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여건에서 공부하게 될 의대생들. 의료계는 서남의대 사태가 전국적으로 벌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이 24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다.
전의교협은 24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탄원서 내용을 발표하게 된다. 아래 언론에 미리 공개된 탄원서 내용을 보면 의대증원을 2000명으로 할 때 기존의 의대생뿐만 아니라 새롭게 의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도 엄청난 피해가 될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게 된다.
2000명 증원에 의해 새롭게 들어온 학생들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교육시설로인해 안전사고에 노출되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복도에서 수업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교수인력의 부족으로 ‘도제’가 필수인 의학교육에서 학생이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무턱대로 의대로 들어갔다가는 준비된 의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서남의대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어 폐교가 되는 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서남의대 출신의 한 학생은 “정부가 좋은 취지로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학교만 설립하면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부실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그 학교를 졸업한 의사가 ‘내가 공공의대 출신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2020년 9월 ‘청년의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지금의 2000명 증원은 서남의대 사태와 비슷한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의료계에서는 입을 모으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계속 의대정원 증원을 유지하며 밀어붙인다면 의학교육과 의료계는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제대로 된 의사를 양성하지 못해 미래의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준비되지 않은 의사들에게 맡겨야 하는 전혀 환자를 고려하지 않은 행정을 하게 되는 셈이다.
탄원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1. 현재 교육여건으로는 과도하고 급작스런 증원 불가 (충북의대의 예)
지난 3월 20일 정부는 현재 정원이 49명인 충북의대에 200명을 배정(하며 기존보다 151명을 추가했다). 2026년부터 갑자기 200명을 교육하기에는 저희 의대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첫째, 교육기본시설 및 교육지원시설이 모두 49명으로 맞춰져 있어 151명 증원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과다인원으로 인해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 충북의대가 보유한 강의실, 카데바(해부용&연구용 시체) 실습실을 비롯한 기초의학 실습실, 임상술기 학습과 문제바탕학습(PBL)을 위한 학습공간은 모두 49명에 맞추어져 있고, (증원한다고 해도) 겨우 10~20명 여력 밖에 없다. 200명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생들을 복도에서 수업 받게 할 수는 없다.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특정 실험실에 너무 많은 학생들을 수용할 경우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다. 151명 증원은 사실상 의대 신설과 마찬가지이고, 새로운 교육기본시설과 지원시설이 마련되려면 최소 4년 이상이 요구된다.
둘째, 지금도 부족한 교수인력이 갑자기 늘어날 수가 없다. 한 명의 기초의학 전공자를 양성하는데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갑자기 증가된 교수 수요로 인해, 임상교수를 구하기도 힘들고, 개업의를 고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전국 3% 충북의 인구로는 200명의 의대생을 교육시킬 수 있는 대규모 교육병원을 유지할 수가 없다. 충북의 인구가 전국의 3%이며, 충북에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을 가진 환자분들도 자유롭게 서울로 가게 되는 현 의료전달체계의 모순 속에서, 대규모 교육병원의 지탱은 불가능하다. 의대생의 임상실습 뿐만 아니라, 전공의의 수련을 위해서는 대규모 병상을 유지할 수 있는 교육병원이 필요하나, 현재의 여건으로서는 도저히 불가하다.
넷째, 151명의 과도한 증원은 한국의학 교육평가원의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졸업생은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없게 되고, 폐과 절차를 밟게 된다. 10% 증원도 심각한 증원으로 판단하는 의학교육평가원의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정원의 증가에 따르는 교육 여건 확충, 즉 교육시설 뿐만 아니라 복지/편의시설, 교수진의 부족으로 인증 실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2017년 3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인증에 실패한 후 2018년 2월 최종 폐교 처리된 서남의대에서 실제 발생했던 일이다.
기존의 대학과 병원의 교육, 진료 인프라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립대학교 의과대학은 일률적으로 200명으로 증원하여 하루아침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보다 더 큰 의과대학을 전국인구 3%인 충북에 만들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2. 의대정원 증원 결정과 배정과정의 명백한 절차적 위법성
지난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에서는(2024.05.16.) ‘행정처분이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거나, 공공의 복리를 위한 것일지라도 처분의 위법성이 명백하다면 집행정지가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의 결정과 배정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명백한 절차적 위법성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보건의료기본법 제15조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여야 하나 지난 24년간 단 한 차례도 수립하지 않았다. 법에 따르면 보건의료자원의 조달 및 관리방안과 함께 지역별 병상 총량의 관리에 관한 시책을 5년마다 수립하여야 한다. 하지만, ‘보건의료기본법에서 정한 심의위원회’인 건정심은 2023년까지 총 3회(2003, 2018, 2021년) 개최되었으나 보건의료발전계획을 단 한 번도 수립하지 않았다.
둘째,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대학의 자율성을 확고하게 보장하고 있다. 대학의 입학정원은 학칙으로 정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학칙 변경을 위해서는 대학평의원회와 학내 자체의사결정기구(교무회의) 등의 자율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반드시 필요한 학칙 개정 없이, 정원을 확정하라는 공문을 각 대학별로 발송함으로써 명백하게 그 절차 위반을 강요했다.
셋째, 고등교육법 (32조)에 따라 학생정원은 당해 대학의 교육여건에 따라 정해야하고, 그 교육여건 즉,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른 교사, 교지, 교원 및 수익용 기본재산’에 따라 정해지는 학생수의 범위에서 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러한 법을 위배하여, 교육여건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실제로 학생정원을 배정했다. 32개 증원 대학에서 18개 대학은 아예 실사를 실시하지도 않았으며, 14개 대학도 비전문가로 구성된 전담반에 0.5~3시간의 형식적인 실사에 그쳤다.
넷째, 의대정원 배정 결정과정에서 정부는 공정성을 잃었다. 의과대학 신설 및 정원 배정은 지자체의 주요 관심사이다. 따라서 그 배정과정은 특정 지자체에 치우치지 않고, 원칙에 따라 매우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배정위원회 회의에 특정 지자체 공무원이 참석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매우 불공정하게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① 40개 대학별 의학교육점검보고서 (1차~3차 상세보고서) ② 배정위원회에 제출된 서류 ③ 배정위원회 회의록(일시, 장소, 위원 명단도 포함된)을 모두 사법부에 제출하여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의대정원 배정과정의 적법성을 반드시 판단 받아야 한다.
3. 공공복리 평가에서의 중대한 오류
지난 서울고등법원 판결은(2024.05.16.)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비교형량 판단에 있어서 공공복리를 우선하였습니다. 즉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적 전제인 의대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필수의료 및 지방의료 개선을 위해 시급한 의료개혁은 의대정원 증원 없이도 충분히 시행 가능하다. 의대증원은 10년 후에 나타나는 효과로, 현재 시급한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필수의료 분야의 법적 안전망 강화, 의료전달체계 정비, 수련환경 개선은 의대정원 증원 없이 즉각 시행가능하다.
둘째,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문제는 기피와 선호에 따른 의사의 분포 문제이지 총의사수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 과밀화 문제는 한국의 총인구수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별 삶의 생태계 문제이다. 한국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의사수를 보유한 OECD 국가들에서도,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문제가 오히려 한국보다 더 심각하다. 의사수 증가에 따른 낙수효과는 결코 관찰되지 않았다.
또한 최근 필수과 전공의 이탈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명감으로 필수과를 선택한 전공의들이 수련 도중 필수과 전공을 이탈하는 이유는 수련환경과 장래 불안에 기인하는 것이지 총의사수 문제가 아니다.
셋째, 의대정원 증원은 이미 지난 여러 정부에서 수차례 무더기로 이뤄졌고, 잘못 신설된 서남의대 폐교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 10% 이상의 증원은 사실상 신설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의학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넷째, 정부는 의료 공공복리의 재정적 위기를 대비하지 않아, 재정 파탄을 통한 공동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필수의료 관련 의료수가가 턱없이 낮게 책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재정은 2030년 31조의 적자가 예상되며,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시 2035년 14조 이상의 요양급여 증가가 예상된다.
요약하면, 의대정원 증원 없이도 정부는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시급한 의료개혁을 문제 없이 시행할 수 있다. 다른 공공 복리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 사회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 없이 의료 개혁을 의사 증원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공공 복리에 심대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다.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이 3개월째인 현 상황에서, 법원의 판단은 사태 해결에 상당한 파급효과 있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은 사태 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