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가 발표한 메시지가 파장을 일으켰다.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투자해온 지난 50여 년 동안, 나는 한반도가 단순한 경제적 측면을 넘어 동북아와 그 너머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매력적인 기회 중 하나라고 꾸준히 믿어왔다.
한국의 놀라운 회복력과 혁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긴장과 갈등의 그림자로 인해 그 잠재력은 여전히 억눌린 채 남아 있다. 나는 이제야말로 평화와 안정, 미래지향적 리더십에 기반한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할 때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재명의 실용적인 접근에 주목한다. 그는 이념이나 정치적 잡음이 아니라 지속적인 국익에 봉사하는 데 집중하는 리더다. 영국의 팔머스턴 경이 말했듯, “국가에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고, 오직 영원한 국익만 있을 뿐”이다. 이재명이 일관되게 강조해온 지정학적 리스크의 완화, 기회의 확장, 국민 우선의 접근은 지금 이 시점에 꼭 필요한 방향성과 일치한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단지 도덕적 의무를 넘어, 성장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그간 억눌려왔던 한국 경제의 가치를 해방시킬 수 있다. 평화롭고 안정된 한국은 세계 투자와 혁신, 관광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일자리 창출, 청년 세대의 도약, 코스피 지수의 최고치 경신을 이끌 수 있다.
내가 보기에, 평화는 한국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다. 한국 자신을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그렇다.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가는 길은 대결이 아니라 전략적 협력과 신중한 리더십을 통해 가능하다.
나는 한국 국민, 특히 젊은 세대가 실용, 안정, 공동 번영이 이끄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며, 한국의 잠재력은 실로 대단하다.
— 짐 로저스 국제 투자자, 『퀀텀 펀드』 공동 창립자, 저술가
이 메시지에는 이재명 후보를 명시적으로 지지한다는 표현이 없었다.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회의 상임의장이 최근 이 내용을 국회소통관에서 대독했다. 김 의장은 "영국의 송경호 교수께서 짐 로저스 회장과 SNS를 통해 대화하면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문을 만들었다"며 "저와 영국에 계신 송경호 교수님 사이에 짐 로저스 회장의 지지문을 주고받는 과정에 발표된 지지문 문구를 확정하는 과정에 일부 착오가 있었을 뿐, 짐 로저스 회장의 이재명 후보 지지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로저스는 이재명 후보의 실용주의적 접근과 국익 우선 정책 방향을 “인정(recognize)”하고 “필요한 시점에 맞는 리더십”이라 평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실제 메시지의 구조와 문맥은 사실상 비공식적 지지 선언에 가깝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endorsement(지지 선언)’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도구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유력 언론은 매 대선마다 공식적인 지지 후보를 밝히고, 오프라 윈프리나 일론 머스크 같은 유명 인사들도 SNS에서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노동조합, 환경단체, 시민단체도 각자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치인을 공식 지지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 방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동시에, 공식 지지를 피하는 전략적 언어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공적 책임이 큰 인사나, 특정 국가 외부에 있는 인물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외교관, 전현직 공직자, 글로벌 투자자, 다국적 기업 CEO는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직접 지지를 밝히는 순간 정치적 중립성과 시장 신뢰를 잃을 위험을 안게 된다. 국제투자자 짐 로저스도 그런 위치에 있다. 그가 "나는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대신, "그의 실용적 접근을 인정한다"고 표현한 이유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는 중립인가? 그렇지 않다.
짐 로저스는 이재명의 실용주의, 지정학 리스크 완화, 국민 우선 기조에 “이 시점의 필요성과 일치한다”고 평가하며, “젊은 세대가 그런 미래를 선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는 단지 정책 분석을 넘어, 유권자에게 직접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향력 행사형 평가”에 해당한다.
특히 "나는 한국 국민, 특히 젊은 세대에게... 권유한다(I encourage the Korean people…)"는 문장은 정치적 의미를 뚜렷하게 가진다. 이는 실질적으로 implicit endorsement(암묵적 지지) 혹은 pragmatic endorsement(실용적 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이재명의 외교안보 기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적 요인을 해소할 수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가 곧 코스피 상승, 일자리 확대, 청년 도약, 관광 확대 등 경제적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전망을 결부시키는 이 화법은 일반적인 투자자의 분석이라기보단, 유권자의 판단을 유도하려는 목적성이 다분하다.
다만 ‘지지한다’는 단어 하나 없는 이 메시지는 결국 정치적 중립성과 영향력 행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다.
외국인 투자자라는 민감한 정체성, 국내 정치 개입에 대한 내정 간섭 우려를 감안하면, 로저스가 선택한 문장 구성은 매우 정제되고 계산된 것이며, 서구 정치문화에서 자주 쓰이는 관행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보수 언론이 "당신은 이재명을 지지합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나오는 게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명시적 언어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메시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정치적 문해력은 이제 유권자의 책임이 되었다.
짐 로저스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투자자로서의 메시지 하나로도 여론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언어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영향력이 있었다. 그랬기에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제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표현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다음은 송경호 교수가 쓴 글의 전문.
예상 외의 상황 전개로 다소 당황스러워 이 글을 공유합니다. 저는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봉사했던 영국의 송경호 교수입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짐 로저스 회장님과의 인연은 2012년 런던에서 처음 만난 중국투자 세미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후 한반도 평화정착 및 대북투자의 충심과 열의로 2015년 5월 싱가포르 자택 방문으로 본격화 되었습니다.
대북제재의 어려움으로 구체적인 투자프로젝트 실행은 없었으나 짐 로저스 회장님의 총론적 국제금융 감각과 식견에 저의 한반도 특수상황에 대한 각론적 지식이 조화되어 의미 있는 계기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특히, 2022년 평창평화포럼에서는 저의 기조발표에 뜻깊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짐 로저스 회장님이나 저는 대북투자의 막대한 잠재력을 늘 공유하며 경제적-상업적 접근에 매진해 왔으나 2018년 하노이 노딜 이후 소강국면을 지속하며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 급박하게 치러지는 6.3 대선을 앞두고, 그간 연로해지며 북측과의 경제협력 기회가 고갈되어지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짐 로저스 회장님과 대북투자 재개 가능성을 위한 위챗 소통을 최근에 시작했고, 그 와중에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그나마 두 사람의 공동 목표인 대북 투자 기회나 경제적, 상업적 접근 가능성이 커질 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짐 로저스 회장께서 평소와 같이 각론에 강한 저에게 이재명 후보 지지를 위한 초안 작성을 부탁하셔서 두어번의 수정을 통해 최종안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반도 평화 정착의 필요성과 이로 인한 경제-금융 측면, 경제성장율의 우상향 회귀 및 취업 기회 증가, 그리고 Korea Discount의 양대 요인 중의 하나인 한반도 전쟁 억제 및 평화 정착에 따른 주식시장 상승 등의 기대효과를 기대하는 실용적인 접근방법을 강조하였습니다.
짐 로저스 회장의 지지문을 언론에 게재하려던 당초 계획이 대선 후보 지지선언 게재 불가라는 언론 상황에 봉착하여 급히 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개성공단 기업대표분들과 공동 지지선언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월1일 영국 시간 밤사이, 모 신문사에서 짐 로저스 회장님의 지지 선언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접촉했던 것 같습니다. 더우기 영어에서 '지지'를 의미하는 'support'가 아닌 경제적/법적 책임, 보장까지 포함하는 'endorse'의 개념을 사용하여 미국 국적인 짐 로저스 회장이 곤궁에 빠지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참고로 'endorse: 법률적 책임이 따르는 공식적 지지'와 'support: 일상적 범주의 지지'는 크게 다르며 보편적인 지지선언은 영어로 support에 해당합니다. 미국 정부의 대북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endorse라는 표현 자체가 짐 로저스 회장님에게는 여러모로 아주 민감한 단어입니다
관련하여 그간 짐 로저스 회장님과 소통한 SNS 내역을 (언론에)공개하여 그간의 과정상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바랐던 짐 로저스 회장의 선의에 의한 충심을 endorse라는, 정치적/법률적 책임이 따르는 단어 사용으로, 혹여 개인에게는 신분적-경제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내몲으로써 기존 입장으로 부터 위축시켜버리는 현 상황이 참으로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
모쪼록 짐 로저스 회장의 본심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선의가 위축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6월 1일
송경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