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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약 20년 전 2003년의 일이다. 당시 이승엽이라는 선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일본 프로야구의 왕정치가 세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55개)을 '라이온킹'으로 불린 그가 깨려고 했기 때문이다. 경기장은 그의 홈런볼을 잡기 위한 '매미채족'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57호 홈런을 시즌 마지막 날 터뜨렸다.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당시 27세)의 아시아 신기록 홈런볼은 적어도 2억은 넘게 팔렸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 구단과 관련된 업체 직원이 홈런공을 받아 구단에 무상으로 넘기는 바람에 공의 가격은 매겨지지 않았다.
이승엽의 아시아 기록 타이 홈런볼(55호)을 잡은 박대운 씨가 경매로 1억2천만원에 공을 팔았으니 56호 홈런볼의 가격은 짐작이 된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몇 억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야구공의 가격은 대략 5천원 정도이다. 지금도 공인 야구공 값이 5750원이라고 하는데 그 옛날에는 더 쌌을 것이다.
몇 천원짜리 야구공이 왜 그렇게 비싸게 팔렸을까? 야구 팬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는 그 야구공에 이승엽의 스토리와 야구계의 히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라는 종목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믿음, 긍정적 전망, 관심이 높아지며 몇 천원짜리 공이 몇 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야구가 뭐 그렇게 대단한 종목이라고, 아시아 신기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몇 억짜리 야구공이 탄생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 야구공에는 온 국민의 관심과 희망과 기록과 역사가 담겨 있었다.
NFT나 암호화폐도 그런 것 같다. 야구를 이해하지 못하면 5천원짜리가 수억이 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처럼 코인도 그렇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비트코인 그 자체는 그냥 '파일'이다. 암호화된 파일일 뿐이다. 암호화된 파일은 앉아서 한두 시간만 배우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코인에 가치가 부여되니 비트코인의 가격은 한때 1개당 8천만원까지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1원도 안 됐던 코인이 그렇게 뛴 것이다. 비트코인은 초기에는 아예 0원이었다. 1년7개월 동안 그랬다. 여기에 스토리와 믿음이 붙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이 미래의 디지털 금처럼 될 것이라는 '믿음'과 탈중앙화의 대표적인 화폐가 될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밝은 전망'과 '희망' 때문이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려면 또는 0원이 되려면 이런 믿음 기대 전망 희망이 모든 사람의 뇌리속에서 사라지면 된다.
결국 가격이 뛴 건 믿음, 기대, 긍정적 전망, 희망에 의한 가치 상승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코인이나 어떤 상품이나 그것을 만든 사람이 믿음을 주고 기대를 하게 하고 긍정적 전망,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코인 자체, NFT 자체의 가치가 아닌 그것을 제공하는 자들에 대한 믿음, 기대, 긍정적 전망, 희망이 일어나야 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했을 때 은행의 돈보다 비트코인이 더 인기 있었다. 비트코인은 어느 나라를 가도 어디를 가도 가치가 인정된다는 믿음, 기대, 긍정적 전망,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 기대, 긍정적 전망, 희망(믿.기.긍.희)을 많은 사람이 가질수록 코인의 가치는 올라간다.
한탕주의, 먹튀들이 날뛰면 잠시 투기적 현상으로 값이 올라가지만 가치는 반드시 곧 추락하게 된다.
다시 야구 얘기로 돌아간다면 이승엽의 홈런볼이 가격이 떨어지려면 어떤 일이 동반해야 할까? 야구를 사랑하는 이가 크게 줄어들면 된다. 그 숫자와 믿.기.긍.희가 줄어들면 홈런 기념볼의 값은 떨어질 것이다. 야구라는 생태계를 사랑하고 관심을 쏟고 시간을 들이고 돈을 쓰는 사람이 있는 한 그 홈런볼은 지금의 값을 유지하거나 미래에는 가치가 더 뛸 것이다.
믿음, 관심, 사랑, 희망, 기대, 소망 이런 단어는 추상명사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런 단어를 들으면 부앙부앙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부앙부앙한 단어가 눈에 보이는 무엇의 가치를 높인다.
5천원짜리 야구공이 수억원짜리가 된 것에는 추상명사가 큰 몫을 차지했다. 사람들이 야구장을 찾아 돈을 쓰고 기념품을 사고 응원을 하고 시간을 쓰는데 그것에 대해 경제적 이득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맹목적으로 사랑하니까, 추상명사가 거기에 있으니까 이승엽의 홈런볼은 지금도 인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