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김문수 지지를 선언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오른쪽)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 NjT
하버드도 그러더니 이번에는 옥스포드도 그러네?
22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장을 찾은 기자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출신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20원 커피"에 대해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120원 커피'는 완벽히 문맥/정황을 무시한(out of context) 발언인데 세계적인 명문대 출신 박사가 그 말을 하니 기자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세계적인 대학 하버드대 출신과 국내 최고의 대학 서울대 출신들이 줄줄이 120원 커피 발언을 해 적잖이 실망했는데 오늘 손학규 전 지사의 말을 듣고 '도대체 저들은 왜 저럴까'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기자는 종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명문대를 나온 소위 엘리트들은 왜 컨텍스트(context. 상황/정황/맥락)를 무시할까? 다음의 몇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보았다. 물론 모든 엘리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준다.
제도화된 교육의 ‘형식주의’
하버드, 옥스퍼드, 서울대 등의 고등교육 기관은 텍스트 중심 분석을 강조한다. 특히 법학, 경제학, 정치학, 철학 분야는 "정의된 개념", "논리적 일관성", "문장의 정합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때때로 인간사회의 감정, 맥락, 문화적 암묵지를 소외시킨다. 즉, ‘정답’ 중심 교육은 ‘상황 맥락’에 대한 민감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명문대를 나왔어도 상황맥락지능이 떨어지는 이유다.
엘리트의 ‘보편성’ 욕망
엘리트일수록 보편적 기준, 객관성, 법칙 등을 중시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진리"를 갈구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진실은 상황 속에서만 살아있다는 것을 많은 엘리트들이 무시한다. "당신이 말한 그 단어, 당신이 말한 그 순간, 당신이 선 그 자리"가 빠지면 말은 살아남지 못한다. 엘리트일수록 이 ‘보편주의 욕망’에 빠져, 실제 인간 상황에선 종종 무기력하다. 그들에게 상황은 주관적이고, 글자는 객관적으로 여겨진다. 보편주의는 상황보다 문자를 더 중시하고 있다.
권위 있는 말의 오남용
엘리트는 권위를 가진 언어, 논문, 판례, 데이터를 인용함으로써 '자신은 맥락 너머에서 말하는 존재'처럼 느끼기도 한다. 말하자면, "나는 인용하는 자", "나는 해석자가 아닌 판단자"가 된다. 이때 그들은 맥락을 읽기보다 문장 구조나 논리 정합성만으로 판단하려는 오류에 빠진다. 맥락과 정황은 빠른 동의를 얻기 어렵고 이는 권위 얻기를 늦추지만 문자와 숫자는 대중의 반응을 빨리 일으키기에 속도 있게 권위를 쟁취할 수 있다.
‘컨텍스트’는 학문이 아니라 삶에서 배운다
컨텍스트는 살아있는 사람과 부딪히고, 감정을 읽고, 실패하고, 눈빛을 보고, 침묵 속 의미를 듣는 비형식적 배움을 통해 습득된다. 그러나 엘리트 교육은 이를 커리큘럼으로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컨텍스트를 읽는 능력은 길거리, 가정, 고통, 사랑, 갈등 속에서 자란 사람에게 더 자주 나타난다.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이런 컨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없는데 높이 올라가 세상을 다스린다면 그 사회는 매우 불행한 사회가 된다. 맥락을 이해 못하는 리더와 함께 가기 때문이다.
결국, 실천이 부족한 지성의 결과
컨텍스트를 무시하는 엘리트는 실천하지 않은 채, 현장 밖에서 이론을 휘두르려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책으로 세상을 배운 자는 세상을 모르고, 세상을 산 자는 책을 말로만 배운 자를 경계한다. 지성과 공감의 간극이 여기에서 벌어진다.
현대 사회의 엘리트가 컨텍스트를 무시하는 이유는 ‘더 깊이 살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은 논문과 숫자를 보지만, 사람을 보지 않는다. 그들의 귀는 인용을 듣지만, 침묵을 듣지 않는다. 소통은 말을 통해 하는 것도 있지만 무언의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진실이라 믿는 그 말들은, 맥락을 잃고 나면 폭력이 되기도 한다.
오늘 첫 취재가 손학규, 김문수 주연의 국민의힘 취재였는데 그들의 맥락 없는 언어 살포에 나는 폭력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