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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라떼는] 박찬호 TOP 5% 투수

아시아 출신 최다승인 124승을 기록한 영원한 레전드

등록일 2023년01월30일 01시4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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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JT. 1997년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박찬호를 찾아갔다. 왼쪽이 영어 전문가 민병철 씨.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124승은 아시아 투수로서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한 최다승 기록이다. 메이저리그 역대 투수 다승 순위에서는 40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21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투수는 약 20,000명으로 추정된다. 20,000명 중에 403위이니 승수로만 보면 TOP 5%급 투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투수를 승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승수는 효율적 피칭을 가늠할 때 중요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성과는 박찬호뿐만 아니라 그의 팬, 에이전트 등 주변인들, 다저스 관계자 등이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박찬호는 미국 진출 자체가 어려웠을 때 그의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노력 덕에 다저스와 계약했고 타미 라소다 전 감독 등 다저스 고위 관계자들의 특별한 애정으로 다른 선수들보다는 비교적 쉽게 메이저리그 출전 기회를 얻었다.


또한, 박찬호에 대한 팬들의 한결같은 관심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작품인 만큼 124승은 기념할 만한 대기록이다. 
 

 

Photo by NJT. 박찬호의 신인 시절.


1994년: 박찬호는 1월14일 아마추어 자유계약 선수 자격으로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는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해 아마추어 드래프트가 도입된 1965년 이후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18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그는 또한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이름을 남겼다. 박찬호는 4월8일 애틀랜타 전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지만 1이닝 동안 2실점을 하고 말았다. 박찬호는 12일 후인 4월20일 마이너리그행 통보를 받았다. 더블A팀인 샌안토니오에서 그는 20경기에 선발 등판, 5승7패, 평균 자책 3.55를 기록했다.

1995년: 시즌을 트리플A에서 시작했다. 앨버커키 듀크스의 선발 투수였던 박찬호는 22경기에 선발로 나와 6승7패, 평균 자책 4.91을 기록했다. 마이너리그 시즌이 끝난 후 시즌 막판 메이저리그로 승격된 박찬호는 2경기에 등판했고 그중 1경기는 최초의 선발 등판 경기였다. 샌디에이고 전에서 100마일에 가까운 빠른 공을 던져 라소다 감독을 흐뭇하게 한 박찬호는 그러나 이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다. (통산: 무승)

1996년: 마침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는 4월6일 시카고 컵스전에 구원 등판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승리를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는 첫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48경기에 등판했다. 이 중 10경기는 선발이었다. 5승5패에 평균 자책점은 3.64였다.(통산: 5승)

1997년: 박찬호는 풀타임 선발 투수가 됐다. 제5선발로 낙점돼 시즌을 시작했던 박찬호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그는 팀 내 최다승 타이인 14승을 기록했고 상대 타자 피안타율 2할1푼3리로 내셔널리그(NL)에서 2위에 올랐다. 평균 자책은 3.38이었다. 8월11일에는 컵스를 상대로 최초로 완투승을 낚았다.(통산: 19승

1998년: 박찬호의 순항은 이어졌다. 꾸준히 90마일 중반의 강속구를 던졌던 그는 무려 15승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승 투수가 됐다. 탈삼진을 191개나 잡아내 NL 6위에, 피안타율 2할4푼4리로 3위에 랭크됐다. 무려 34차례나 선발로 나섰다. (통산: 34승)

 

 

Photo by NJT. 박찬호 전성기 시절의 피칭 모습.

 


1999년: 겨울에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박찬호는 피로 때문인지 부진했다. 평균 자책 5.23에 13승11패를 기록했다. 8월22일부터 9월28일까지 7연승 행진했지만 팀의 우승이 멀어진 상황에서 기록했다는 이유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4월23일 세인트루이스 전에서 한 이닝에 만루 홈런 2개를 허용하기도 했으며 애너하임 투수인 팀 벨처에 발차기를 시도(?)해 6월8일부터 17일까지 출전 정지령을 당해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해를 보냈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4주간 기초 군사 훈련을 함으로써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통산: 47승)

2000년: 전년의 부진을 말끔히 씻는 해였다. 그는 무려 18승(11패)을 챙기며 절정기에 있음을 보여줬다. 최초로 탈삼진 200개를 넘어(217개) 이 부문 NL 2위에 올랐으며 피안타율도 역시 2위였다. 다승 부문에서는 5위, 평균 자책 7위(3.27)에 랭크됐다. 18승은 아시아 출신 선수가 올린 한 시즌 최다승이었다. (통산: 65승)

2001년: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으로 연봉 9백90만달러를 받은 박찬호는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양철통 위에 앉아 허리 통증을 달래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자유계약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무리해서 등판했고 결국 15승(11패)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짐 트레이시 감독과 짐 콜번 투수 코치에게는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시즌 후 박찬호는 자유계약 시장 최고의 투수로 손꼽혔지만, 다저스는 그와의 계약을 포기했다. (다저스 통산: 80승)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천5백만달러에 계약을 맺은 박찬호는 예상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계속 “문제없다”고 주장했지만 2001년에 무리한 탓에 온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두 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박찬호는 25경기에 선발 등판, 9승8패, 평균 자책점 5.75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8월23일 부상자 명단에서 탈출하고 5승무패 평균 자책 2.40을 기록했지만, 더욱 심각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통산 89승)

2003년: 결국은 허리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양철통 위에 앉아서 달랬던 그 허리 통증이 전성기를 달려야 할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애너하임에서 시즌 첫 경기에 나선 박찬호는 2.2이닝 동안 6자책점을 기록했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도 3이닝 4자책점을 기록하며 벅 쇼월터 감독의 이마에 주름살이 늘게 했다. 당시 박찬호는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아 4월29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조율한 뒤 6월7일 메이저리그로 복귀했다. 그러나 2이닝 4실점을 기록한 후 곧바로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많은 사람의 만류에도 그는 복귀를 시도했지만 결국 9월2일자로 60일짜리 부상자로 기록됐다. 1천3백만달러의 연봉을 받은 그가 올린 승수는 1승이었다.(통산 90승

 

 

Photo by Midjourney. 미드저니가 그린 박찬호. 그다지 닮지는 않았다.


 

2004년: 어두운 그림자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1천4백만달러의 연봉이 팬들에게조차 부담스러운 액수가 되고 말았다. 2003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먹튀 1위’라는 비난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전히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던 박찬호는 16경기에 선발로 나와 4승7패, 평균 자책점 5.46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 레인저스는 그를 트레이드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어떤 팀도 그를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부상자 명단에 무려 98일 동안 있었다. (통산: 94승)

2005년: ‘1천5백만불의 사나이’ 박찬호는 새로운 투구 방법으로 부활을 시작했다. 허리도 많이 쉬었던 덕에 완벽에 가깝게 돌아왔다. 빠른 공보다는 변화구로 상대 타자를 요리하는 방법을 선택한 박찬호는 땅볼 유도가 유난히 많아졌다. 2005시즌의 땅볼과 뜬공 수는 100대65다. 이는 18승을 올렸던 1998년의 비율과 비슷한 수치다. 우격다짐으로 삼진 아웃을 잡으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실제 그럴 몸도 아니지만 말이다. 비로소 그는 ‘스로우(throw)'와 ’피칭(pitching)‘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몸만 괜찮다면 박찬호의 150승도 무리한 희망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해 12승 8패(텍사스 레인저스 때 기록까지 포함. 평균자책 5.74)를 기록했다. (통산: 106승)

 

2006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유니폼을 입고 7승 7패(평균 자책 4.81)를 기록하였으며, 10월 3일에는 생애 최초로 포스트 시즌 경기(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구원 등판을 했다. (통산: 113승)
 

2007년: 2007년 2월 9일 뉴욕 메츠와 1년 300만 달러(기본급 60만 달러, 인센티브 240만 달러)의 스플릿 계약에 합의했는데 1패만을 기록하고 방출됐다. 이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는데 마이너에스도 난타당하고 메이저 입성이 실패했다. (통산: 113승) 
 

2008년: LA 다저스로 복귀한 박찬호는 중간계투 및 임시 선발로 시즌을 치렀고, 54경기에 출전해 95.1이닝에 4승 4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40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통산: 117승)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구원투수로 활약을 한 끝에 3승 3패13홀드(평균 자책점 4.43)를 기록하였다. 소속팀과 함께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고 생애 첫 월드시리즈에 출전하여 무실점 투구를 선보였다.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 ⅓이닝 1피안타 1삼진을 기록한 그는 4차전부터 6차전까지 모두 등판했고 총 4경기에서 3⅓이닝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통산: 120승) 
 

 

Photo by Shutterstock. 피츠버그 시절 박찬호. 이 팀에서 통산 124승을 기록했다.


 

2010년: 뉴욕 양키스와 15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중간계투로 주로 투입되었는데 2승1패, 평균 자책점 5.60으로 부진해 방출됐다. 방출 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2승2패, 평균 자책점 3.49로 시즌을 마쳤다. (통산: 124승)
 

37세였던 박찬호는 10월 2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 3이닝 6삼진의 호투와 함께 승리 투수가 되었고 개인 통산 124승을 기록했다. 이는 일본 투수 노모 히데오가 2005년 수립한 아시아 투수 역대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 경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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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편집장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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