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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히든 라이터] "책은 저를 왕따시키지 않아요" 11. 윤소희 작가

책, 읽는 게 아니라 만나는 존재~!!!

등록일 2023년08월28일 16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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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한 오픈 채팅방에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주최자는 강연을 마치고 몇몇 사람에게 소감을 물었다. 마지막 사람이었나? 다음 주에 책이 출간된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말한 건 아니고, 주최자의 질문에 답을 한 거다.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스칠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다음 날, 2시간 간격으로 카톡이 왔다. <더 히든 라이터> 8번째 주인공 도정미 작가님과 9번째 주인공 현혜선 대표님의 톡이었다. “어제같이 하신 분 중에 윤소희 작가님도 한번 기사 써보실래요? 서울대 심리학과 전공 아나운서 출신이세요. 이번에 신간이 나올 예정인데요. 책과 사람을 매치하는 이야기입니다.” “윤소희 작가님 신간 도서 출간 예정이라 7월 29일(토) <카페하린>에서 북 콘서트 하세요.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시기로 하셨는데, 다음 인터뷰 작가로 어떠세요?”

 

부러웠다. 타인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그만큼 잘 살아왔다는 증거겠지만 말이다.

 

블로그 링크도 주셨는데, 제목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3,818권의 책을 사서 616권을 나눔 하니….” 책을 산 숫자도 숫자지만, 나눠준 숫자도 엄청나다는 걸 알았다. ‘책과 사람을 매치하는 이야기라….’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관심이 갔다. 단순하게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부분에 관심이 갔다. 지금까지 이런 조합은 못 들었으니 말이다. 단순하게 어떤 사람에게 책을 소개해주는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중국에 거주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출간 기념으로 일주일 정도 일정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거란다. 인터뷰를 계기로 카톡을 주고받았고 SNS를 통해 근황을 알게 되었는데, 일정이 연예인급이다. 윤 작가는 짧은 기간에 서울뿐만 아니라, 세종과 대전까지 일정이 있었다.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잡은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알고 보니, 이번 책이 네 번째 출간이다. 정해진 일정이라 이전 인터뷰 정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인터뷰하게 되었다. 복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렇게 중국에서 출간 기념 강연과 북 콘서트 등을 하러 오신 윤 작가를 인터뷰 전문(?) 카페에서 만났다.
 

 


 


Q.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어제 중국에서 들어오셨죠? 피곤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께 인사 말씀과 간단한 소개 먼저 해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을 출간한 윤소희라고 합니다. 지금은 상하이에서 살고 있는데요. 저는 좀 다양한 길을 걸었어요.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고요. KBS 공채 24기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해, 3년 좀 안 되게 아나운서로 활동했습니다. 2년 10개월을 했는데요. 그때는 3년을 채우면 휴직할 수 있었거든요. 두 달을 못 참고 그만두는 것 때문에, 화제가 되었죠. 제가 성격이 좀 화끈한 데가 있어서요.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거지, 다시 돌아올 걸 생각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싫었어요.

 

그렇게 호기롭게 그만두고 미국으로 날아갔어요.

 

정말 겁도 없이 말이죠. 조금 있어 보니, 퇴직금도 다 바닥이 나서 가난하게 떠돌아다니기도 했어요. 트레일러 같은 데서 살아보기도 하다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다가 진짜 굶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거죠. 그래서 MBA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좀 생뚱맞죠?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쉬운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었어요.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 일하는 거 말이죠. 그러면 근근이 먹고 살 수는 있지만, 잘못하면 불법 체류자로 남았을 수도 있잖아요? 제가 그러려고 미국까지 날아온 건 아닌데 말이죠. ‘그래! 도전을 한번 해보자!’하고 다짐했죠. 주변에서 MBA하고 나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했거든요. 사실 그때는 MBA가 뭔지도 잘 몰랐어요.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때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이 생각났어요.

 

제일 좋아했던 소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거든요. 저한테는 ‘스칼렛 오하라’가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진 거예요. 사실 고생 엄청나게 하잖아요? 전쟁통이니까. 잘 살다가 가진 거 다 없어지고, 심지어 결혼도 세 번씩 했잖아요. 그 와중에 돈 구하러 갈 때 옷이 없으니, 커튼을 뜯어서 예쁜 옷을 만들어 입는 장면 같은 게 떠올랐어요. ‘그래! 할 수 있어! 나는 끝까지 우아하고 당당하게, 이 모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때는 사실 거지였는데요. 그런데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렇게 꿈을 꾸고서, 준비를 시작한 거죠. 신기한 건, 9개 학교를 지원했는데요. 그중에 시카고 대학교 에세이에만 그 이야기를 썼거든요. 스칼렛 이야기요. 거기서 합격 통보를 받은 거예요. 그렇게 시카고 대학교에서 MBA를 하게 됐어요.

 

다시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세계 3대 컨설팅 회사가 있어요. 맥킨지, BCG, 베인앤드컴퍼니. 그중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잡 오퍼를 받았어요. 제가 재미있는 인생 스토리가 있기는 하지만, 비즈니스 경력이 없잖아요? 거기서 항상 걸리는 거예요. MBA 1년 마치고, 썸머 인턴을 할 기회가 있는데요. 베인앤드컴퍼니 인터뷰에서 다른 자질은 다 좋아 보이는데 비즈니스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최종에서 떨어졌어요. 1년 후 졸업할 때, ‘퍼머넌트’ 인터뷰가 있었는데, 보통 베인앤드컴퍼니 같은 큰 회사에서는 한 번 떨어뜨린 사람에게 절대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게 원칙이거든요. 좋은 사람을 놓치는 것보다 잘못된 사람을 뽑을 때,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손해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한 번 떨어졌던 사람한테 기회를 주지 않아요. 제가 그때 썸머를 삼성전자에서 했었거든요. 썸머 인턴 인터뷰 때 저를 좋게 봤던 이사님이 삼성전자에서 두 달 일한 경력을 인정해 다시 기회를 주자고 적극적으로 얘기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인터뷰할 기회를 얻은 거예요. 그렇게 해서 ‘퍼머넌트’ 오퍼를 받게 되고,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제가 그걸 해낸 거죠.

 

비즈니스 경력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제대로 된 정장 한 벌 살 돈도 없었거든요. 인터뷰할 때 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옷 가게에서 질 좋은 정장을 한 벌 사고, 태그 달린 채로 인터뷰한 후 반납한 적도 있어요. “나는 정말 똑똑하고 일 잘하는 그런 컨설턴트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중학교 때 몰래 읽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덕분이었어요. 저한테는 스칼렛이 롤 모델 같은 거였죠. 20대에 저를 붙들어준 소설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생 역전을 했어요.

 


 

 

Q. 소설이 작가님을 이끌어주셨다고 했는데, 작가님 삶이 소설이네요. 그런데요.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갑자기 미국으로 가셨다고 했잖아요? 정말 갑자기였나요? 뭔가 이유가 있을 듯해서요.

 

아! 제가 아나운서를 한 것도 사실 ‘갑자기’였어요. 4학년 때, 임상심리학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여름방학까지 공부하면서 대학원 시험 준비를 했어요. 교수님도 제가 올 거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계셨죠. 어느 날 친한 친구가 “너 아나운서 하면 아주 잘 할 텐데.”라고 하길래, 그날로 박차고 나가, 몇 달을 준비해서 아나운서가 됐어요. 제 MBTI 맨 마지막이 ‘P’인데요. 한마디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굉장히 즉흥적인 거죠. 계획은 없고 호기심은 많고요. 싫증이 나는 건 못하고, 재밌어 보이면 딱 하고 그런 거죠.

 

저는 여행을 다녀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아빠가 아주 바쁘셨거든요. 아빠는 일요일도 거의 안 쉬고 일하셨어요. 놀러 간 기억을 세면, 다섯 손가락이 남아요. 정말로요. 비행기는커녕 내륙 여행조차 어려운 거예요. 여행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같아요.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던 거니까요. 그러던 차에 여행 프로그램을 맡게 됐어요. ‘기차 타고 세계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그걸 촬영하기 위해 핀란드로 출장을 갔어요. 2주 동안 촬영을 해서, 그 내용을 6편으로 나눠서 방송을 내보냈어요. 핀란드에 갔다 깜짝 놀랐어요. 바로 옆에 있는 일본도 안 가봤는데 갑자기 핀란드를 간 거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5월이라 옷도 얇은 것만 준비해서 갔는데요. 너무 추워서 현지에서 옷을 샀던 기억도 나요. 세계가 진짜 이렇게 크고 넓다는 걸 알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너무나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안 거죠,

 

눈이 좀 뜨이니까 완전히 다른 나라에 가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모범생으로 공부만 하다 보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겉으로는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살아가야 하잖아요. 남한테 드러내지 못하고요. 우리나라는 워낙 사람들 시선을 많이 신경 쓰기도 하고요. 그렇게 답답하게 지내다가 밖에 나가 보니까, 안 그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남의 눈치 안 보고 편하고 즐겁게 잘 사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서, ‘페르소나 같은 걸 벗어버리고,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건 몰랐던 거죠.

 

그때는 KBS 아나운서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대우를 받았거든요.
 

제 기억에 아나운서 사원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면 어떤 식당에서는 돈도 안 받았어요. 아나운서 왔다면서, 그냥 먹고 가라고 그러셨어요. 아나운서 생활도 재밌었어요. 재밌는 있었는데, 계속 반복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좀, 뭔가 다른 세계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 거죠. 특히,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요. 그 생각이 저를 미국으로 보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갑자기 미국으로 날아갔는데요. 거기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잖아요? 제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유색 인종인 거죠. 인종 차별을 당할 수도 있는 거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거죠. 거기서 그렇게 한번, 완전히 바닥이 어떤 건지 좀 봤죠. 나의 껍데기가 딱 벗겨지고 나니까,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때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요.

 


 

Q. 그렇군요. 그렇게 미국으로 갔는데, 지금은 중국에서 살고 계시잖아요? 중국도 그렇게 갑자기 날아가신 건가요? 영어는 그렇다고 해도, 중국어는 생소하셨을 텐데요.

 

사연이 있죠.

미국회사지만 서울 오피스로 입사를 했는데,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입사 동기로 만났는데, 사귀어볼까 했더니 두 달 만에 자기는 중국에 꿈이 있다며 트랜스퍼해서 가버리더라고요. 저희는 그렇게 ‘롱디’(long distance, 해외 취업이나 유학, 지방 근무 등으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하는 연애: 네이버 사전 참조)로 3년을 떨어져 있다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면서, 제가 상하이 오피스로 옮겼어요. 그러니까 베인앤컴퍼니는 서울에서 3년, 상하이에서 1년 반 정도 일했어요.

 

중국 생활 이제 18년 차인데요.


2006년 4월에 갔으니까요. 여기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나라가 1992년에 중국과 수교를 했잖아요? 수교한 지 얼마 안 돼서 길이 열렸고요. 그때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어학연수를 갔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중국어를 배웠거든요. 사실 그때는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었잖아요? 시험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요. 저는 선택이 불어였기 때문에 중국어를 선택할 일도 없는데, 그냥 재밌어서 배운 거예요. 그게 제 성격인 거죠. “어? 이거 재밌어 보인다!”라고 하면서, 배우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죠. 그때는 무슨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붐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어요. 수교 전이었거든요. 그리고 정식 중국어가 아니라, 대만식 중국어를 대학에서 가르칠 때였어요. 그렇게 대학에서 대만식 중국어 수업을 하는 대학생을 수소문 끝에 찾아서 배웠어요. 대학을 갔더니, 이제는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된 거예요. 그래서 중국어를 더 배웠고, 방학을 이용해서 연수도 간 거죠.

 

베이징에 갔어요.

 

일이 좀 있었는데요. <여백을 채우는 사랑>에 그 이야기를 썼어요. 두 달을 잘 보냈는데, 마지막에 딱 한 번, 애들 없이 혼자 학교 밖을 걸어봤어요. 그런데 자전거를 탄 누군가가 저를 치고 넘어뜨린 다음, 몽둥이로 내리쳤어요. 제 머리를 겨냥했던 것 같은데, 다행히 어깨를 맞았어요. 너무 충격이었죠. 그게 돌아오기 며칠 전이었는데요. 다시는 중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완전히 마음이 돌아섰죠. 그랬던 제가 중국에 꿈이 있는 남자를 만났고, 그 사람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상처마저 씻은 거죠. 사랑으로 극복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중국으로 완전히 가게 됐죠. 중국에서 살게 될 인연이라 중학교 때부터 중국어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신기해요.
 


Q. 작가님의 삶을 보니, 재미있어서 선택했던 것들이 현재를 만들었다고 봐도 되겠네요? 내 삶의 기준이 되고 삶을 살아가는데 하나의 무기가 되고 말이죠.


아! 네, 얘기 들어보니까 진짜 그러네요.
전 뭔가 호기심이 자극을 받으면 바로 해요. 즉흥적인 성격이라 실천도 좀 빠른 편이고요.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그날 바로 해요. 재밌겠다 하고서 그냥 며칠 지나면 잊어버렸을 텐데, 해봐야지 하면 그날 바로 찾아보고 바로 시작을 했어요.


 

Q. 결국은 실행이다!” 이렇게 결론지어질 수 있겠네요. 중국 얘기 나온 김에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남편이 중국에서 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남편은 계속 회사에 다니시는 건가요?

 

남편이 지금은 회사에 다니는데 신혼 때는 사업을 했었어요. 진짜 잘 됐었거든요. 정부에서 표창을 받을 정도로요. 포브스 잡지에도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잘 아시겠지만, 중국은 정부의 힘이 매우 세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규제를 바꿔버렸어요. “아니, 외국인이 CEO인 회사가 지금 이렇게 막 올라가고 있어?”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죠.

 

규제가 갑자기 바뀌니까 사업이 힘들어졌어요.
 

100억 넘는 빚 때문에 채권자들에게 쫓겨 다니기도 했고요. 남편이 투자를 받으러 가는 동안 어린아이들과 함께 인질로 잡혀 본 적도 있었어요. 그런 어려움을 다 겪었죠. 사실 그 덕분에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하니까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그러면서 출간하고 작가로서 다시 한번 또 살아보는 기회를 얻은 거죠.

 

 

Q. 남편 사업의 어려움이 책을 만나게 해줬고, 글을 쓰게 해준 거네요?

 

맞아요.
제가 살면서 느낀 게, 고난 중에 있으면 진짜 아프잖아요? 정말 쓰라리고 누구한테 말도 못 하니까 외롭고 고통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하나도, 쓸모없는 고통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모든 경험은 내 재료가 되고 내 이야기가 되고 나의 경쟁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언제부턴 가는요, 어떤 일이 생기면 글감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이 일이 나를 또 어떻게 성장시킬까?’ 이런 생각을 해요.

 


 

Q. 맞아요.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작가님 얘기 들어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읽고 쓰고 했던 경험도 결국에는, 책과 사람을 매칭하는 거로 연결이 됐잖아요? 이 작업을 왜 하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책과 사람을 매칭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처음부터 매칭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인스타에서 21년과 22년에 책 소개 라방(라이브 방송)을 꾸준하게 했었거든요. 매주 토요일 9시에 무조건 30분 동안 라방을 했어요. 그때 제가 원칙을 세운 게 있었어요. 무조건 최근에 읽은 책을 소개할 것과 두 권 이상 연결해서 소개할 것이요. 한 권만 소개하면 재미없으니까, 두 권 이상을 연결해 보자고 한 거예요. 그 작업을 하면서 독서가 너무 재밌어졌어요. 그때부터 북 매칭이 시작된 거죠. 너무 재밌어서 확장하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두 권 이상 연결하려면, 두 권보다 많이 읽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책을 더 읽게 됐죠. 그다음에는 ‘어떤 걸 연결해야 하지?’ 이렇게 고민도 됐고요.

 

‘이 책이랑 저 책이랑, 이렇게 연결하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걸 방송으로 만들어서 했어요. 그 원고 내용 중 20편을 뽑아서 낸 책이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이에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매칭으로 할 때 독서도 훨씬 재미있고 좀 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의 느낌이 좋은 거죠. 뇌도 가장 멀리 있는 것끼리 연결될 때, 반짝하면서 새로운 아이디가 나오는 거잖아요? 전혀 상관없고 낯선 것들을 연결해 보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남들이 잘 안 읽는 책들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보신 분들이, “어? 내가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네?”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그래서 책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연이 있어야 읽게 되는 거고요. 신간이 일 년에 몇만 권씩 나오는데, 아무리 많이 읽어도 사실 1%도 못 읽잖아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당장은 안 읽히는 책들이 있어요.
 

어딘가에 뒀다, 몇 달 혹은 몇 년 뒤 눈에 띄기도 하죠. ‘이렇게 좋은 책이 있었나?’ 하면서 읽게 되는 거죠. 안 읽히던 책이 갑자기 술술 읽히는 이유는, 내가 변해서거든요. 독서는 책보다 읽는 사람이 훨씬 중요해요. 내가 달라지니까, 책이 나와 만날 수 있는 타이밍이 되니까 읽히는 거죠. 그래서 좋은 책도 중요하지만, 좋은 책을 만나는 타이밍도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책을 소화할 수 있는, 준비된 나의 자세도 매우 필요하죠. 책이 그런 타이밍이 맞을 때, 그 책은 나한테 아주 놀라운 효과를 주는 거죠. 나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거예요. 책을 읽을 때 이런 개념들을 신경 쓰니까, 재밌는 걸 많이 느끼게 돼요. 내가 책을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때는 책이 나를 고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책이 사람처럼 말을 거는 거 같아요. “야! 이제 이걸 읽었으니까, 너 저거 읽어야 해!” 그렇게 막 당겨서 어떻게든 내 앞에 갖다 놓아요. 누군가를 통해서 소개를 받는다든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제 눈앞에 펼쳐지는 거죠. 그런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Q. 맞아요. 책도 인연이 있어야 읽게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하나 뿐인 북 매칭이라고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두 권을 합치는 시도가 하나뿐인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해서요. 그리고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부분도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아! 제가 북 매칭이라는 책을 찾아봤더니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처음이라는 생각에,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이라고 해야겠다 생각했고요. 혹시 있더라도 제가 한 북 매칭은 진짜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있어도 우겨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어요.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건요.

 

음…. 그러니까, 제가 중국에서 1년 반 전부터 책 나누는 걸 시작했거든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자기가 읽은 책은 못 나눠요. 그렇지 않아요? 줄도 치고 이런저런 생각도 적어놓으니까요. 누가 빌려 갔다가 안 주면 속상하고 그러잖아요. 제가 그 정도로 책을 엄청 아끼거든요. 차라리 새 책을 사주면 몰라도요.


그런 제가 나눔을 시작했던 건, 사실 아픔 때문이었어요. 기자님도 작가니까 아시겠지만, 저희 같은 작가들은 혼자 알아서 홍보해야 하잖아요? 저는 SNS를 하나도 안 했어요. 좋아하진 않지만, 출판사에서도 하라고 권하고 하니까 하게 됐죠. 인스타, 폐북 그리고 중국은 이 ‘위챗 모멘트’라는 게 있는데, 그것도 포함해서 동시에 시작을 한 거예요. 그 공간에 그렇게 올리다 보면 홍보하는 게 자랑질로 보일 수가 있고, 누군가는 시기할 수도 있잖아요?

 

어떤 분들이 저를 왕따시키기 시작했어요. 저는 9살부터 때부터 왕따를 당했는데 중고등학교 때도 좀 심하게 당했거든요. “쟤한테 말 걸지 마!”라고 하는 것처럼 ‘좋아요’ 눌러 주지 말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왕따를 당하니까 너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제가 유리 멘탈이어서 울기도 잘 울거든요. 너무 많이 울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덮을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책 몇 권 더 팔자고 이거를 계속해야 해?’ 그렇게 접으려고 했는데요. SNS는 제가 문을 닫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한테 그렇게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곳을 이렇게 안 좋은 공간으로 만들지 말고 선한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사람들이, “거기에 가면 기쁜 일이 있어!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겨!” 이렇게 말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보니까, 그냥 내가 가진 건 책이니까 아깝지만, 이걸 나눠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위챗 모멘트’에서 시작했어요. 모멘트에서 상처를 받았으니까, 모멘트에 나눔을 정기적으로 올리기 시작한 거죠.

 

책을 이렇게 나눴어요.

 

제가 일단 큐레이션을 하는 거죠. 나눌 책을 고르고, 설명을 짧게 써요. 그러면 사람들이 궁금하니까, 이게 뭐지 하면서 보게 돼요. 책을 안 받더라도, 관심을 끌게 되는 거죠. 신청한 분들에게는 제가 메모를 써요. 악필이지만 메모를 써서 보내드려요. 한 분이라도 더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메모를 쓰고 선물을 항상 넣어요. 초콜릿, 캔디, 마스크팩 등등이요. 집에 있는 거 다 꺼내서 선물을 드리고, 택배비도 선불로 보내요. 중국 어디나 택배를 무료로 보내드리는 거죠. 택배비가 걸림돌이 되면 안 되니까요.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은 ‘굳이 내가 배송료까지 내고 이걸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거든요. 진짜 선물을 드리는 거죠. 그러면 기분이 좋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633권을 전부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나눔하는 단톡방이 커지면서 400명이 넘어갔어요.


그러니까 이런 일도 생겨요. 한 책에 여러 명이 신청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세 분 네 분이 같이 보실 수 있는 별도의 단톡방을 만들어드려요. 새롭게 인연을 맺는 거죠. 사람이 책이랑 연결되고, 책이 사람과 연결이 되는 그런 그림이 되는 거예요. 같은 책을 골랐다는 건, 성향이 비슷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그 책을 중심으로 처음 보는 사람이고 본 적도 없지만 뭔가 유대감이 형성되는 거예요. 제가 먼저 누군가한테 책을 보내드리면, 그분이 다음 분한테 보내드릴 때 저를 따라서 해요. 더 좋은 선물과 더 예쁜 글씨를 써서 보내시더라고요.

 

나눔이 나눔으로 이어지고 기쁨이 되는 거죠. 연결이라는 건 사람 책 다 떠나서, 전부 연결될 수 있는 거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책, 책과 책, 책과 사람, 이게 다 연결이 되는 거죠. 그 연결로 새롭게 맺어진 인연이 생기고, 그중에 좋은 인연들이 생기기도 하고요.
 


 

Q. ! 감동이네요. 책과 사람을 매칭한다기 보다 책으로 사람을 연결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네요. 그러면 작가님은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메시지를 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세요?

 

제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건, ‘만남’ 그리고 ‘인연’이라는 단어거든요.
 

책을 도구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이 책을 읽으면 부자 될 거야! 이 책을 읽으면 똑똑해질 거야!’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요. 그러면 일처럼 돼서, 재미가 없어지거든요. 내용이 제대로 흡수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내가 바뀌면 똑같은 책 한 권을 읽어도 어마어마하게 얻어갈 수가 있잖아요?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게 되는 거죠. 그냥 흘러나가는 거랑 똑같거든요.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실은,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해요.

 

예를 들면, 내가 부자가 되고 싶고 해요. 그러면 투자에 관련된 책 10권을 읽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전체적으로 바꿔줘야 하거든요. 철학도 바뀌어야 하고 흐름을 볼 수 있는 역사관도 바뀌어야 해요. 이런 것들을 얻으려면 골고루 읽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좀 골고루 만나야 하는데요. 도구로 생각하는 게 되면, 당장의 효용 위주로 고르게 되죠. 만날 수 있는 책을 제한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정보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고 감동도 아니고, 정말 만남 그 자체라고 믿어요. 그걸 강조하고 싶어요. 만남을 기뻐하다 보면, 단 한 권을 만나도 그 한 권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도 있거든요. 그걸 경험을 하면 좋겠다는 거죠. 사람마다 다르니, 그중에 뭘 만나실지 모르지만 말이죠.

 

저는 이 책을 50권으로 구성된 20개의 세트 메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골라서 드시면 됩니다. 어떤 책에 꽂혀 새롭게 출발할지는 모르지만, 20개 세트 메뉴입니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거죠.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인연, 그러니까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책이라는 인연을, 이 책을 통해서 만나셨으면 좋겠어요. 그 만남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이런 메시지? 한마디로, 요즘도 계속 얘기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책! 읽지 말고 만나세요!”



Q. ! 정말 새로운 접근이네요. 읽지 말고 만나라는 메시지요. 제가 말씀을 듣다가 좀 의외다 싶은 게 있었는데요. 중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하셨다는 말씀이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그 이야기 좀 들려주실 수 있으세요?

 

음…. 그러니까, 제가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털털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되게 차갑게 보인다고 해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던 것 같은데요. 거기다가 공부도 좀 하니까, 뭔가 좀 그랬나 봐요. 말을 해 본 것도 아닌데 먼저 선입견으로 오해를 한 거죠.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제가 1등이었는데요. 2등이었던 친구가 다른 친구들한테, 저랑 말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그때는 왕따라는 단어가 없어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는데요. 그냥 애들이 아무도 저랑 얘기를 안 한 거죠. 고등학교 때는 좀 심했어요. 어렸을 때는 사실 몰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원래 말을 잘 하지 못하기도 했고, 학교 가면 화장실도 거의 안 갔거든요. 그렇게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애가 앉아서 움직이질 않으니, 선생님도 좀 놀라셨죠. 지금 하고는 아주 다르죠? 사람들한테 잘못 하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같은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옆 반에서 그랬어요. 저를 아는 우리 반 애들은 괜찮았고 친하게 지냈는데요. 옆 반 아이들이 자기네 복도를 못 지나가게 했어요. 쉬는 시간에 우리 반 칠판에 와서 욕을 쓰고 가기도 했고요. 공부 잘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요. 그것보다 공부를 좀 하니까 선생님들이 잘해 주실 거 아니에요? 그게 꼴 보기 싫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잘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들이 잘해 주시는 건데, 애들이 보기에는 다르게 본 것 같아요. 그렇게 오해도 많이 받고 그랬죠. 그래서 그때는 사실, 자살 시도도 하고 그랬어요. 중고등학생 때가 제일 예민할 때잖아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죠. 계속 오해받고 그런 게 싫었어요. 제가 심리학을 전공한 이유가 그런 것도 있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계속 미움을 받을까? 뭐가 문제일까?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인가? 난 사람들하고 좀 다른가?’ 궁금했어요.

 

 

Q. 그런 아픈 시절이 있었군요? 그래서 심리학과에 가서 답을 좀 찾으셨어요?

 

저는 ‘이상심리학’을 제일 좋아했어요. ‘abnormal psychology’라고 하는데요. 정신 이상에 관련된 거예요. 우울증부터 과대망상증 뭐 이런 거죠. 이 분야를 제일 재밌게 공부했어요. 그때, 가르쳐주신 교수님을 무조건 찾아갔어요. 그리고 2년 동안 상담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많이 풀었죠. 제가 받았던 상처들과 어렸을 때 일들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 같은 것을, 2년 동안 상담을 통해서 다 풀었어요. 저에 대해서 좀 많이 알게 되었어요. 그게 많이 도움이 됐죠. 삶에 전환점이라고 할까요? 대학 졸업을 하고 아나운서 시험도 보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어요

 

 

Q. 그래도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누가 교수님한테 그렇게 가서 상담해달라고 하겠어요. 작가님이 용기를 내서, 얻으신 결과네요.

 

하고 싶다, 생각하면 바로 실천하는 성격이잖아요. 교수님이 여지를 남겼을 때 그냥 바로 찾아갔어요. 강의 초반이었는데요. 제가 상담하고 싶다고 했어요. 젊은 교수님이기도 하셨고, 이제 막 오신 분이라 열정도 있으셨어요. 잘 맞아 떨어진 거죠.



Q. 지금까지 말씀 주셨던 인연이 여기에도 적용이 되네요. 그럼 혹시 사셨던 지역이 대전이었어요?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대전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것도 사연이 있어요. 저희 엄마가 딸만 셋 낳고 할머니랑 관계가 너무 안 좋아서, 아빠가 어쩔 수 없이 떨어뜨려 놔야겠다고 생각해 연고가 없는 대전으로 간 거에요. 저희 아빠는 부산 분이고 엄마는 서울분이시니까, 대전은 아무런 연고가 없었거든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대전을 간 거죠. 아! 그러고 보니까, 어릴 때 왕따를 당한 이유가 이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 왔으니, 좋은 시선으로 보진 않았을 거 같아요. 서울 새침데기로 봤을 수도 있겠네요. 말투도 달랐으니까요. 좀 재수 없게 봤을 거 같아요.

 


 

 

Q. 제가 얼핏, 대전에 안 좋은 기억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요. 이거 때문인가요?

 

물론 제가 왕따 당한 것도 있는데요. 그건 좀 사소했고 더 큰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초반에 MBA에 붙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잖아요? 제 전공도 아닌데 짧은 시간 공부해서 붙었으니까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어요. 그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어요. 그냥 헤어지시기만 하면 좋았을 텐데, 집안이 완전 풍비박산이 났어요. 부모님이 워낙 연애를 진하게 하시면서 사이가 매우 좋으셨었거든요. 그게 깨지니까 배신감이랄까요? 상처가 너무 심하니까, 딸 셋과 엄마 아빠 다섯 명이 전부 입만 열면 서로에게 상처 되는 말을 하는 거예요. 막, 칼이 나가는 거죠. 그때 다섯 명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인연을 다 끊었었어요. 그러니까 저도 갑자기 고아가 된 거죠.

 

학비를 손 벌리기는커녕, 갑자기 연락할 수도 없고 가족도 없어진 거예요.
 

미국 학비가 비싸잖아요? 학비랑 생활비까지 다 빚내서 한 거죠. 그때는 매일 가위에 눌렸어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오더라고요. ‘이 빚더미를 어떻게 할 거야?’ 그런데, 전 아무한테도 말할 데가 없었으니까요. 사람이 위축되는 게 참 무서운 게 뭐냐면요. 가족만 없어졌을 뿐인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친한 친구한테도 연락을 못 하겠더라고요. 진짜 아무도 없는 거죠. 그때 유학 생활이 진짜 제일 힘들었을 때였어요.


 


 

Q. ! 지금 말씀을 들으니까, 앞서 들었던 유학 생활이 더 힘들었겠다는 느낌이 확 오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 모든 걸 이겨내서 지금에 작가님이 계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님에 진심 어린 이야기 너무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책을 읽지 마시고 만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책 한 권 때문에 무너질 뻔했던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잖아요? 여러분도 어떤 책을 만나시면 그 책을 통해서 그 책과의 인연을 통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어요.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그런 엄청난 꿈을 꾸는 삶을 살 수도 있고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좋은 만남을 기대하셨으면 좋겠어요.

 

제일 힘들 때는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는 게 참 쉽지 않아요.
 

저한테 제일 상처 줬던 게 결국은 사람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때 도피처가 책이었던 것 같아요. 책은 저를 왕따시키지도 않고 저를 비난하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잖아요? 많이 읽어도 괜찮고요. 그래서 처음에 힘들 때는, 책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람한테 먼저 가라고 하는데요. 좋은 사람 만나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이상한 사람 만나서 상처를 더 받으면, 진짜 무너지고 자살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일단 책을 먼저 만나고 나를 어느 정도 세운 다음, 그다음에 좋은 책으로 연결되는 좋은 분들을 만나시면 좋겠어요. 그때는 이제 더 성장해 있을 테니까요. 처음부터 성장 못 해요. 그래서 너무 힘들 때는, 첫 번째로 책이 맞는 것 같아요. 사람한테 상처받았을 때,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일단 책을 먼저 집어 들어라! 그렇게 책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서 힘을 얻고, 새로운 연결이 되면 좋겠어요.

 

 

<기자의 한마디>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KBS 공채 아나운서.

미국 시카고 대학교 MBA 수료.

세계 3대 컨설팅 회사 중 하나인 베인앤드컴퍼니 서울 및 상하이 오피스에서 근무.

네 권의 책 출간.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렇게 경력만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잘 났네?’라며 고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좋은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싶고 하고 싶고 바라던 것을 다 가졌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백조가 호수 위를 떠다니는 모습만 보려 한다. 그 아래서 얼마나 치열하게 발을 움직이는지 보려 하지 않는다. 아니,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직접 들려주지 않고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경력의 행간에 숨겨진, 어둡고 처절한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느낌이 어떤가? 그래도 부럽기만 한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낼지어다!”라는 말처럼, 정말 화려한 경력의 무게를 견뎌내며 지금까지 걸어오셨다. 그 무게를 견뎌내는 시작이 책이라는 건, 어쩌면 우리한테는 좋은 소식이 아닐까 싶다. 읽기 시작하면 되니 말이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작가님의 신간,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을 읽으면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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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전문칼럼니스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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