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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코드, 정치인들은 해독할 수 있을까?(4)] 개인사(가족)는 공격하지 않는다

"정적들이 서로를 악마화하지 않고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등록일 2023년12월04일 17시4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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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매회반복)] 

 

버락 오바마.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지도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 “비탄자들의 총사령관”, “미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지도자”, “절대 신념을 잃지 않은 대통령”, “모범적이고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 “쿨(Cool)한 지도자”

오바마는 많은 수식어로 전 세계인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국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공감했던 리더로 인상 깊게 기억되고 있다. 

오바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미국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해 총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퇴임 시 최종 지지율은 59%로 빌 클린턴(66%), 로널드 레이건(63%)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직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34%), 다음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34%)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오바마는 퇴임 후 몇 년이 지난 2022년 NBC 뉴스의 설문조사에서도 공인(public figure) 중 긍정평가 51%를 받아 일론 머스크(31%), 조 바이든(42%), 케빈 매카시(13%), 도널드 트럼프(35%), 낸시 펠로시(31%), 마크 저커버그(8%)를 크게 앞질렀다. 

2018년 퓨 리서치의 설문조사에서도 44%의 응답자가 오바마를 최고 또는 두 번째로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아 단연 1위에 올랐고 빌 클린턴(33%), 로널드 레이건(32%), 트럼프(19%)를 제쳤다. 존 F. 케네디는(12%)를 기록했다. 

오바마는 어떤 대통령이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물론 그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책 중에는 필자의 철학과 맞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통령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그를 높이 평가했던 이유다.

오늘날 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는 정치인이라면 오바마에게서 배울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시리즈로 나눠보기로 한다. 
 

오바마와 존 매케인. 사진 - 오바마 페이스북

 

요즘 정치를 보면 정적에 대해 불리한 내용이 나올 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더라도 공격을 가하는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정적 제거가 주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더라도 언론이나 유튜버가 왜곡된 주장을 하면 ‘누가 안 좋게 말하더라’라며 은근슬쩍 내용을 말하면서 상대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정적이지만 큰 틀에서는 동료 정치인이고 국민을 위해 함께 날갯짓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틀린 정보에 대해서는 틀리다고 말해주는 게 양심 있는 정치인이다. 

 

요즘 그런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그런 인물이었다. 

 

2008년 6월 7일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클린턴 상원의원은 오바마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클린턴의 오바마 지지는 민주당 내 화합을 주도했고 여성 유권자의 표가 오바마로 쏠리도록 했다. 이러한 지지에 대한 답례로 오바마 측은 클린턴 캠프의 빚을 갚아 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클린턴 캠프는 경선을 위해 무려 1천만 달러를 융자받은 바 있다. 오바마는 지지자들에게 이 빚을 갚아주기 위해 기부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바마의 지지자들은 실제 기부를 함으로써 클린턴의 재정 부담을 덜어줬다.

 

오바마의 인기가 높아지자 그를 반대하는 언론은 ‘두려움 전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오바마가 모슬렘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을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자극적인 풍자만화는 큰 인기를 끌었다. 오바마 측은 이에 대해 거론할 가치도 없는 풍자라고 애써 논평을 회피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도 동의했다. 그도 거론할 가치가 없는 풍자라고 했다. 

 

2008년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당시 상대 후보였던 오바마를 방어한 바 있다. 2008년 10월 10일, 미네소타주 레이크빌에서 열린 타운홀 행사에서 한 주민이 매케인에게 오바마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오바마를 '아랍인'이라고 불렀다. 당시 하와이에서 태어난 오바마가 자연 태생의 미국 시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이 한창일 때였다.

 

매케인은 이 주민의 말에 대해 "아니다. 그는 훌륭한 가정의 남자이자 좋은 시민이다. 나는 그와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의견이 다를 뿐이다. 그 정치적인 문제를 이 선거운동이 다루고 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 대화는 매케인 상원의원의 수십 년에 걸친 정치 경력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여겨졌다. AP통신은 이를 "정적들이 서로를 악마화하지 않고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는 매케인의 생각을 반영하는 대화였다"라고 했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 대화를 매케인의 가장 용감한 정치적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오바마는 당내 경선 때 상대 후보의 개인적인 약점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바마는 상대의 개인적 약점을 공격해서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강조하며 유세를 벌였다. 그는 모두가 힘을 합해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을 펼쳤다. 

 

오바마는 물론, 정책과 정치적인 내용에 대해선 신랄하고 냉소적이었다. 예를 들어, ABC의 조지 스테파노풀로스가 오바마에게 미국의 핵무기 감축 계획에 대해 세라 페일린 전 공화당 대통령 러닝메이트가 비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정말로 대답할 것이 없다"며 “페일린은 핵 문제의 전문가가 아니다. 나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의 말을 들을 것이지만 페일린의 말은 들을 이유가 없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대선 유세 당시 페일린의 10대 청소년 딸이 임신한 사실이 온 천하에 공개되면서 이미지 손상을 입었는데 오바마는 언론이 페일린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폭로하는 것을 오히려 비난했다. 결정적인 승리 요소가 개인적인 것이면 그는 공격하지 않았고 민주당 내에서는 그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바마는 자신과 일하는 사람이 개인적인 공격에 관여하면 당장 해고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미시간주 먼로에서 기자들과 페일린 딸과 관련하여 대화하는 동안 오바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정치인의 가족을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족을 정치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적절하지 않고 정치와는 관련이 없다. 우리 직원들은 이런 일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내 캠페인에서 누군가가 그런 일에 관여한다면, 그들은 해고될 것이다. 가족 이슈가 우리 정치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페일린 주지사의 정치인으로서의 업적이나 부통령으로서의 잠재적 업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멈추도록 강력히 촉구한다."
 

 

매케인이 2018년 8월 25일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나자 오바마는 바로 다음 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존 매케인과 나는 서로 다른 세대에 속했으며,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랐고, 최고의 당을 대표해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우리는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것에 대해 충실해야 함에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수많은 미국인과 미국 이민자들이 삶에서 싸우고, 전진하고, 희생해온 숭고한 것에 대해 같은 마음을 가졌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경쟁을 특권으로 여겼다. 우리는 정치적 경쟁을 고귀한 이상을 들고 국내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숭고한 이상의 수호자로서 봉사할 기회로 여겼다. 우리는 미국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으로 보았고, 시민권을 우리의 애국적 의무로 여겼다. 우리는 그런 내용이 영원히 미국에 남도록 보장하는 것에 기여하는 자로 보았다.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어려울 때 용기를 우리에게 보여줬고 우리는 모두 그의 용기에 빚을 지고 있다. 미셸과 나는 신디와 그의 가족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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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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