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로 만든 그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겸손이라 생각된다. 겸손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에서 발휘되는 말과 행동이 그 가치를 더 높게 한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인내하게 한다. 칭찬하고 인정하고 공감하게 한다. 무엇보다 큰 효과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거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은 평소 관계가 좋아 잘 지내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음의 결이 맞는 사람도 아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충족되지 않는, 아니 전혀 다른 사람을 말한다. 마음의 결이 맞지 않고, 평소 관계도 좋지 않은 사람이다.
마음의 결이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관계가 나쁜 건 아니다.
서로 부딪힐 일이 없고 일상적인 대화만 나눈다면, 관계가 나빠질 일은 없다. 다만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게, 편하지 않을 뿐이다. 마음의 결이 달라도 어찌어찌해서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다. 관계가 나빠지는 이유는 부딪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딪히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부딪히기도 한다. 상대방의 약점 혹은 꼬투리 잡을 만한 건수가 있으면 달려드는 거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관계의 골은 더 깊어진다. 이렇게 전개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앞서 언급한 시선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뭐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옷 입은 것과 표정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말 모두가 별로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과 행동인데, 내가 기분 나쁠 때도 있다. 그 자체가 싫거나 전문용어(?)로 돌려 까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엇을 해도 기분이 별로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도 별로다. 그 자체로 그냥 싫은 거다. 하지만 가끔 마음을 좀 바꿔볼 때가 있다. 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는 거다.
‘내가 저 사람의 처지라면 어떨까?’
이 질문 하나 던져놓고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다르게 보인다. 공감되고 인정하게 된다. 이해가 가고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유가 뭘까? 그 사람의 처지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네가 아니라, 처지가 다른 너로 바라봤다는 말이다. 이 마음이 바로 겸손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내 감정과 생각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헤아려 본다. 그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삼인칭 시점이 아닌 일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는 거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 게 된다.
결이 맞지 않고 관계가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맞고 너는 틀린다!”라는 생각을 서로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겸손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맞고 틀리고의 시선이 아닌, 다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서로 잘 해보자고 모여있는 게 공동체다. 공동체를 해치기 위해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악감정이 있지 않은 이상 없다고 봐야 한다.
공동체는 겸손의 마음으로 함께 할 때 살아난다.
겸손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다름으로 바라본다. 다름으로 바라봐야 공감하게 된다. 공감해야 인정할 수 있다. 서로가 인정하는 공동체라면 어떨까? 살아 숨 쉬는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의견 충돌이 있을 순 있으나, 곧 서로의 다름을 헤아리고 잘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공동체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