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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제논문, 홍범도는 이념이 아닌 한국의 독립, 평등, 변혁을 위해 볼셰비키와 손 잡았다

논문 Collective mem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fighter Beom-do Hong in Soviet Korean Literature

등록일 2023년09월08일 09시5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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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의 활동이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를 위한 선구적인 제시라는 주장을 하는 논문이 나와 화제다.

 

논문을 쓴 인물은 카자흐스탄의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학교의 한국인 명순옥 교수.

 

명 교수가 ‘Collective mem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fighter Beom-do Hong in Soviet Korean Literature(소비에트 한국 문학에서의 한국 독립투사 홍범도의 집단 기억)'라는 제목으로 ‘Cultura.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y of Culture and Axiology'에 낸 논문에는 홍범도의 소위 ‘공산주의’ 활동을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라는 틀에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명 교수는 영어로 작성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 정부의 주도하에, '독립 투쟁의 영웅'인 홍범도의 유해가 2021년 8월 15일 독립기념일을 계기로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그의 유해의 송환은 찬반 논란과 역사를 기억하는 투쟁의 결과로, 이른바 남-남 갈등, 즉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른 사회 정치적 주체간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했다. 정치 주체들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 역사적 인물은 국가 영웅으로 평가되거나, 러시아 혁명세력을 지지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협력자'로 낙인찍힌다. 이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두 개의 한국, 서로 다른 정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가진 한반도의 70년 분단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즉 홍범도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송환된 일은 단순히 독립유공자의 유해가 옮겨진 것이 아니라 분단으로인한 남남갈등이 옮겨진 것이나 다름 없다고 명 교수는 적고 있다. 그는 모리스 할바흐스, 발터 벤야민과 같은 세계적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며 ‘집단 기억은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데 홍범도의 경우 집단 기억이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명 교수는 “홍범도의 역사적 집단 기억의 경우, 잘 보존된 역사적 기록의 부족이 그의 삶, 세계관 및 이데올로기 여정의 재구성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명 교수는 홍범도의 경우 잘 보존된 역사적 기록의 부족으로 김세일이 쓴 홍범도 관련 역사 소설을 참고하였다고 했다. 홍범도 관련 역사소설은 남겨진 홍범도 일기장과 동료들의 추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명 교수는 이 역사 소설이 “한국 사회의 상반된 입장들을 홍범도의 침묵된 이야기를 밝혀내면서 융합시킬 수 있게 도와줄 것”으로 봤다. 

 

역사소설을 쓴 작가 김세일은 1959년 여름부터 1965년까지 7년 동안 홍범도에 관한 역사적 자료와 증거를 수집했다. 이 서사를 위해 사용된 자료에는 학자들의 글, 개인 소장의 기록과 사진, 홍범도가 직접 쓴 일기, 1960년대에 살았던 독립군 지지자들의 기억 등이 포함되었다. 김 작가는 이를 5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1989-1990년에 서울의 출판사 제3문학사, 한글 학회, 그리고 한국 학자 고송무의 도움으로 출판되었다. 책 제목은 ‘홍범도: 역사기록소설’이다. 

 

명 교수는 이 역사기록 소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기대했다. “과거와 현재, 남과 북, 그리고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명 교수는 “홍범도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러시아 혁명군에 합류함과 연결되어 있다. 홍범도는 러시아 혁명 정부의 이데올로기가 그가 추구하는 사명과 가치, 즉 국가해방과 부패한 계급이 없는 사회와 일치한다고 인식했다”라고 논문에 썼다. 다음은 논문에 나오는 홍범도가 어떤 의미로 러시아 혁명 정부와 연관지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일본과의 투쟁에서 진격하고 후퇴하면서 홍범도는 러시아 제국군 차르군 병사들에게 쫓기던 여섯 명의 러시아의 한 무리를 구조하고 그들이 볼셰비키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홍범도 부대의 병영에서 1년간 살았다. 그들은 러시아 군의 싸우는 방식을 한국 병사들에게 소개하며, 국제 상황과 국제 공산당, 볼셰비키, 혁명 정부에 대한 최신 정보에 대한 내용을 알렸다.

 

홍범도 부대의 병사들은 러시아인들이 서로를 지칭하는 데 사용한 tovarishch(또바리시. 동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tovarishch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부자인지 가난한지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볼셰비키 정권의 수장인 레닌조차도 tovarishch(또바리시)로 불렸다. 이것은 조선, 봉건적 계급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홍범도에게 이것은 변혁적 경험이었으며, 그는 이것이 그가 꿈꾸던 이상사회라고 인식했다.

 

홍범도는 또한 러시아인들로부터 러시아 제조 기관총 막심(Maxim)을 받았다. 막심은 한국 부대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봉오동 전투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로 싸우던 한국 병사들의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되었다. 청산리 전투에서 홍의 부대가 패배의 위기에 처했을 때, 막심은 승리로 이끄는 힘을 보여주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이 한국 마을을 공격하고 한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여 만주와 국경지역의 부대에게 복잡한 상황을 안겨주었다. 병사들의 희생과 무기와 자금의 고갈에 직면한 홍범도는 러시아로 가서 러시아 혁명군에 가입하고, 새로운 러시아 제조 무기로 무장해 전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919년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분위기 속에서, 레닌의 제안과 독립군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한국 부대를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략) 

 

홍범도가 러시아 토양에 발을 들여놓은 선택은 러시아 혁명 정권이 실현한 세계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믿는 데 기반했다. 홍범도는 그의 투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더 '문명화된' 소비에트 혁명군의 힘을 빌리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여정은 홍범도 존재와 꿈을 완전히 박탈했다. (중략) 

 

홍범도는 러시아 혁명군과의 연합은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것은 그의 부대의 해체와 그의 권력 박탈로 이어졌다. (중략) 

 

한국 부대의 대대적인 통합이 실패했고, 국가 독립의 실현이 방해받았지만, 그들의 투쟁 가치는 세계의 보편적 이데올로기, 즉 침략자로부터의 나라의 독립, 사회의 부패와 착취 구조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그리고 평등사회의 실현을 향해 있었다.

 

독립군의 역사를 반공산주의 담론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추구한 가치의 여정에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집단 기억의 복원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리된 두 한국 집단의 역사적 단절을 해소하고, 충돌에서 조화로, 유엔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염두에 둔 상태로 전환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포스터.

 

명순옥 교수는 또한 이 논문에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홍범도의 선택과 투쟁이 어떻게 현대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명 교수는 제시했다.

 

2030년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는 환경, 사회, 경제의 세 가지 주요 차원을 중심으로 한다. 특히 SDG 16은 평화와 정의, 그리고 강력한 제도 구축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홍범도의 투쟁은 이러한 고민(평화, 정의, 강력한 제도)을 선구적으로 제시했다고 명 교수는 해석했다. 

 

명 교수는 “국제적 맥락에서 볼 때, 홍범도의 독립 투쟁은 단순히 국가의 독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등과 변혁을 추구했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집단적 기억의 복구가 과거의 아픔에 직면하더라도 아픔을 종식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 교수는 “홍범도의 투쟁과 그의 이상은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발전과 평화를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연구와 발견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역사와 현대의 도전 사이에 깊은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미래 발전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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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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