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ted on DALL·E
표리부동(表裏不同)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겉과 속이 같지 않다는 의미다. 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름.”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말이나 행동과 생각이 다르다는 말이다. 겉으로는 배려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사람이 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누군가 단서(?)를 발견하고 알려주면 배신감이 들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그럴듯하게 이야기하지만, 수가 빤히 보인다.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악의적인 것이 아니라면 귀엽기까지 하다. 언행이 생각과 불일치되는 사람과 마주하면, 곧이곧대로 듣지 않게 된다. 이면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람과 마주하는 것만큼, 마음이 힘든 것도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모든 사람에게 생각과 언행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단정 짓는 것도 무리가 될 수 있지만, 사실 쉽지 않다. 생각과 언행이 자연스레 일치되는 사람은, 결이 맞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결이 맞는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게 된다. 거짓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결이 맞지 않은 사람에는 그러기 쉽지 않다. 악의를 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역정을 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사람이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듣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이 있으면 풀어가야 하는데, 듣질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듣고 싶은 것만 들려주게 된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피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하게 된다. 눈치를 본다는 말이다. 역사에서, 간신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신하의 품성이 악해서 간신이 되기도 하지만, 임금이 간신을 만들기도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꾸중만 듣게 되는데, 누가 끝까지 진실이 이야기하겠는가? 끝까지 자기의 소신을 지킨 분들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언행일치(言行一致)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표리부동은 겉과 속이지만, 언행일치는 겉으로 드러내는 말과 행동을 언급한다. 두 가지가 일치돼야 옳다는 말이다. 표리부동한 사람은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언행이 불일치되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말한 대로 행동하는지 보면 되기 때문이다. 뻔히 보이지만, 이 또한 일치시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말로는 그럴듯하게 이야기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말한 대로 행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의 상황이 빡빡하면, 그러니까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그렇게 하지만, 마음이 빡빡한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가장 흔하게 드는 예가, 운전이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잘 양보하지만, 촉박하게 움직일 때는 한 치의 양보도 없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정말이지 존경해야 마땅하다.
언행일치를 언급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처럼 살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다른 사람도 아닌,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의사의 생활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쉽게 이해된다. 진료받을 때 듣는 얘기가 있다. 잠을 충분히 자고 잘 먹고 잘 쉬라고 말한다. 이 말에 따라 하면, 오래지 않아 병이 낫는다. 하지만 의사들의 생활을 보면 그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다. 종일 2~3평 남짓한 곳에서, 아픈 사람들과 마주한다. 에너지 측면만 봐도, 에너지가 올라갈 틈이 없어 보인다. 진료 후에도 여러 일정을 소화한다. 특히 학회 활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세미나 참석은 물론 술자리도 많다. 마시는 술의 양이 엄청나다. 물론 드시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즐기시는 분들의 주량은 상상 이상이다. 만취가 됐더라도 2~3시간만 자고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하는 분들도 종종 봤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게 됐다.
말과 행동을 일치하는 건 어렵다.
악해서가 아니라, 역할에 의해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앞선 사례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본인이 좋아서 그런 일정을 소화하는 분도 있지만, 역할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분도 있다. 따라서 말과 행동은 의지의 차원을 뛰어넘기도 한다는 말이다. 역할에 의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하지만 일상에서 의지를 발휘하면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을 계속 살피면서, 일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행동은 멋대로 한다면, 필자가 용납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끔은 반성한다는 표현도 하고 마음을 다잡자는 말도 한다.
새로운 결심을 하면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것도 결을 같이 한다고 본다.
아름다운 구속이랄까? 말과 행동을 일치하기 위한 스스로가 만든 족쇄다. 사람이 가장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의지다. 자기가 자기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착각이다. 자기가 제일 통제하지 못하는 게, 자신이다. 그러니 의지를 믿지 말고 시스템에 가둬야 한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방식이 효과적이다. 새벽 기상을 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을 만든다는 사람도 있다.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실행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의지가 약하다거나 못한다고 말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