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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g | 오바마 코드, 정치인들은 해독할 수 있을까?(3)] 지혜로운 기자 출신 참모

오바마 캠페인의 핵심: 액설로드의 전략과 통찰 그리고 오바마의 경청

등록일 2023년11월16일 11시2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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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매회반복)] 

 

버락 오바마.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지도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 “비탄자들의 총사령관”, “미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지도자”, “절대 신념을 잃지 않은 대통령”, “모범적이고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 “쿨(Cool)한 지도자”

오바마는 많은 수식어로 전 세계인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국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공감했던 리더로 인상 깊게 기억되고 있다. 

오바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미국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해 총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퇴임 시 최종 지지율은 59%로 빌 클린턴(66%), 로널드 레이건(63%)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직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34%), 다음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34%)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오바마는 퇴임 후 몇 년이 지난 2022년 NBC 뉴스의 설문조사에서도 공인(public figure) 중 긍정평가 51%를 받아 일론 머스크(31%), 조 바이든(42%), 케빈 매카시(13%), 도널드 트럼프(35%), 낸시 펠로시(31%), 마크 저커버그(8%)를 크게 앞질렀다. 

2018년 퓨 리서치의 설문조사에서도 44%의 응답자가 오바마를 최고 또는 두 번째로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아 단연 1위에 올랐고 빌 클린턴(33%), 로널드 레이건(32%), 트럼프(19%)를 제쳤다. 존 F. 케네디는(12%)를 기록했다. 

오바마는 어떤 대통령이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물론 그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책 중에는 필자의 철학과 맞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통령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그를 높이 평가했던 이유다.

오늘날 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는 정치인이라면 오바마에게서 배울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시리즈로 나눠보기로 한다. 
 

오바마와 액설로드(2010). 사진-Pete Souza/백악관

 

3) 그의 옆에는 좋은 기자출신 지혜자가 있었다.

 

버락 오바마(1961년생)는 대통령이 되기 전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주 상원의원으로서 오바마는 널리 사랑받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흑인 상원의원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당시 오바마의 측근이 된 기자 출신의 스태프가 있었는데 이름은 댄 쇼먼(Dan Shomon)이었다. 쇼먼은 처음에는 오바마를 싫어했다. 그런데 오바마와 깊은 대화를 나눈 후 쇼먼은 그와 금세 절친이 됐고 정치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오바마는 쇼먼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치인이었다. 쇼먼의 의견이 옳다는 생각이 들면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에 옮겼다. 쇼먼의 뜻에 따라 오바마는 흑인이지만 백인 중산층과 잘 어울렸다.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백인 중산층이었던 것이 그가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주 상원의원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옮겨가기 위해 선거에 나섰던 오바마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다시 주 상원의원으로 돌아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그해,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던 그해, 오바마는 다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결과를 먼저 얘기한다면 그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아내인 미셸 오바마는 그의 연방 하원의원 재선 도전을 반대했다. 변호사였던 미셸은 “우린 돈도 없고 승산 없는 선거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버락 오바마는 그러나 “이번에 지면 정계를 떠나겠다.”라고 말하며 끝내 아내의 동의를 얻어냈다.

 

오바마는 그러나 선거에 앞서 난초에 부딪혔다. 그의 친구이자 정치 매니저였던 기자출신 댄 쇼먼은 연방 상원의원 선거는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크게 실망했다. 쇼먼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바로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 출신이자 선거 매니저로서 베테랑인 데이비드 액설로드(David Axelrod)를 만나게 됐던 것이다.

 

액설로드는 선거에 나서는 후보의 장점을 잘 간파해 이를 홍보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었다. 액설로드가 오바마 캠프에 들어간 것은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액설로드는 즉흥 연설을 잘하는 오바마가 좀 더 안정되게 연설할 수 있도록 도왔다. 원고 없이 연설하는 오바마에게 때로는 원고를 준비하도록 충고했다.

 

 

오바마가 2002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을 때 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는데 이는 액설로드와의 합작이었다. 오바마는 당시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상황에서 정면으로 조지 W. 부시 정권에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인으로서 자리를 잡게 됐던 것이다. 시카고 페더럴 플라자에 모였던 2,000명의 군중은 그의 연설에 환호를 보냈다. 그동안 무명이었던 오바마는 그 연설로 정치계의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2004년 선거에서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것이 인연이 돼 액설로드는 2007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도 참여하게 됐다. 그는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를 위한 주요 전략가이자 미디어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지에 "바락 오바마가 워싱턴에 오르도록 도울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위대한 일을 이룬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액설로드는 2007년 1월 16일 발표된 5분짜리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오바마의 캠페인 시작에 기여했다. 그는 '거리의 사람들' 스타일의 전기적 비디오를 사용하여 정치 광고에 친밀감과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당시 민주당 경선 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경험’을 강조하는 전략을 썼을 때 액설로드가 자문했던 오바마 캠페인은 ‘변화’를 주요 테마로 했고 이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변화’의 메시지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의 오바마 승리에 열쇠였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미국 전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통령 예비 선거이기에 대선 풍향계 역할을 한다. 매우 중요한 예비 선거였던 것이다. 2008년 예비 선거에서 오바마는 코커스 방식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주에서 승리를 거뒀다. 

 

액설로드는 사람들의 참여를 장려하는 전략의 전문가였다. 그는 웹 2.0 기술과 바이럴 미디어를 사용하여 민초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전략을 세웠다. 그는 오바마가 30세 미만 유권자들을 조직하고 2007년에 100달러 미만을 기부한 인터넷 기부자 47만 5천 명 이상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는 대형 기부자 및 민주당 지도자들의 강력한 지지에 의지하는 클린턴의 캠페인과 대조를 이뤘다. 

 

액설로드는 '온화한 성격'과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다. 액설로드는 흥분된 상황에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존재였다. 액설로드는 오바마가 미국의 가장 큰 문제인 인종차별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이 부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말이다. 액설로드는 CNN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오바마의 미국 역사에서의 역할을 썼다. 다음은 기고문의 요약 내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종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거의 말하지 않았지만 늘 그 이슈에 대해 부담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스패닉계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는 것을 고려하던 2009년,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대통령 본인이 겪은 무언의 부담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토마요르 판사는 첫 번째 히스패닉계 대법관이 될 예정이었고, 그녀의 성공은 많은 라틴계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상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서 모범을 보여주었고 인종차별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그는 경제 위기와 전쟁에서 승리했고, 건강보험에 관한 중요한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미국의 위상을 강화했다. 그는 또한 국민을 위로했다. 그의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결정적인 순간부터, 오바마 대통령은 비범한 모델이었다. 미국은 그의 리더십으로 인해 영원히 달라졌다.

액설로드는 자신이 쓴 책 ‘Believer: My Forty Years in Politics'에서 오바마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오바마의 연설: 오바마의 연설은 지혜롭고 설득력 있었으며, 나는 오바마가 미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 미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리라는 믿음: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오바마의 선거 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 오바마의 리더십: 오바마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가 뛰어난 리더십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 오바마의 업적과 한계: 나는 오바마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고, 건강보험 개혁을 이끌었으며, 기후 변화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오바마가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을 나는 아쉬워한다. 하지만 오바마는 뛰어난 리더이자 미국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었다. 나는 오바마가 미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에 감사하다.

 

액설로드는 오바마 캠페인에서 다음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 선거 전략 수립: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오바마가 미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오바마가 미국의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 선거 운동 지원: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선거 자금 조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오바마의 선거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 선거 운동 조직: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선거 운동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오바마의 선거 운동이 전국적으로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 선거 운동 전략 수정: 액설로드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선거 전략을 수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오바마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소개한다. 

 

Photo by Lauren Gerson. Public Domain.

 

액설로드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선거 전략 수립: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다음과 같은 핵심 메시지를 제시했다.

    * 오바마는 미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인물이다.
    * 오바마는 미국의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인물이다.

     
  • 선거 자금 조달: 액설로드는 오바마가 1억 달러 이상의 선거 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는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 중 가장 많은 자금을 모은 기록이다.
     
  • 선거 운동 조직: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선거 운동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오바마의 선거 운동이 전국적으로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노력을 했다.

    *
    오바마의 선거 운동 캠프를 전국적으로 설립.
    * 오바마의 선거 운동 캠프 간의 협력을 강화.
    * 오바마의 선거 운동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 개발.

     
  • 선거 운동 전략 수정: 액설로드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선거 전략을 수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2008년 9월에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해 미국 경제가 위기를 맞게 되자,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선거 전략을 경제 회복에 집중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액설로드의 이러한 노력으로 오바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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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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