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중앙당사 2층 프레스룸에 진열되어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과 기념 시계. 사진- NjT
“노무현 대통령께서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에 지금 민주당의 언론개혁 법안은 그 정신에 어긋난다.”
이준석 현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2021년 국민의힘 대표였을 때 이 말을 해 민주당 의원들, 특히 '친노'로부터 맹비난을 받은 바 있다. 얼핏 들으면 노무현 정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정치인의 정당한 인용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발언은 기만적이고 왜곡된 정치 언술의 전형이다.
이준석 후보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던 커뮤니티의 발언을 옹호하거나 직접 가담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가 최근 자랑스럽게 꺼낸 ‘노무현 장학금’조차, 실제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 입안된 대통령 과학장학금으로, 본인도 2017년 방송에서 이를 명확히 설명한 바 있다. 그런 그가 2025년 대선 후보로서 ‘노무현 정신’을 들먹이며 표를 얻으려고 '노무현 팔이'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다.
노무현 정신은 ‘원칙과 상식’, ‘시민의 참여’, ‘사회 통합’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즉, 진영을 넘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철학이다. 그가 생전에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왜곡된 언론 환경과 정치검찰, 기득권의 일방적 공격이었다. 그런 그를 탄핵하고 조롱하던 세력이 국민의힘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 같은 보수당인 한나라당이다. 그런 당의 대표였고 지금은 우파계열의 신당인 개혁신당 대선 대표가 지금 와서 ‘노무현 정신’을 운운하는 것은 모욕에 가깝다.
한창민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사회민주당 대표)이 26일 지적했듯, 이준석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을 말장난의 도구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준석은 노무현에 대해 진심 어린 존경과 노무현 정신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2025년 조기대선을 위한 제2차 TV 토론의 시작과 끝에 ‘노무현 정신’을 언급한 이준석 후보는 신념이 아니라 그것이 선거 전략의 일환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고인을 언급할 때마다 정치적 상업성이 묻어난다. 말은 진심이 담겨야 한다. 특히 고인에 대한 언급은 더욱 그래야 한다.
이준석 정치에서 ‘노무현 정신’과 겹치는 부분은 무엇인가? 통합인가? 상식인가? 아니면 원칙인가? 오히려 이 후보는 편 가르기와 조롱, 이미지 소비를 정치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왔다. TV토론에서도 그런 전략이 주를 이뤘다.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부터 개혁신당 대선 후보로 나선 지금까지, 이준석 후보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특정 인물을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은 일관된다. 그는 한때 노회찬을 자주 거론했지만 노회찬의 노선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노회찬은 사회민주주의 기반의 진보적 개혁주의자였다. 노회찬은 서민 중심의 정치와 정치개혁을 지향하며, 대중성과 도덕성, 유연성과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 인물 그는 진보정치의 확장과 좌절, 이상과 현실의 교차점에 선 상징이었다.
이준석은 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도 자주 거론했다. 오바마는 포용적 진보주의 (Inclusive Progressivism), 다문화주의, 인종 평등, 이민자 권리 존중을 일관되게 강조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시도한 월가 개혁(도드-프랭크법), 자동차 산업 구제, 소득 불평등 완화 시도 등을 통해 시장의 자율보다는 공공개입을 통한 공정한 분배와 기회 균등에 초점을 뒀다. 파리 기후협정 주도, 신재생 에너지 투자 확대, 환경 규제 강화 등을 통해 기후 위기를 국가적 과제로 격상시킨 인물이 오바마였다. 여기서 이준석이 닮으려는 부분이 있나? 거의 없다. 이준석은 자신이 어떤 인물을 거론하면 대중이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같은 그의 행보는 대중에게 일시적인 인기를 안겨줄 수는 있을지언정, 신뢰를 줄 수는 없다.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이름 앞에서 정파를 초월한 존중과 숙고가 필요하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그것이 진심인지, 정치적 도구인지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름을 팔아 표를 얻으려는 행위는 결국 그 이름의 무게를 스스로 가벼이 만드는 일이다.
'노무현 정신'은 이준석이 거론할 '장남감'이 아니다. '노무현 정신'을 팔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