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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 주연 영화 '로기완'과 "이 땅을 떠날 권리" [청리성(聽利成)]

비교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온전히 누려야, 다음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등록일 2024년05월03일 15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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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

 

두 달 전에, 본 영화 제목이다. 출퇴근 길 지하철역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이 영화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허름한 옷차림에 가방을 메고 빤히 쳐다보는 한 사람이 서 있는 포스터였다. 그 사람을 보고 송중기 배우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송중기 배우라는 것에 놀랐다. 눈매가, 지금까지 봐왔던 눈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탈북자 역할이라 눈매를 조금 순박하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제목과 포스터의 느낌으로는, 시리즈로 된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상영 시간이 긴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스쳐 갔는데,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두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제목만 봐서는 한 명으로 보이지만,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람은 두 명이다. 첫 번째 사람은 제목처럼, 자유를 찾아 떠난 탈북자다. 영화 제목인, ‘로기완’이다. 첫 장면에서 그것을 설명해 준다. 탈북해서 중국에 머물다, 한 브로커를 따라 몇몇이 비행기를 타고 벨기에로 향한다. 도착해서 여권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다. 기완이 이 여정에 올라선 이유도 나온다. 기완은 어머니와 함께 숨어지내고 있었다. 연길에서 살 때, 끼지 않아도 되는 싸움에 휘말려 수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눈이 내리는 날 어머니 마중을 나갔다가 공안에 발각된다. 도망치던 중 어머니는 차에 치여 숨졌고, 삼촌이라는 사람이 어머니 시신 값이라며 돈을 손에 쥐여줬다. 어머니는 기완에게 다른 나라에 가서 자기 이름 갖고 자유롭게 살라고 유언을 남긴다.

 

기완은 도착해서 난민 심사를 받는다.

 

심사는 인터뷰를 통해 진행되는데, 운이 좋아 빠르게 1차 인터뷰를 보게 된다. 하지만 다음 인터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황하면서 그때까지 어떻게 지내느냐고 통역사에게 질문하자, 잘 버텨야지 어쩌겠냐는 무책임한 말을 뚝 떨궈놓는다. 버티는 여정이 나오는데 처절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화장실에서 잠을 청한다. 추운 겨울, 바람이 화장실 안으로 들이닥친다. 휴지를 뜯어서 발을 덮는 등 어떻게든 그 안에서 버티고자 노력한다. 낮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고, 빈 병을 주워다 팔아서 끼니를 연명한다. 동네 건달들에게 걸려 흠씩 두들겨 맞고 신발 한 짝이 강에 던져졌는데, 그걸 주우려다 물에 빠지고 만다. 온몸이 물에 젖은 채로 벌벌 떨면서 거리를 헤매다, 세탁방에 들어가게 된다. 세탁기 온도에 몸을 녹이다가, 쓰러져서 잠들어버린다.

 

버티는 여정을 보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봤다.

 

따뜻한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영화를 볼 수 있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고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일상이라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최근에, 좀 더 나은 환경과 여건이 갖춰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삶에 집중하며 감사한 마음을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더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반성하게 됐다. 이 영화가 그런 의도를 내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고 말이다.

 

세탁방에서 쓰러져 자는데, 두 번째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름은 ‘마리’다. 기완의 지갑 그러니까, 어머니 목숨값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자리를 떠난다. 어떻게 잡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경찰서에서 대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리는 기완에게 제안한다. 자신이 전과자니, 금액을 낮춰서 얘기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면 나가서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께 나온 둘은 돈을 찾으러 갔다. 마리가 지갑을 맡긴 곳인데, 그곳은 불법으로, 내기 사격을 하는 곳이었다. 마리는 그곳 선수였던 거다. 그곳 사장에게, 경기에 참여할 테니 지갑을 돌려달라고 말한다. 며칠 후 경기에서 이기고 지갑을 찾아 돌려준다.

 

 

‘마리’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본래 사격선수였는데, 어머니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그만 보내달라고 이야기한다. 마리한테는 알리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어머니가 떠났는데, 마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인 사람으로 치부한다. 이후 마리는 영화에서 보듯, 술과 마약 등을 하며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때 기완을 만난다.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기완은 자유를 그리고 마리는 삶의 이유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에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그것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 볼 수 있다. 이 둘은 서로를 만나면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정한 것으로 보였다.

 

마리는 불법 내기 사격에서 일부로 졌다.

 

화가 난 사장은 마리를 그곳으로 불러냈는데, 거기서 갱단들과 총격전이 벌어진다. 현장에 도착한 기완은 마리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사건으로 더는, 마리가 벨기에에 머물 수 없었다. 마리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해, 마리는 벨기에를 떠난다. 이때 부녀간에 앙금도 씻어내게 된다. 그렇게 떠나보내고 1년 후 기완은 마리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이 땅에서 떠나기 전에 쓴 편지였다. 편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신은 이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서, 최소한의 것을 얻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권리가 이 땅에서 한 발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전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수백 번 질문했다고 한다. “다시 모래밭에 성을 쌓아 올리는 기분으로 살아낼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고 한다. “기꺼이 그럴 수 있다.”

 

이 땅에 머물 권리가 아니라, 이 땅을 떠날 권리.

 

그것이야말로, 기완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자유가 아니었을까? 얻는 권리가 최선이라 생각하지만, 진짜 권리는 내려놓을 권리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공동체에서도 그렇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어도 나갈 때는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결정해서 선택한 무언가가 있다. 그건 내 권리를 행사한 거다. 하지만 그것을 내려놓거나 떠나야 할 때도 마음대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다. 쉽지 않다. 그간 얽힌 관계도 있고 그 외에 여러 이유가 있다. 얻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완이 말했듯이, 다시 모래밭에 성을 쌓아 올리는 기분으로 살아낼 수 있겠냐는 질문에, “기꺼이”라고 답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엔딩 화면이 올라가는 것을 보니, 좀 허무했다.

 

“결론이 뭐야?”라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 장면을 통해 결론을 내줘야, 깔끔한 느낌이 드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인듯하다. 하지만 이미 영화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려줬다.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내가 얻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자는 거다. 더 좋은 것을 원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감사한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이렇다. 내려놓고자 하는 권리는, 얻는 권리를 쟁취해야만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기완이 떠날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머물 권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머물지 않았다면 떠날 권리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두 가지 메시지가 지향하는 방향은 같다.

 

현재가 있어야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거다. 현재의 감사함으로 충만해야 또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현재의 상태에 도달해야, 그 상태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를 온전히 누려야 한다. 현재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비교해서는 안 된다. 타인에게 시선을 돌리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그 자체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현재를 부정하면,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로 발을 내디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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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전문칼럼니스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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