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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칼럼] 본질(本質)을 찾아야 하는 이유

왜 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하고 있는가?

등록일 2023년03월14일 14시5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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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hutterstock

 

 

‘Why?’

 

단순하게 생각하면, 육하원칙 중 하나에 해당하는 ‘왜’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하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 단어에 주목하고 있고 활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강연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고, 책이나 글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일상 대화에서도 가끔 사용된다. 이 단어를 조금 깊이 들여다보고 몇 번을 되뇌면, 이 단어가 던지는 질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곳은 바로, ‘본질’이다. ‘왜’라는 질문은 결국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질(本質)’

 

유명한 경제학자가 쓴 책 처음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문제들을 살펴보면, 가장 바닥에 깔린 문제는 바로 ‘경제’라고 말이다. 이 경제학자가 바라본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의 본질은, 경제로부터 비롯됐다고 본 거다.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아하게 표현하면 경제지만, 실상 먹고사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 문제로 다툼 한번 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아 발생한,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필자가 쓴 <딸에는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에도 실은 내용이다. 저녁 때를 넘기고 퇴근해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배고픈 마음에 숟가락의 움직임이 좀 빨랐는데, 서두르다 국물을 식탁에 떨어트렸다. 닭볶음탕 국물은 붉고 걸쭉해서 바로 닦아내지 않으면, 자국이 남기도 한다. 그래서 곁에 있던 둘째에게 행주 좀 갖다 달라고 했다. 식탁 바로 뒤에 싱크대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갖다 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뭐지?’ 고개를 돌렸더니 아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행주를 찾기 위한 최선의 움직임이었다.

 

나는 눈으로 싱크대 위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두세 번 돌렸는데 행주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눈에 띈 건 두루마리 휴지였다. “거기 휴지 있네. 휴지 가져와!” 나름 대안(?)을 제시했고 아이는 “네!”하고 씩씩하게 대답하면서 휴지를 갖다 줬다. 국물을 닦고 나서 아이에게 물었다. “행주 없으면 휴지 가져오면 되는데 왜 그랬어?” 아이는 두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며 이렇게 반문했다. “아빠가 행주를 가져오라고 했으니까요?”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닦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행주’로 축약되었다. 아이는 축약된 행주만 받아들였지, 내 생각에 있는 ‘닦을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다. 말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고, 아이가 상황에 맞춰서 대안을 찾고 제시하기를 바라는 건 너무도 큰 욕심이다. 성인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말이다. 내가 닦을 것이라고 표현했다면, 아이는 분명 휴지를 갖다 줬으리라 확신한다.

 

본질은, 근본 이유다.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을 하는 이유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공부하는 근본 이유가 있다. 좋은 대학이나 시험에 합격하는 건, 하나의 과정이지 근본 이유가 될 수 없다.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최종 목적지로 생각해서, 그 이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때도 있다. 어떤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하는 근본 이유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내가 그 일을 하는 이유 말이다. 공익적인 기여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근본 이유가 있다. 찾지 않아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빈 껍데기다.

 

근본 이유를 알지 못하고 하는 것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알맹이가 없는 빈 껍데기는 ‘그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흔한 표현으로, ‘앙꼬 없는 찐빵’이 있다. 앙꼬가 없는 건 찐빵이라 부를 수 없다는 말이다. 이타심과 사랑이 없는 봉사는 봉사라 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족일 뿐이다. 자기만족을 이타심이나 사랑으로 착각하면, 주변 사람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맞지 않는 답을 맞는다고 우기기 때문이다. 내 삶은 빈 껍데기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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