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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탁] 자유와 공동체 세움의 행사

등록일 2023년06월06일 14시4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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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탁 뮤직 앤 아트 페어 2023’은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진행됩니다. 우드스탁 행사는 무더운 도심을 벗어나 경기도 포천시 한탄강 다목적광장에서 개최되며, 한탄강 일대의 광활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점 또한 하나의 볼거리로 꼽히고 있습니다. 뉴저널리스트 투데이는 우드스탁이 어떤 행사인지 연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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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기원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9년 8월에 뉴욕 주의 한 농장에서 열린 가장 상징적인 음악 행사 중 하나였다. 이 페스티벌은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이 페스티벌은 그러나 출발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원래 뉴욕 주 월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현지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시작하기 몇 주 전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했다.

 

1969년 8월 15일, 40만 명이 넘는 음악 애호가들이 뉴욕 주 베델의 한 농장에 모여 우드스탁 뮤직 앤 아트 페어에 참석했다. 이 페스티벌은 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우드스탁 아이디어는 뉴욕의 기업가인 존 P. 로버츠와 조엘 로저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뉴욕 주 베델의 한 농부가 그들이 장소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고 그들에게 자신의 땅을 임대할 것을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마이클 랭과 아티 콘펠드라는 두 명의 콘서트 프로모터로인해 발전되었고 그들은 대형 페스티벌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음악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것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위한 음식, 물, 위생 시설, 의료 서비스, 안전 및 교통에 대한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주최자들은 소음 수준에 대한 지역 당국의 허가를 얻어내야 했다. 

 

당시 첫 페스티벌 행사일이 다가올수록 더 많은 도전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폭우로 인해 땅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 지역 주민의 반대 운동도 골치거리였다. 지정된 좌석이나 캠핑 지역이 없어 혼잡하고 혼돈스러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도전에도 주최자와 참가자들은 굳게 버텨내며 역사적인 행사를 만들어냈다. 악천후, 진흙과 음식, 물, 적절한 위생 시설 부족 등 어려운 상황이 있었지만 분위기는 조화로웠다.
 

우여곡절끝에 1969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3일 동안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진행됐다. 당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음에도 폭력같은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음악과 자유를 즐겼고 음식, 물 및 기타 자원을 공유했다. 서로 돌보는 분위기가 이 행사를 더욱 빛나게 했다.


당시 우드스탁 공연 라인업은 역대급이었다. 당시의 록과 포크 음악계의 별들이 대거 참가했다. 지미 헨드릭스의 "The Star-Spangled Banner" 연주부터 재니스 조플린의 "Piece of My Heart"의 감성적인 공연까지, 페스티벌은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러나 음악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3일 동안 생겨난 공동체 의식이었다.

조 코커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연주도 잊을 수 없는 공연 중 하나로 기록됐다. 산타나의 라틴 리듬과 사이키델릭 록의 환상적인 융합도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우드스탁의 유산은 전쟁과 사회 불안으로 좌절한 세대와 공유되었던 평화, 사랑, 통합의 메시지였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미국 음악, 문화 및 사회에 대한 중대한 순간이었다. 이 페스티벌은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진 4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음악과 사랑의 힘을 축하한 행사였다. 이 행사는 1960년대에 미국을 휩쓴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었으며, 전통적 가치와 규범에 도전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또한 인종 차별에 도전했다.

이 페스티벌은 한 세대의 희망과 꿈을 상징하는 행사로서 기념하기 위한 방법이 되었다. 기념일에 참가자들은 1969년 공연자들과 당시 남겨진 유산에 영감을 받은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헌정했다. 페스티벌에 대한 향수는 평화와 사랑의 가치를 되새기고, 역사적 중요성을 후손들에게 전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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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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