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LG아트센터
한 남자가 계단을 오른다. 고지가 머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은 결코 뒤를 향하지도 옆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계단의 끝,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그곳’이다.
그러나 몇 계단을 앞두고 남자는 그만 흔들리고야 만다. 순식간에 추락한 몸은 바닥을 치고 올라와 다시 계단에 안착한다.
그가 고지를 향해 뻗은 손은 떨어진 찰나의 순간에 대한 실망감과 코앞에 놓인 고지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발을 딛고 계단을 오르는 것도 잠시. 남자의 몸은 또 추락하고야 만다.
떨어졌다가 올랐다가 다시 떨어진 남자는 그가 그토록 원하는 정상에 오른 순간마저도 떨어지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떨어지는 순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엔 무엇이 담겨있을까?
중력.
중력은 인간을 지구라는 터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지지대임과 동시에 무한한 자유를 제한하는 압력과 압박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다분히 이중적인, 그래서 더 매력적인 단어이다.
그 중력을 거스르기도 하고 중력을 적절하게 이용한 예술이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애플이 사랑한 행위 예술가 요안 부르주아가 한국에 오는 것이다. 중력(gravity)하면 물리학자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부르주아가 떠오를 정도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중력을 잘 다루는 예술가이다.
프랑스 출신인 부르주아가 오는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약 3일간 내한하여 ‘기울어진 사람들’이라는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중력을 포함해 물리력을 그만의 참신한 방식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가 중력을 참신하게 표현해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진행했던 '푸가(Fugue)' 공연은 SNS 상에서 '성공은 선형이 아니다(Success isn't linear)'라는 제목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나, 마티외 스턴(Mathieu Stern)이 음악을 입힌 쇼츠 영상이 화제였는데, 네티즌들은 음악과 공연의 연출이 도전하는 인간에 대한 경의를 보여주는 듯하다며 감동을 받았다.
사람들이 감동한 연출의 중심을 맡고 있는 것은 '트램펄린'이다. 추락한 바닥에서 튕겨져 나오는 연출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램펄린은 요안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연출 도구 중 하나이자, 그가 자신의 모든 작품에 담는 '중력(gravity)'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잘 드러내어주는 장치이기도 한다.
요안 부르주아가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메커니즘을 ‘중력’으로 잡은 것은 그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 무용학 학위를 따기 전 브장송 서커스 학교를 나와 국립 서커스 예술센터를 다닌 그에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중력은 큰 부분 중 하나였다.
중력을 이용한 그의 예술적 표현은 많은 기업과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애플과 갭(GAP), LG 등의 기업이 그와 함께 작업을 했으며, 2021년 제작된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Only Murders in the Building)’ 드라마는 시즌 1의 엔딩을 오마주로 그려냈다.
작중 절망에 빠져 있던 세 명의 주인공들은 공통의 관심사로 연결되며 절망에서 회복하게 되는데, 이러한 드라마의 내용과 요안 부르주아의 트램펄린 연출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중력’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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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 부르주아의 공연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를 세계적인 공연 예술가로 만든 ‘역사의 역학(Les Grand Fantomes)’의 ‘오뚝이(culbuto)’라는 작품을 보면 중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흐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커스가 무용을 만나고 물리력을 만나니 엄청난 예술이 된다.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놀라운 예술을 뉴저널리스트 투데이 독자들이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