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자극적인 이슈가 넘쳐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에게 선거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의 언어로 선거를 다시 바라볼 때, 우리는 단지 정치적 의무를 넘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소명을 발견하게 된다.
개혁신학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롬 13:1)이라고 고백한다. 벨직 신앙고백 제36조는 정부를 "범죄를 억제하고, 선을 장려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적 도구"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선거는 단지 투표소에 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신앙적으로 응답하는 행위다. 무관심이나 냉소가 아니라, 경건한 책임으로 임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신학은 더 나아가 정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The Blackwell Companion to Political Theology》는 그리스도인의 공공 책임을 강조하며,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그에 대한 실천을 신앙의 본질로 본다. ‘개인 구원’에 갇힌 신앙은 사회 정의를 외면하고, 신자의 정체성을 희석시킨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 억눌린 자, 병든 자’ 곁에 선 예수의 눈으로 정치와 후보를 바라봐야 한다. 복음은 사적 경건에 그치지 않는다.
루터의 95개조 첫 번째 조항은 "신자의 전 생애는 회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회개는 선거에서도 요청된다. 우리는 지금껏 외면했던 사회의 아픔, 눈감았던 불의, 말없이 동조했던 권력 앞에 서야 한다. 단순히 정당을 갈아타는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영적 갱신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팀 켈러의 《New City Catechism》은 종말론적 시각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되, 동시에 이 땅에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존재다. 선거는 이러한 신앙 고백의 구체적 표현이다. 어떤 세속적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공의, 자비, 겸손—가 뿌리내리도록 씨를 뿌리는 행위다.
결국, 대통령 선거는 신자에게 있어 단순한 정치적 참여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고, 공공 정의를 위한 책임을 감당하는 자리다. 정치는 더럽다고 외면하기 전에, 이 땅의 정치가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멀어졌는지 돌아보고, 더디더라도 빛의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할 때다.
그리스도인은 정치를 우상화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이 이 땅에서도 드러나기를, 그 뜻이 투표와 선거 이후의 삶 속에서도 살아 숨쉬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행동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