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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태어난 아이라면 한 번쯤은 모두 디즈니 공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백설 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 등등.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그래서 더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던 디즈니 공주들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디즈니 공주들, 이렇게 변했다고?
디즈니의 공주들은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그리고 여성의 인권이 향상됨에 따라 굉장히 많이 변했다. 디즈니 르네상스 이전의 삼인방 (백설 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남성에게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캐릭터로 손꼽히는데, 백설 공주의 대표곡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언젠가 내 왕자님이 올 거야)의 제목만 봐도 이유를 알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을 원하고, 왕자님을 기대하며, 남자 캐릭터의 선택으로 환경과 삶이 바뀌던 디즈니 프린세스는 인어공주의 탄생을 시작으로 조금씩 바뀌더니 뉴 웨이브 프린세스의 영화에서는 ‘왕자’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고 있다. 디즈니 공주 스스로가 자기 삶을 개척해가고 꿈과 희망을 쫒는 흐름으로 변화한 것이다.
디즈니는 이런 변화를 보이는 것과 동시에, 과거 자신들이 만들었던 고전적 공주들의 클리셰를 직접 비판하며 코믹 요소를 만들어 낸다. ‘겨울왕국’과 ‘주먹왕 랄프’가 대표적이다.
겨울왕국의 안나는 엘사의 대관식에서 처음 한스를 만나고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고는 한스와 함께 엘사에게 가 결혼 허락받는데, 이때 엘사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엘사: 방금 만난 남자와 결혼은 안 돼. (Fine, you can't marry a man who just met.)
안나: 진정한 사랑이라면 할 수 있어! (You can if it's true love.)
엘사: 안나, 네가 진정한 사랑에 대해 뭘 알아. (Anna, what do you know about true love.)
기존 디즈니 공주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두 사람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True Love)이었기 때문인데,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주먹왕 랄프에서도 비슷하다. 주먹왕 랄프의 또 다른 주인공인 베넬로피는 운전대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세계를 찾아왔다가 디즈니 공주들의 대기실을 찾게 된다. 처음 베넬로피를 경계하던 공주들은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건넨 결정적 물음이 인상적이다.
라푼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질문 하나, 사람들이 너한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크고 강한 남자가 필요하다고 했니? (And now for the million-dollar question, do people assume all your problems got solved because a big strong man showed up?)
이런 인식적인 차이뿐 아니라, 디즈니 공주들은 외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코르셋을 찬 것처럼 잘록한 허리, 큰 눈, 하얀 피부와 장밋빛 볼, 아름다운 입술은 모아나와 라야, 그리고 엔칸토를 거치며 점차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잘못된 외적 기준을 가지지 않고 디즈니 프린세스에게서 자신을 비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잠시만, 우리도 할 말이 있어! 고전적 디즈니 공주들의 변론
고전적 디즈니 프린세스는 이처럼 많은 변화 속에서 지속해서 비판받아 왔지만, 사실 그들 역시도 당대를 비추어 생각하면 의의를 가진다.
백설 공주와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모두 1930년~1950년대에 개봉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1950년, 미디어를 비롯한 미국 문화계에서 내세웠던 바람직한 여성상은 ‘가정에서 남성과 아이를 위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40년대 큰 전쟁을 거친 이후 가족에 대한 이상이 강해진 것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이 시기의 여성은 남성의 허락이 없이는 혼자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었으며, 임신하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어야 했다. 일을 가정보다 중요히 여길 경우 이기적이라는 시선 또한 감내해야 했다.
교육받아 자격시험에 통과해도 법을 집행할 수 없었다. 명문대인 아이비리그와 군사학교 역시 여성의 입학을 불허했다. 웨스트포민트사관학교가 1976년, 하버드가 1977년이 되어서야 여성의 입학을 허용했다는 걸 생각하면, 당대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제약들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시기 속, 디즈니 공주들은 꿋꿋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선한 마음과 행동, 그리고 의지를 잃지 않는다. 신데렐라는 왕자님을 찾기 위해 무도회에 간 것이 아니라 ‘무도회’ 자체를 즐기고 싶어 했으며, 백설 공주는 난쟁이들이 고아라고 생각해 그들을 돕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삶에 왕자님이 필수 불가결이었다는 점이나, 적극적인 문제의 타파가 없었다는 점에서 한계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미디어는 사회 문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법.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고려하며 콘텐츠를 다시 봤을 때 우리는 디즈니 공주들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럼에도 기꺼운 변화들
고전 디즈니 캐릭터들에게서 의의를 찾는 일은 어릴 적 입었던 옷을 보는 것과 같다. 여러 의미나 생각을 해볼 수 있게는 하지만 현재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디즈니는 신작 애니메이션은 물론, 실사화에서도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인종적으로도 다양한 공주를 보여주려고 하고 ‘공주’에게 중요한 것은 ‘용기와 믿음 사랑’같은 가치라는 것도 꾸준히 강조한다. 더는 혈통이나 능력, 외모 같은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작중 공주들의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디즈니가 ‘공주’를 중요하게 보는 기준점이 바뀌었음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기꺼운 이유는 디즈니 공주가 여전히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콘텐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여전히 여성에게 씌워진 통상적 관념과 분위기가 있다. 여자아이니까 남자아이보다 공감을 더 잘할 거라는 기대라든지, 여자는 전략 게임이나 공간 지각에 약할 거라는 생각 등이 그렇다.
디즈니 공주들의 변화는 아이들이 여전히 사회에 남아 있는 여러 관념과 분위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이건, 더 많이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작은 장치이기도 하며 동시에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윤활유이기도 하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열악한 작업장에서의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노동자들이 근로 여건 개선과 참정권의 보장을 요청하는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그때의 치열했던 투쟁이 있었기에 우리가 보는 ‘디즈니 공주’들의 모습이 이만큼 바뀔 수 있었다. 비록 노동과 직접적인 관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뀌었고 또 바뀌어 가는 디즈니 공주의 행보를 통해 미래의 여자아이들이 이렇게 말하기를 기원한다.
‘내가 내리는 결정에 당신들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