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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칼럼] 감정이 귀중한 자원인 시대

-영화 ‘정이’를 통해 본 미래 사회. HSK

등록일 2023년01월26일 17시3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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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릭스 영화 ’정이’의 포스터

 

 

영화 ‘정이(Jung_E)’의 배경은 2194년 즉, 22세기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완벽한 인간 로봇 안드로이드가 등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뇌에 의존하고 최고의 인력이 이를 복제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한동안 인공지능 열풍과 빅데이터 담론 속에서 당장 인간 이상의 자율 이성과 역량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나올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황당한 미래 시나리오에 바탕을 두고 있지는 않다.

 

22세기인데도 여전히 총을 난사하고 육박전을 감행하는 인간의 전투 액션은 단순히 테크놀로지 발달에 관한 상상력의 부재보다는 현재 관객의 시청각 효과 때문일 것이다. 광선총은 아무래도 현재 우리에게 타격감을 주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으니 미래의 관객 탓이 아니다.

 

인공지능의 개념 숙지나 할리우드 기시감, 연기력 논란은 우리에게 지엽적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짚어봐야 할 점은 미래 사회의 풍경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기존 영화에서 다뤘듯이 미래를 우울하게 즉,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미장센연출(Staging)상 '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 및 이러한 결과물에서의 표현​을 연출 구성해내고 있다.

 

우주 공간에 건설한 새로운 주거 공간과 지구 사이의 위계적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모순이 사건들의 원인으로 작동한다. 여전히 계급과 계층은 존재하고 빈자와 부자의 갈등은 대비된다. 이런 가운데 기업은 여전히 수익을 내기 위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고 심지어 특정인의 뇌 복제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수익의 논리가 맞지 않게 되면서 과감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뇌 복제 기술을 다른 용도로 재빨리 전환 시킨다. 호의와 애정은 주판알 위에서 춤을 출 뿐이다.

 

이 영화에서 좀 더 부각한 점은 젠더gender다. 다른 SF 물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여성이 영웅으로 등장한다. 전쟁에 나서는 미래 전투 영웅에 여성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천추 태후’ 같은 사극에서도 여성 영웅은 등장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 ‘정이’에서는 ‘툼레이더’ 같은 영화처럼 미혼 여성이 아니라 딸아이가 있는 여성 캐릭터 윤정이가 등장한다. 단순히 젠더가 아니라 엄마와 딸 사이의 모성을 등장시켜 차이점을 꾀했다.

 

그런데 부유한 엄마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22세기에도 여전히 딸을 혼자 키우고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여성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 아무리 국가권력이 복지정책을 꾀한다고 해도 이런 존재가 없을 리 없다. 더구나 지구의 자원고갈과 환경 오염으로 지구를 버리고 탈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윤정이가 딸 수술비를 위해서 나서는 전쟁은 그 자체로 삶을 위한 전쟁이자 투쟁이다. 그러한 투쟁은 사실 윤정이가 목숨을 잃은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유족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윤정이의 모든 생체 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공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윤정이의 딸 수현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통렬하게 오열을 하고 만다. 심지어 자신의 엄마가 성인용품으로 도구화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대오각성하게 된다. 이로써 엄마가 영원한 영웅으로 남기를 바라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딸 수현은 여성이 전투 영웅이 되어서도 언제든지 수익의 논리에 따라서 성적 도구화가 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인식하게 되고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려 한다. 이렇게 영화는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전투 영웅이라는 이미지와 명예가 도구화될 수 있다는 뼈아픈 미래상을 담아내고 있다. 요컨대 젠더와 계급/계층성, 모성과 가족 문제들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버무려 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관점은 정서다.

 

애초에 수현을 비롯한 뇌 복제 전문가들은 윤정이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을 추출해서 복제하려고 했다. 이는 쉽게 객관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복제는 쉽지 않았다. 원인을 알아내려 하지만 파악조차 못 했던 그들은 미확인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그 부분이 정서였다. 

 

딸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전투 장애 요인으로 작동한 사실을 뒤늦게 딸 수현이 발견하게 된다. 결국, 정서가 전투력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동을 하는 것을 말해준다. 단순히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는 기계와 다른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를 극대화하는 설정이 가족과 모성애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22세기에도 여전히 인간의 자연 뇌에 관한 연구와 복제작업을 계속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당장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만 봐도 객관적인 전투 역량보다 우월하게 작동했던 것은 전쟁 참여에 관한 ‘정서’였다.

 

마침내 딸 수현은 엄마를 모성과 가족애에서 해방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엄마는 복제된 엄마다. 그 원본, 복제되지 않은 인간이라면 여전히 모성과 가족애에 바탕을 둔 자율의지와 정서적 존재로서 행복감을 추구할 것이다. 22세기까지 그랬듯이 22세기 이후에 갑자기 그것이 사라질 리는 없어 보인다.

 

영화 ‘정이’가 혹평에 시달리는 가운데 세계적인 높은 인기 순위가 미스터리하다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기존의 SF 물과 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딸-엄마 사이의 감정이 신파라고 규정되기도 했다. 신파물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감정이 없거나 거의 절제하는 로봇이나 안드로이드가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SF 물에는 감정이 존립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편견이며 고리타분하다. 적어도 그런 태도로는 대중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고 전문가 주의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세상을 움직여가는 근본 힘에 대해서 간과하는 태도일 뿐이다.

 

과학은 뭔가 객관적 합리적인 구조와 판단만이 존재해야 하는 듯이 여긴다. 우주 공간에서도 일구어가는 인산의 삶에서 여전히 사람을 밀고 가는 힘은 정서라는 점에서 과히 그렇게 비난할 바는 아닐 것이다. 정서가 만드는 미래는 여전히 22세기에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시대는 인간이 가진 감정과 정서를 찾을 수 없어 귀중한 자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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