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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1)] 비틀즈 매니아와 BTS 아미

- 레코드의 신기원: 비틀즈와 그들의 기록적인 성공 이야기

등록일 2023년11월27일 18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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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는 역대 가장 많은 앨범 판매 기록을 갖고 있는 음악 밴드다. 비틀즈는 약 6억 장의 음반을 판매해 엘비스 프레슬리(5억장), 마이클 잭슨(4억3천500만장), 마돈나(3억2천7500만장), 엘튼 존(3억2천500만장)을 제쳤다. 1988년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비틀즈는 멤버 각자도 개별적으로 헌액되었다. 롤링스톤즈 잡지는 그들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선정했고 타임 매거진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그들을 뽑았다. 비틀즈는 어떻게 역대 최고의 가수(밴드)가 되었을까. [편집자주]

 

사진 - 셔터스톡

 

(1) 비틀즈 매니아와 BTS 아미

비틀즈는 왜 그런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인기가 있을까?

그들이 전 세계 팬들을 대상으로 노래했을 때 세계는 전쟁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비틀즈는 전쟁과 반목의 시대에 청소년, 전쟁과 평화, 정부의 의제, 평등과 자유, 희망과 사랑에 관한 문제를 노래했다. 

세계인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다뤘던 것이다. 단순히 멜로디가 좋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낸 정도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큰 그림을 둔 메시지가 있었다. 

그들은 정부와 사회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지고 소외와 기회의 부족 등을 노래했다. 멜로디와 특별한 음악으로는 잠깐 반짝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를 꿰뚫는 메시지가 실린 음악은 비틀즈처럼 60년 이상 영향을 미친다.

BTS도 시대를 노래하는 부분에서 비슷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BTS의 노래 중 많은 부분이 정신 건강과 자기 가치 등을 다루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청소년들이 깊이 공감하는 주제이다. 

BTS와 비틀즈의 유사점은 그들이 팬들을 대표하는 존재와 같았다는 것이다. 대중문화 팬들은 반항적이고 절망과 소망을 갖고 있고 이들 그룹은 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비틀즈는 1963년 뜨기 전까지는 주로 클럽에서 연주했다. 비틀즈는 리버풀에서 활동하기 전인 1958년에는 독일 함부르크의 한 클럽에서 꽤 유명한 그룹이었다. 

 


1961년 11월8일자 리버풀 에코 신문에 보면 리버풀 케이번 클럽에서 비틀즈가 1번 연주자로 나선다는 내용이 나온다. 클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비틀즈는 신문에 연주자 명단에만 줄곧 나오다가 1962년 1월13일자 리버풀 에코 신문에 사진과 함께 소개됐다. 

"리버풀에서 재능있는 엔터테이너가 탄생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1년 전 리터랜드 타운 홀에서 데뷔를 한 비틀즈에 대한 출연 요구는 일상적이지 않다. 비틀즈의 최연장자는 21세의 존 레넌(기타)이고 피트 베스트(드럼)는 이제 막 20대로 접어들었고 폴 맥카트니(기타)는 올해 6월 20세기 된다. 베이스 기타를 치는 조지 해리슨은 다음 달에 19세가 된다.”

 

이 신문은 이렇게 간략하게 비틀즈를 소개한 후 보컬리스트인 토니 셰리든과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실었다. 초기에는 드러머 링고 스타가 합류한 상태가 아니었다. 같은 해 링고 스타는 피트 베스트를 대신해 비틀즈의 드러마가 됐다. 

1962년 9월에는 비틀즈의 음반이 유명해진 상태였고 비틀즈 완전체가 이뤄진 상황이었다. 리버풀 에코지는 9월15일자 기사에서 영국 대중 음악을 거론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레이블 팔로폰(Parlophone)에서 싱글을 낼 것이라고 소개했고 "Love me do"는 상업적 매력이 있는 음악으로 존 레넌의 하모니카 연주가 인상적이라고 알렸다. 10월5일 첫 싱글 앨범이 발매됐다.

 

 

“Love me do"의 인기는 높았고 비틀즈는 이후 TV 출연이 잦아졌다. 

1963년 비틀즈는 그야말로 빵 떴다. 

1963년 12월7일자 기사를 보면 그들이 1년 새 위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1962년까지 단신 기사나 신문의 음악 섹션에서 소개됐던 비틀즈는 리버풀 에코의 1면 톱기사를 장식했던 것이다. 꽤 조용히 한 공연장에 나타난 게 1면 톱 기사였다. 보통은 여성 팬들의 환호와 환성 속에 공연장에 입장하는 것에 비하면 당일 등장은 꽤 조용했음에도 1면 기사가 되었다. 

“Love me do"가 성공을 거둔 후인 1963년 3월에 발매된 'Please Please Me'는 영국에서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한 비틀즈의 첫 번째 앨범이 되었다. 세 번째 싱글 'From Me to You'는 4월에 발매되어 역시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8월에 발매된 네 번째 싱글 'She Loves You'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으며, 4주 만에 75만 장이 넘게 팔렸다. 이 곡은 천만 장 이상 판매된 첫 번째 싱글이 되었고, 1978년까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됐다.

 

 

1963년 2월에 시작된 4주간의 투어는 그들의 첫 전국 투어가 됐다. 3월과 5월-6월에 3주간의 투어가 이어졌다. 이들은 10월13일, 영국 최고의 버라이어티 쇼인 '런던 팔라디움의 일요일 밤'에 출연했는데 그들의 공연은 생중계되어 1500만 명이 시청한 방송이 됐다.

어떤 신문은 '비틀 매니아'라는 용어를 만들어 열광적인 팬들을 지칭하기 시작했다. 어떤 언론은 ‘비틀즈 걸스(BG)’를 소개하기도 했다. 비틀즈 걸스는 그들만의 독특한 화장과 패션스타일을 유지한다고 언론은 소개했다. 1963년 비틀즈는 이미 사회적인 현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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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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