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로 그린 그림
한국 내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약 20-3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들의 자녀로 여겨지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약 2만 명이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체류자격이 없기에 그 자녀들은 이땅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의 저자인 은유 작가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학습권이 주어져 이들이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지만 학교생활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주민(외국인)등록번호가 없어서다.”라고 설명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대한민국에서 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다. 고등학교까지는 공부를 할 수 있더라도 이후 공부한 것을 활용할 곳이 없다. 저임금으로 그림자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강제퇴거명령에 의해 한국을 떠나게 되는 경우 그들에게 다른 나라는 ‘외국’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처럼 살았는데 부모의 나라로 가야 한다면 그곳이 이들에게는 삶의 연속성이 없는 외국이 되는 것이다.
은유 작가는 “한국 청소년은 ‘지금 여기’를 누리지 못하고 ‘나중에’를 강요받는다. 연애도, 여흥, 놀이도 대학 가면 해야 하는데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나중에’마저 빼앗긴 아이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수정하면 좋을 표현이다. 어떤 이들은 이주한 사실이 없다. 어떤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청소년기를 보낸 ‘미등록 외국인 부모슬하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혈통적으로 보면 외국인이지만 문화, 언어, 사고는 한국인인 것이다. 줄여서 말하면 ‘미등록 청소년’ ‘미등록 체류자’가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미등록 청소년’'미등록 체류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내 미등록 청소년은 2010년 기준 약 110만 명이었다. 미등록 청소년은 미국 대법원의 1982년 플라일러 대 도우(Plyler v. DOE) 판결에 따라 초·중등 공립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지만, 고등교육으로의 진학과 경제적 지원은 큰 장벽에 직면한다.
연방 정부의 학자금 지원은 미등록 학생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일부 주에서는 학비 혜택을 제공하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즉, 부모가 재정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들은 대학을 아예 다니기 힘들다. 따라서 미국 내에서 미등록 청소년의 대학 진학률은 매우 낮다. 이들 중 약 40%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며, 졸업생 중 49%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또한, 대통령의 행정명령인 DACA(청소년 추방유예 프로그램)에 의해 2012년 도입 이후 약 40만 명 이상이 혜택을 받았지만 연방법이 아니기에 언제든 상황은 바뀔 수 있다는 불안정성이 있다. 드림(DREAM) 법안은 미등록 청소년이 군 복무나 대학 교육을 통해 합법적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여러 차례 의회 통과에 실패한 바 있다.
한국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추진 사업에 의해 1천여 명이 도움을 받았지만 2만 명으로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지난 8일 전북 김제 특장차 제조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강태완(32) 씨가 산재사고로 하늘의 별이 되면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강 씨는 6세였던 1997년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미등록 체류자로 성장했으며, 올해 정식 체류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강 씨는 최근 무인건설장비 개발 및 시험 업무를 맡던 중 건설장비와 고소작업대 사이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고 신속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 사회에 남긴 건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관심이다.
강 씨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연을 맺었던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12일 부고글에서 "태완은 저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다. 제가 죽으면 저를 추억하면서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었다"며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 갔다. 허망하다, 비통하다, 참담하다라는 말로는 제 심정을 다 표현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하지만 태완이 남기고 간 숙제가 있기 때문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산재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경찰과 노동부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만 한다. 이후 산재사고 수습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의 말에 덧붙여 우리 사회는 미등록 청소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회에서 이런 논의가 이뤄졌다. 1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무부에서 이주 아동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그 진행은 더디다. 사각지대 안에서 아동들의 인권침해는 심각하다. 2020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법무부에 대책마련을 권고한 후 500명이 구제됐고 이후에도 추가 권고가 있었지만 900명만 도움을 받았다. 인권위가 그나마 견인역할을 했기에 법무부는 어쩔 수 없이라도 구제를 했던 것 같다. 내년 2월에 이 제도도 끝난다”라고 말했다.
이에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현재 대책마련을 하고 있다. 억울한 사람들을 고려하겠다. 국내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기에 적합하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고 의원은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없는 이들이기에 법적인 관점으로 보면 안 될 것 같다. 인권위원회는 법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이들조차도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라고 권고했고 이에 안창호 위원장은 “지적사항을 유념해서 앞으로 그분들의 인권이 소홀히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
“(제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나라에 이득이 없대요. 그런데 저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시끄러워지니까 그제야 (저를) 받아줬어요. 미등록 시절에는 나를 한국에 폐끼치는 존재로 규정하다가, 비자가 나오고 합법이 되고 나니까 학교에서 제일 잘한다고 말해요. 그때는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해가 안 돼요. 제가 비자가 생긴 뒤로 학교에서 상도 받고, 장학금도 타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문제 없이 계속 지냈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걸까요?” (나이지리아 미등록 근로자의 자녀 페버, 출처: 있지만 없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