 결정이 대통령 권력과 맞물려 있다면, 이는 사법 독립의 포기이자 권력의 연장선으로서의 재판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대법원이 닉슨의 녹음자료 공개를 명령하며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United States v. Nixon, 1974) 이는 사법이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제한하는 존재임을 보여준 결정적 장면이었다.
4. 사법 권위의 붕괴와 역사적 책임
지귀연 판사의 반복된 절차 왜곡과 비공개 결정은, 사법 신뢰(trust in judiciary)를 훼손하며, 이는 민주주의 질서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서양 법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종종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The death of democracy is not a coup, but the slow erosion of institutions.
민주주의의 죽음은 쿠데타가 아니라, 제도들이 서서히 부식되는 데서 시작된다”
—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오늘의 재판이 정치적 방패가 되고, 내일의 역사책에서 그 이름이 “법복을 입은 권력의 동반자”로 기록된다면, 그것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헌정 체계의 붕괴 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서양의 민주주의 전통과 헌법 원칙을 투영해 보면, 지귀연 판사의 결정은 ‘공개재판의 원칙’, ‘절차적 정당성’, ‘사법의 독립’이라는 핵심 축을 위협한다. 이는 단순한 법률적 논란이 아닌 정치-사법 카르텔의 형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직결되며, 그 결과는 역사의 법정에서 ‘법을 가장한 정치적 면죄부’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의 침묵은 내일의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반드시 이름을 남긴다.
지귀연,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내 법 전문가들도 지 판사를 거칠게 비판했다.
지 부장판사의 이름은 이제 단순한 법관 명부의 한 줄을 넘어, 민주주의와 헌법의 경계선에서 그 무게를 지닌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재판을 맡아 내린 일련의 결정들—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하여 석방을 허용하고, 재판 촬영을 전면 불허하며, 재판 자체를 비공개로 전환한 조치—이 모든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사법의 근간을 뒤흔들었다고 국내 법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박판규 변호사는 “지귀연과 심우정, 윤석열 짝짜꿍 재판”이라는 날카로운 표현으로 이 사법절차의 위험성을 고발했다. 지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고, 심우정 검사가 항소를 포기할 경우 윤 전 대통령은 내란죄에 대해 영원히 처벌받지 않게 된다.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이들의 과거 결정 패턴에서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박 변호사는 이 위험을 ‘음모론’이 아닌 법적 정합성과 일관성의 붕괴로 간주한다.
신인규 변호사는 지 판사의 결정이 법리적 객관성이 아닌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기울어졌다고 분석했다. 촬영 불허 결정은 과거 박근혜, 전두환, 이명박 등의 사례와 명백히 비교되며, 형평성의 원칙을 허물었다. 무엇보다 구속기간 산정 방식에서의 ‘분단위 계산’은 실무관행을 외면한 초법적 판단이다. 공수처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그는 지 판사에게 “투아웃”을 선언했다.
김경호 변호사는 더 나아가 지 판사의 재판 비공개 결정을 ‘헌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헌법 제27조 제3항은 형사재판의 공개를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법원조직법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 판사의 비공개 재판 결정은 국가안보나 군사기밀 보호라는 예외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채, 사실상 윤석열 개인의 정치적 안전을 위해 사법의 벽을 높인 셈이다.
송요훈 전 MBC 기자는 이를 “합법적 탈옥”이라고 표현하며, 그간의 재판 절차가 외부 요청에 의한 ‘주문형 결정’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윤 전 대통령이 중대한 헌정질서 파괴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 판사의 결정은 그를 마치 평범한 피고인으로 포장하며 예우하고 있다. 송 전 기자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재판”이라며 지 판사의 사퇴를 촉구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재판을 이어간다면, 그의 이름은 법관의 이름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헌법을 무너뜨린 자의 이름, 사법의 탈을 쓴 정치의 동반자로 남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침묵은 내일의 기록이 된다. 지귀연은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기록은 법복 너머의 책임을 잊은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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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itsky, Steven & Ziblatt, Daniel. How Democracies Die. Crown Publishin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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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Carothers, “The Rule of Law Revival.” Foreign Affairs, March/April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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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v. Nixon, 418 U.S. 683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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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v. Sussex Justices, ex parte McCarthy [1924] 1 KB 256
-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Articl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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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Constitution, Sixth Amend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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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Loewenstein, Political Power and the Governmental Process, 1957.
-
Kim, Joo-seok, Seo, Yong-seong, & Lee, Dan-bi. “재판공개원칙의 현대적 의미와 한계 (The Contemporary Meaning and Limitations of the Principle of Open Trials).”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 Vol. 2023-2, Judicial Policy Research Institute, February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