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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6)] 1983년: 마이클, 팝의 황제로 우뚝 서다

Thriller의 대성공에서 그래미 8관왕의 전설까지, 마이클 잭슨의 불멸의 해

등록일 2023년12월06일 18시1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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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83, Michael Jackson solidified his status as the "King of Pop."

 

1980년대는 마이클 잭슨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3년은 특별히 마이클 잭슨의 해였다. 마이클 잭슨으로 시작해 마이클 잭슨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1983년 12월 23일 자 LA 타임스 기사다. 로버트 힐번이 썼다. 

"1983년 최고의 베스트 셀러 앨범은 무엇이었을까? 올해 최고의 싱글 앨범은 무엇이었을까? 1983년 영국에서 최고의 앨범은 무엇이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이었다. 

 

Thriller LP 앨범은 미국에서만 1천1백만장이 팔렸다. 이는 1970년대 비지스의 'Saturday Night Fever' 이후 최고 성적이었다. 또 다른 키워드는 뮤직비디오였다. 그리고 MTV였다. MTV에 잠깐만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대부분 가수는 빵 떴다."

Generated by Midjourney. The Jacksons’ 3D Comic Character.

 

타임 매거진도 1983년 최종호에서 '비디오가 강타했다: 음악의 혁명'이라는 커버 기사에서 마이클 잭슨, 프린스가 중심이 된 뮤직비디오가 음반 시장을 강타했다고 소개했다. 

 

​더 레코드 지는 같은 해 12월 13일 자 기사에서 "1983년은 마이클 잭슨의 해였다.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마이클 잭슨이 출연한 MTV 등 온통 마이클 잭슨이었다."라고 썼다. 

 

앨범 Thriller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이클 잭슨은 가족과 다시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만든 앨범은 ‘Victory’.

마이클은 가족과의 투어를 힘들어했지만, 가족이 너무 원해 ‘Victory’를 홍보하기 위한 ‘잭슨스 투어’에 합류했다. 마이클은 이미 Thriller 앨범과 관련된 일정으로 바빴지만, 가족들의 요청으로 이 투어에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다.

1983년 11월 잭슨 형제들이 오래전에 결성했던 ‘잭슨스’는 투어 계획을 발표했다. 이 투어의 프로모션은 복싱 프로모터로 유명했던 돈 킹이 맡았다. 돈 킹은 이 기자회견에서 혼자 말을 다 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이 투어는 음료 회사 펩시가 스폰서했다.

잭슨스의 새 앨범 ‘Victory’는 1984년 7월2일 발매됐다. 기대와는 달리 판매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이 앨범은 이전처럼 마이클과 저메인이 보컬을 맡은 게 아니었고 형제들이 각자 만든 곡을 합해 놓은 것이었기에 팬들은 외면했다. 마이클의 인기에 힘을 입어 급하게 만든 앨범처럼 여겨졌다.

 

앨범 판매는 부진했지만 ‘Victory 투어’는 인기를 끌었다. 이는 잭슨 형제들의 마지막 합동 콘서트였다. 투어는 1984년 7월6일 시작, 같은 해 12월9일 막을 내렸다. 55회의 공연에 250만 명의 팬들이 찾았다. 공연은 7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당시 공연 역사상 가장 큰 매출로 기록됐다. 팬들은 당연히 Thriller 공연을 보고자 콘서트장을 찾았다. 

이 투어에서 마이클은 싱글 장식 장갑, 검은색 스팽글 재킷, 그리고 문워크를 선보여 또다시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 이 투어는 폴라 압둘에 의해 안무가 짜여졌다. 명칭은 '월드 투어'였지만 공연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열렸다. 마이클이 호주 등으로의 콘서트를 취소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열린 Victory 투어도 원래는 참여하길 원치 않았지만, 어머니 캐서린과 팬들의 설득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투어 중 마이클과 형제들 사이의 갈등이 극심해졌으며, 12월 9일 콘서트에서 마이클은 ‘이 콘서트가 우리 형제들이 함께하는 마지막 공연’이라고 발표했다. 이 일로 마이클의 생애 대부분 동안 형제들로부터 소외됐다. 

마이클은 빅토리 투어에서 얻은 수익금 전액(500만 달러)을 유니세프와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사진 - 셔터스톡

 

마이클은 거의 매일 언론을 통해 거론되었는데 팬들에게는 그것도 부족했는지 1984년부터 그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넬슨 조지 작가가 쓴 '마이클 잭슨 스토리'는 마이클의 지인들, 음악인들을 심층 취재해서 작성된 것이었다. 이 책은 마이클 잭슨이 어떻게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최고의 컬트 피규어(cult figure)가 됐는지를 다뤘다.

한 권으로 부족했는지 마크 베고 작가의 '마이클!'도 동시에 출판됐다. 여기에 매튜스의 '마이클 잭슨', 제프 브라운의 '마이클 잭슨: 바디 앤 소울' 등도 슈퍼스타를 다룬 책이었다.

마이클은 1984년 2월에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8개의 상을 휩쓸었다. 

 

그는 1984년 2월 28일, 로스앤젤레스의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2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 남성 팝 보컬 퍼포먼스 최우수상 ("스릴러"), 남자 가수 올해의 레코드상, 남성 록 보컬 퍼포먼스 최우수상 ("비트 잇"), R&B 음악상, 남성 R&B 보컬 퍼포먼스 최우수상 ("빌리 진"), 비 클래식 음악 올해의 프로듀서상, 어린이를 위한 최우수 녹음상(E.T. 스토리북)을 수상했다.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을 때 그는 CBS 레코드의 회장 월터 예트니코프를 무대에 초대했으며 예트니코프는 "나에게 음악, 청소년, 노래 및 댄스에서 길을 열어 보여준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수상에 대해 그의 우상 중 한 명인 재키 윌슨에게 헌정한다고 말했다. 윌슨은 시상식이 열리기 한 달 전 타계했다. 마이클은 남성 팝 보컬 퍼포먼스 최우수상을 받으며 드라마틱하게 선글라스를 벗었는데 이는 배우 캐서린 헵번에게 한 약속 때문이었다.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하며 그는 퀸시 존스와 열정적인 포옹을 했다.

퀸시 존스는 행사가 끝난 후 축하 파티에서 "그는 가장 위대한 가수다."라고 선언했다. 존스는 과거 프랭크 시내트라, 레이 찰스, 리나 혼 등과 같은 위대한 가수와 함께 일했던 사람이기에 그의 발언은 의미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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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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