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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으로부터 벌써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시합 도중의 명장면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초조했던 순간들은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에서 한때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라는 문구다. 끈기와 도전을 상징한 ‘중꺽마’는 여러 가지로 패러디가 되어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하는 마음’이라는 또 다른 명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왜 우리는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명언’이라고 표현하며 간직할까? 그리고 왜 필요할 때마다 프로필 사진의 문구나, 수첩에 그 문장을 쓰고는 음미하고는 할까?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기껏해야 50자도 안 되는 문장에서 위로받고, 자극을 얻고, 즐거워 한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이게 단어와 문장이 가지는 ‘모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단어와 문장은 상황이나 감정을 압축해 세심하게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에 범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수신자에게 닿았을 때는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변한다. 모순적이지만 여기에서 마법이 일어난다. 동일한 단어와 문장이 각자의 색깔을 입고 강하게 마음에 와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합에 나가는 선수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외칠 때와 방금 세 번째 면접 탈락 문자를 받은 취업준비생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되뇔 때 ‘꺾이지 않는’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는 게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글과 이야기는 어떨까? 모두가 알 것이다. 글자가 모이면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이면 문장이 되며, 문장이 모이면 글이 된다는 것을. 만약 문장과 어휘가 저토록 강한 힘을 품고 있다면, 글과 이야기는 어떤 힘을 가지게 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답은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등 무수한 명작을 남긴 이영도 작가가 그의 소설 팬픽 백일장에 남긴 감상평 중 일부에서 찾을 수 있다.
‘삼가 직언하는데, 글을 쓰시려거든 글을 믿으세요. 선문답을 하며 멋부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믿는 사람은 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소중한 도구이기에 글을 잘 손질하려고 애쓰고요. 그게 글을 신뢰하는 태도죠. (중략) 글을 믿고 아끼시길 바랍니다.’
창작자에게 한 조언이지만, 독자들에게도 이건 중요한 부분이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글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글에서는 현실과 다르게 보지도 못한 세상이 나오기도 하고, 진리의 탐구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아픔에서 성장으로 향하는 삶의 여정이 나오기도 한다.
글이 가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힘이다. 창작자가 제약없이 풀어낸 무한한 자유는 문장이 가진 ‘모순의 힘’을 통해 독자에게 매번 새로운 경험을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작용한다. 최근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의 재개봉을 맞이하여 ‘고길동 아저씨의 편지’가 공개되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제가 '아기공룡 둘리'에서 동명의 역할 고길동을 연기한 지 4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오랜 시간을 일일이 세지는 않았으나 시간은 공평하게 제 어깨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들 제 역할을 이해한다면서요? 제가 악역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었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껄껄.
(중략)
지난봄, 한국에서 워터폴인가 어디선가 하는 회사에서 ‘얼음별 대모험’을 재개봉하게 되었다며 한 마디 요청하길래 “이제는 우리 사이의 오해를 풀고 싶다”라고 관객을 향한 제 작은 바람을 적어 보냈지요. 알고 보니 우리는 더 풀 오해가 없더군요. 이제는 이해하는 사이가 된 우리, 다들 어떠신가? 살아보니 거울 속에 제 표정, 제 얼굴이 비치시는지. 껄껄껄.’
어렸던 독자들에게 고길동이라는 캐릭터는 둘리에게 핀잔을 주는 ‘악역’이었다. 가장 공감이 가는 ‘둘리’에게 집중하며 ‘둘리’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같은 이야기를 봤을 때 ‘둘리’가 아닌 ‘고길동’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열렸다. 글과 이야기가 가진 ‘모순의 힘’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주는 능력이다. 룬의 아이들, 태양의 탑 등 장르 소설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을 쓴 전민희 작가 역시 예스24 북토크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판타지 소설은 우리 세상의 거대한 비유이자 어떤 순간에는 삶에 대한 불복종 같다는 생각을 해요. 현실이 우리를 압사시킬 때가 있잖아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윽박지를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 판타지 소설을 쥐고서 “나는 그렇게 안 살 건데?”라는 대답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 나만의 명작을 찾는다는 건, 그 힘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삶의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도 새로운 경험과 색다른 시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힘. 그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다.
힘들어 보이지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이야기의 장르가 무엇이든 좋다. 추천 도서가 아니어도 좋고, 혹평이 달린 글이어도 좋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시선과 상관없이 시간을 들여 나에게 두근거림을 선사하는 나만의 ‘명작’을 찾아내자. 의외로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글과 문장, 그리고 어휘가 주는 힘을 체험해 본다면 그때는 누군가 제안하지 않아도 알아서 글이 주는 마력에 빠져 있을 것이다.
어렵다면 하나만 읽어도 좋다. 독서는 많을 수록 다다익선이지만, 단 하나의 이야기라도 글이 독자에게 내어주는 여지는 많고, 그 여지를 채울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니까.
그렇기에, 사람은 단 한 개의 이야기만으로도 나아갈 힘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