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윤수정
“나눔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다.”
작가의 책 제목 위에 적혀있는 문구다. 나눔에 대한 작가의 철학으로 보인다. 한두 번의 경험으로 이런 소신이 만들어질 리는 없을 거다. 최근에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도 결국, 작가의 이 문장으로 귀결된다.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은 많이 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은 알겠는데, 확신이 없는 거다.
나눔이라고 해서 꼭 금전적 나눔만 말하는 건 아니다. 자기가 가진 강점이나 역량을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작가는 어떤 계기로 나눔을 생활화하게 됐을까? 나눔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본다. 나눔에 주저하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나눔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실천해보면 좋겠다.
Q.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독자분들께 인사 말씀과 간단한 소개 먼저 해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수정처럼 빛나는 세상을 만들고 많은 분께 행복을 나눠주고 싶은 행복메신저 윤수정입니다. 청주 오송에서 오송한우명가 고깃집을 7년 가까이 운영중이고, <나눌수록 커지는 10억 고깃집 비결> 전자책을 출간했어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을 더 좋아하고,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별빛 같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글로 행복을 나눠주고, 위로 글로 마음을 치유해주는 멋진 캘리그라피 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Q. ‘행복 메신저’요? 너무 좋은데요. 브랜딩으로 정하신 구체적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아! 네. 작년 가을에 ‘이프랜드’에서 인연이 된 루시아 선생님 캘리그라피 강의에 들어갔는데요. 제가 쓴 손 글씨를 공유했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붓펜하고 엽서 한 장을 선물로 받게 됐어요. 선물을 담은 봉투에, ‘행복’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걸 보니, 행복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글씨로도 이렇게 행복한 마음을 전해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 느낌이 좋아서 저도, 이런 행복감을 나누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캘리그라피를 배우게 됐어요. 도여사님께 행복을 나누고 싶다고 얘기를 하니 행복 메신저라고 지어주셨어요
자격증을 목표로 삼아서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수채 캘리 지도사 자격증과 방과 후 교육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어요. 올 초에는 평생학습관에서 수묵 캘리 과정을 배웠고, 지금은 수묵 풍경화를 배우고 있어요. 큰 붓으로 화선지에 주로 꽃을 그리는데요. 집중해서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 돼요.
깊이 있는 글씨체를 배우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 새벽 6시에 줌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제 글씨체가 점점 깊이 있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얼마 전 추석에는 봉투에 그림과 좋은 문구를 써서 드렸어요. 은행 봉투나 일반 봉투보다는 그래도, 예쁜 봉투에 용돈을 드리면 좋잖아요? 저희 직원분들도 제가 만든 봉투에 담아서 드렸어요. 한 70장 정도 됐나? 주위에 필요한 사람들한테도 그냥 다 나눠드렸어요.
Q. 70장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셨다고요?
네. 직접 그림 그리고 글씨 쓰고 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나눠드리면 받으시는 분들이 너무 행복해하시더라고요. 저도 행복하고요. 손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게 행복해서 최근에는 엽서 만들어서 지인들께 선물해 드리고 있어요.
캘리그라피를 열심히 배워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가게 벽에 멋진 작품 만들어서 걸어놓고, 좋은 글로 손님들 감동을 드리고 싶고, 공모전에도 출품할 계획을 하고 있어요. 좋은 결과가 있어서 상금을 받게 되면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좋은 돈은 좋은 곳으로 보내야 더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Q. 주변 분들이 왜 ‘나눔 여왕’이라고 하시는지 알겠네요. 대단하세요. 고깃집을 운영하신 지 6년째가 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고깃집을 운영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신랑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주말에는 아버님이 하시던 일을 했어요. 아버님이 지하수 파는 일을 하셨는데요. 아버님께서 좀 일찍 쓰러지셨어요. 50대 초반에요.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일을 못 하셨는데요. 신랑이 그 일을 대신한 거죠. 지하수 파는 큰 기계가 집에 있었거든요. 저희가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던 때라, 신랑이 회사 다니고 주말에는 지하수를 팠죠.
일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까, 몸에 무리가 왔어요.
쉬는 날 없이 일했으니까요. 허리 디스크가 터진 거예요. 서울로 올라와서 검사했는데요. 디스크가 터졌으니 수술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다시 청주로 내려왔어요. 안 좋은 일은 몰려서 온다고 하잖아요? 그때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났어요. 그때가 둘째까지 낳았을 때였거든요. (참고로, 히든 라이터는 4명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신랑이, 수술하면 못 깨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수술하지 말고, 운동해서 고치자고 마음먹은 거죠. 절에 100일 정도 들어가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수술 안 하고 절에 가서 등산도 하고 운동하면서 고칠 수 있으면, 그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100일 동안 절에 들어가서 108배와 등산을 하면서 겨울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절에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 거예요. 아파서 쉬고 있을 때,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 거죠. 기록한 거예요.
그때부터 식당을 하겠다는 꿈을 갖게 된 거죠. 신랑이 절에 있는 동안, 저랑 편지도 주고받았었는데요. 편지 내용에 자기가 해 보고 싶은 소고기 식당 멋지게 계획서 세워서 나중에 꼭 하자는 내용도 있었어요. 그게 2009년이었어요. 그 기록이 2017년에 이루어진 거예요.
Q. 아! 편지가 버킷 리스트가 된 거네요? 소름 돋는데요?
맞아요. 그런데 신랑이 절에서 내려온 다음, 생각지도 못하게 택시 강도를 만난 거예요. 망치로 눈과 머리를 치고, 지갑과 폰을 빼앗아가고 아파트 공사장에 웅덩이 파놓은 곳으로 떨어뜨렸다고 하더라고요. 정신을 잃었는데, 누가 얼굴을 톡톡 치더래요. 바로 빗방울이었대요. 그 날 비가 안 내렸다면 신랑은 이 세상에 없었을 거라고 했어요.
MRI를 찍었는데, 머리는 이상이 없고, 눈 뼈에 금이 갔다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어요. 다른 의사 선생님 말씀도 들어보고 싶어서 근처 다른 병원에도 갔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붙는다고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수술은 안 했어요.
책 쓰면서 그때 기억이 막 떠올라서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그때 참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사실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은 저한테 이런 힘든 시기가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사람들이 책을 보고 안 거예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문구인데요. 저는 항상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 따르는 법이라던데 얼마나 좋은 일이 몰려오려고 이렇게 힘든 일이 연속으로 생기는 걸까? 이 또한 지나갈 거야.”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첫째 낳고 선물해 주신 행운목이 있었어요. 셋째 임신하면서 행운목에 꽃이 핀 거예요. 행운목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잖아요? 꽃이 피면서 아이 태명을 ‘복딩이’라고 지었어요. ‘복덩이’라고 해야 하는데, 태명은 좀 촌스럽게 지어야지 좋다고 해서요.
그렇게 꽃이 피고, 8년 만에 또 꽃을 피웠어요. 블로그에 기록 해놓은 글이 있는데요. 그 이후로 두 번 더 폈어요. 백 년에 한 번 필 정도로 행운목 꽃 피우기가 정말 어렵다고 하는데, 17년 동안 총 4번 꽃을 피우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꽃이 피고 난 이후에는 그렇게 안 좋은 일이 안 생겼던 것 같아요.
Q.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원하는 식당을 하게 되신 건가요?
신랑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뭘 할지 고민하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오송, 지금 자리에서 한우명가를 하고 있던 친구였어요. 그때는 3명이 동업을 했었거든요. 그 친구가 장사도 안되고 너무 힘들어서 가게를 내놔야겠다는 얘기를 하더래요. 신랑이, “내가 인수하면 얼마에 줄 수 있어?”라고 물었대요. 3일 고민하고 결정해서 그 가게를 인수했어요.
문제는, 저희는 돈도 없고 경험도 없잖아요? 돈이 없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희 시부모님이 각 10남매 세요. 아버님 10남매, 어머님 10남매. 그래서 이모님도 되게 많거든요. 친척분들도 도와주시고, 그리고 주위에서 지인분들도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지인분 친척분들이 돈 1천만 원 2천만 원 이렇게 빌려주셨는데요. 놀랍게도 3일도 안 돼서 2억 원이라는 큰 금액이 모였어요. 그래서 가게를 인수하게 된 거죠.
처음에, 신랑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우리 통장에서 얼마나 뺄 수 있어?”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았거든요. 시부모님도 모시고 있었고 용돈도 드리고 했었으니까요. 마이너스 통장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랬죠. “마이너스 통장에서 2천만 원은 뺄 수 있어!” 저희 돈 2천만 원에 주위 분들이 다 도와주셔서 가게를 인수한 거예요. 다 빚으로 인수한 거죠. 신랑이 가게 인수한다고 갔는데요. 시부모님도 모시고 같이 갔어요. 아버님은 그 당시 ‘김영란법’과 ‘구제역’ 등 상황이 안 좋으니 반대하셨어요. 그 당시 월세가 700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안 하고 후회하느니 그냥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식당일은 신랑이 먼저 가서 배웠어요.
Q. 참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도움받기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식당하고 초기에 엄청난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내용이죠?
초창기에 손님이 별로 없을 때였는데요. 점심시간에 신랑이 식당에 있었어요. 어떤 분이 병원 갔다가 오시면서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서 들어오셨다고 말씀하셨나 봐요. 저희 점심 특선 메뉴에 불고기 전골이나 육회비빔밥은 있었는데, 된장찌개 메뉴는 없었거든요. 그래도 반찬은 있으니, 고기 드신 후 공깃밥에 서비스로 나가는 된장찌개랑 반찬을 차려 드렸데요. 식사를 마치고 그분이 식대를 주시는데, 신랑이 안 받았대요.
“공깃밥에 서비스로 나가는 된장찌개라서 식대는 받을 수 없으니, 다음에 언제 시간 되실 때 또 오세요!” 이후에 고기 드시러 몇 번 오셨어요. 몇 번 오시다가 하신 말이, 나중에 단체 예약을 하겠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근처 큰 회사 대표님이시더라고요. 연말에, 130명 단체 예약을 받았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한 번 단체 예약으로 주변 회사에도 입소문이 난 거예요. 여기 큰 가게가 있어서 단체 회식할 수 있다고요.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손님이 늘어났고 가게가 잘 됐어요. 그런데 문제는요. 다음 연도에 계속 잘 되다가, 코로나가 터진 거죠. 잘 아시겠지만, 단체를 못 받았어요. 2년 동안 또 너무 힘들게 보냈어요.
Q. 아이고. 그 기간은 어떻게 넘기셨어요?
코로나로 다들 아프고 엄청 힘든 시기였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은지 방법을 찾다가 모두 다 힘든 시기일 텐데, 동네 분들께 따뜻한 밥 한 끼로 힘을 드리고 싶어서 지역 맘 카페에 식사권 나눔 이벤트를 했어요. 저희는 포장도 됐으니까요. 응원 댓글 달아주시면 추첨해서 드렸죠. 번호가 200번까지 달렸던 적도 있었어요. 한분 한분 댓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도 있어요. 그때 되게 힘들었나 봐요. 따뜻한 댓글로 응원해 주신 분들 덕분에 큰 힘이 되었어요. 제가 나눈 것보다 10배로 받은 기분이었고 그때부터 나누면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나누다 보니 손님들이 또 찾아주셨어요. 단골손님들은 오셔서 어떡하냐며, 함께 걱정도 해주셨어요.
가게 운영하는 동안 꾸준히 나눔 했어요.
저희는 다 국산 김치 쓰는데요. 친정 아빠께서 고춧가루 농사를 지으시거든요. 그래서 고춧가루 무료 나눔 이벤트 해서 나눴어요. 오송은 고깃집만 생기는 것 같아요. 한우명가 인수한 후 걸어서 5분 안쪽 거리에 10곳 넘게 고깃집이 생겼어요. 그래서 어디만 오픈했다고 하면 손님들이 거기로 몰리는 거예요. 그러면 손님이 없잖아요? 아빠께서 인삼 농사도 하시거든요. 아빠가 걱정되시는지, 인삼을 갖다 주시면서 손님들 나눠드리라고 하시는 거예요. 반찬으로 인삼 튀김을 내보내기도 했죠. 소고기 식당에서 인삼 튀김이 나간 거예요. 단골손님들 오시면 삼계탕에 넣어 드시라고 챙겨드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많이 나눴어요.
오이를 나눔 한 적도 있어요. 신랑이 친구네 고기를 배달 갔는데, 오이가 상품 가치가 없어서 판매를 못 한다고 혹시 맘 카페에 필요하신 분 무료 나눔 한다고 글 올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근처 식당에도 무료로 나눠드리고 가게 손님들께도 나눠드리고, 맘 카페 올렸더니, 순식간에 오이가 소진되었어요. 못 받아 가신 분들 아쉽다는 글 보고, 신랑은 브레이크 타임 시간에 쉬지 않고 며칠 동안 오이를 실어다가 나눠드렸어요. 브레이크 타임 시간에 쉬지 않고 일주일 동안 나눔 한 오이가 대략 5천 개 정도였어요.
“요즘 오이값 비싸던데 좋은 일 하셨네요. 오송엔 좋은 분들이 많으셔서 이 동네 떠나기가 싫네요.”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어요. 사장님은 산타세요. 감사합니다.”
“감동이에요. 한우명가는 요즘 세상하고 다르게 아름다움을 전하시는지 마음이 뭉클하네요. 복에 복을 가득 받으실 거예요.”
맘 카페에 따뜻한 댓글 덕분에 힘든 것도 모르고 나눴어요. 나눔을 해서 그런지 손님들께서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코로나도 버틸 수 있었어요.
Q. 얘기를 들어보니까요. 식당을 운영해보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식당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나 역량은 기본적으로 좀 가지고 계셨던가 보네요?
아니에요. 전혀 아니에요.
주방도 처음에는 다 직원분만 썼어요. 저도 경험이 없으니까요. 식당은 경험은 전혀 없었잖아요? 직원들한테 다 배웠어요. 다 물어보면서 배웠어요. 홀 운영도 어떻게 하는지 잘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직원분들은 경험이 많으시니까요. 주방은 반찬하고 소스 같은 거 전부 하실 줄 아는 이모님이 계셨는데요. 건강 문제로 인해서 수술하시고 결국 퇴사하게 되었어요.
감사하게도 퇴사하기 전, 모든 레시피를 다 알려주셨어요. 주방 이모님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계셔서 눈대중으로 필요한 음식 재료의 양을 가늠하고, 손대중으로 간을 맞추셨어요. 예를 들어 한 국자라고 하면, 가득 인지 절반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저희는 거의 다 수제 소스를 쓰거든요. 된장찌개나 소면도 다 멸치, 다시마, 파 뿌리, 양파 등 모두 좋은 식재료를 넣고 육수를 내서 끓이거든요. 그러니까 맛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맛을 내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다 계량화했어요.
재료를 저울로 무게를 하나하나 재고, 계량컵을 이용해서 계량해서 양념들을 배합했어요.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큰 노력을 기울였어요. 레시피를 조금씩 수정하며 최종적인 결과물의 맛을 찾아냈어요. 레시피 계량후 1년 365일 한결같은 맛을 낼 수 있고, 제가 없어도 누구나 다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가게 운영하면서 가장 공들인 부분이 바로 레시피 계량화였어요.
음식이 깨끗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손님들께 알리기 위해 식약처 위생 등급제를 신청했어요. 위생 등급제란 음식점의 위생 상태를 평가하고 우수한 업소에 매우 우수, 우수, 좋음으로 등급을 정하는 제도인데요. 매우 우수 받는 목표를 이뤄서 참 뿌듯했어요.
평가하러 오신 분께서 일반음식점에서는 식재료 관리하는 게 많아서 매우 우수 받기가 엄청 힘든데 관리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보이지 않는 숨은 곳까지 청소하고, 관리일지 서류 만들고 몸이 하나라도 부족했는데, 매우 우수 받은 덕분에 피로가 싹 가시더라고요. 좋은 결과를 받은 건 바쁜 와중에 열심히 도와준 직원들 덕분인 거 같아요. 많은 식당이 위생 등급제에 참여해서 청결하게 운영했으면 좋겠어요. 위생적인 음식점은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손님들이 다시 찾는 장소가 될 수 있어요.
Q. 정말 지혜로운 방법을 쓰셨네요. 보통은 직원에게 시키는 데 작가님은 직원에게 들으면서 시스템을 만들어가신 거니까요.
손님들 피드백도 저희 가게 이렇게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불편한 점이나 기타 의견을 말해 주시는 손님이 계세요. 계산하면서 맛있게 드셨냐고 물으면서 여쭤봐요. 그러면 얘기를 해주세요. 맛있게 먹었는데 하면서, “여기는 좌식이라 허리가 너무 아파.”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고, 그런 거를 다 메모했어요. 메모해놨다가 신랑하고 손님들이 말씀해주신 거 같이 공유하고 바꿀 수 있는 건 다 바꿨어요. 그래서 입식 테이블로 바꿨어요. 인수했을 때는 40 테이블이 다 좌식이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불편해요. 일하시는 이모님들도 불편하시고요. 저도 처음 일 배울 때는, 상 다 치우고 설거지도 많이 했거든요. 그때는 장사가 잘 안되니까 직원이나 알바를 많이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손님들이 식사하시고 나가시면, 남은 반찬을 봤어요.
손님께서 입맛에 맞으셨는지 안 맞으셨는지는 다 드신 후 그릇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떤 반찬을 좋아하고 어떤 걸 좋아하지 않는지 파악하고, 안 좋아하는 걸 빼고 다른 걸 넣으면서, 바꿔줬어요. 반찬은 방앗간에서 짠 들기름과 참기름을 사용해서 만들고 있는데요. 확실히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만드니 반찬 리필이 많아서 행복해요. 농사지은 배추와 고춧가루로 일 년에 천 포기 넘게 김장해서 손님상에 내고 있어요. 국산 김치는 손님께서 먼저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가게 하면서 제일 행복할 때는 깨끗하게 싹싹 비워진 그릇을 볼 때예요.
처음에는 놀이방도 없었어요. ‘오송’은 아이들 손님도 많다 보니까 놀이방 있었으면 좋겠다는 손님 얘기를 듣고, 카운터 뒤에 있던 사무실 공간을 놀이방으로 만들었어요. 게임기 2대 대여해놓고, 벽도 옛날 벽지라, 신랑하고 페인트칠해서 파란색으로 바꾸고 책장과 장난감을 가져다 놨어요. 작은 놀이방이 생기니, 아이들이 참 좋아했어요. 아이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참 다양하게 고민하고 시도하셨네요. 그럼 혹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어떤 부분을 얻으면 하고 바라시나요?
책과의 인연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넷째 아들이 학교 갔다가 오면 숙제 좀 하고 책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핸드폰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했는데요. 저희 큰아들이, “엄마!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에요.”라고 하는 거예요. 이 말을 듣는데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는 큰 소리로 울리는 경고음처럼 들려왔어요. 생각해 보니, 저도 핸드폰과 TV와 친해져 있더라고요.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일 년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안 읽던 제가 작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육아 책이나 요리책 정도 본 게 전부였어요. 작년부터 자기 계발 책을 읽게 됐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하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우연히 도 여사님(<더 히든 라이터> 8회 주인공)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 피드에 윤소희 작가님(<더 히든 라이터> 11회 주인공) 책이 있더라고요. 제가 핑크를 제일 좋아하는데요. 표지가 핑크라, 표지만 봐도 너무 설레고 훅 끌린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도 여사님이 갑자기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당첨!”이라고 보낸 거예요. 그리고 책을 보내주셨죠.
그때부터 도 여사님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도 여사님이 운영하는 ‘부끌대학’ 톡방에 들어가서 다양한 작가님들의 특강을 듣게 됐죠. 대전에서 김태한 작가님 오프라인 특강이 있었어요. <제발 이런 원고는 투고하지 말아주세요> 책에 사인을 해주셨는데, 내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기적이란 문구가 제 마음을 설레게 했어요. 그때부터 책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했던 거 같아요.
낭독에도 관심이 많아 낭독 클럽도 들어갔고요. 낭독하려면 목소리가 좋아야 하니, 나의 꿈을 이루는 스피치 나이스 톡방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여기서 ‘이프랜드’ 관련 특강을 듣게 된 거예요. 라엘스피치 선생님이 고깃집 하니까 고기 관련된 도움 되는 내용으로 특강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인플루언서로 신청을 했는데, 또 운이 좋게 된 거예요. ‘이프랜드’ 5, 6기로, ‘고기 잘 고르는 언니’라고 해서, 고기 관련된 정보를 많이 나눠드렸어요.
글쓰기는 낭독 클럽에서 하는 일기예보 챌린지에서 시작했어요.
글쓰기 습관 기르려고, 신청해서 매일매일 그냥 글을 썼어요. 일기처럼 썼죠. 그러던 중, 전자책 공동 저자 모집을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쓴 글을 가지고 좀 수정해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도전했어요. 그랬더니 네 꼭지밖에 안 썼는데 너무 쉽게 책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다가, 자영업 하는 소상공인 독서동호회 언니들하고 도 여사님 만나러 대전 오매불떡에 갔어요. 도 여사님 떡볶이 가게 방문했다가, 전자책 얘기가 나온 거예요. ‘부끌대학’에 전자책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주셔서 4명 모두 신청한 거죠. 그렇게 다 같이 전자책 출간을 했어요.
7월 17일부터 시작해서 8월 30일까지 6주 만에 완성된 책인데요. 기한이 있으니까, 6주 동안 어떻게 해서든 쓰게 되더라고요. 기한이 없으면 계속 미루게 되잖아요. 마감기한이 주는 힘은 목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Q. 그러시군요? 그럼 독자분들이 이 책에서 어떤 부분을 얻으면 하고 바라시나요?
저는 힘든 시기를 다 극복하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그래서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고 용기와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10억이’라는 말을, 제목에 안 넣고 싶었는데요. 숫자를 넣어야 끌린다고 해서 넣었어요.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손님들 이야기도 많이 담았거든요. 7년 가까이 한우명가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손님을 만났어요. 기억에 남는 분이 지금 생각났는데요.
12월 말일이었어요. 가족 단위로 고기를 드시러 오셨었는데, 밖에 다녀온 손님께서 갑자기 가게에서 쓰러지신 거예요. 신랑이 부랴부랴 급하게 뛰어갔는데, 혀가 기도를 막고 있어서 골든 타임을 놓치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신랑이 함께 오신 가족분께 응급처치해드려도 되냐고, 동의를 구하고 응급처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119 응급차 타고 가시고 난 후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송한우명가 사장님께 정말 감사하는 말씀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맘 카페에 글이 올라왔어요.
친정엄마께서 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하고 정말 기적적으로 깨어나셨대요.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고 친정엄마 머리에 무리가 갈까 외출을 조심하는 편이었는데 발작이 일어나서 놀라셨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던 차에 한우명가 사장님께서 급히 달려오셔서 친정엄마의 기도를 확보하고 응급처치해주셨다고 홀어머니를 모시는 저희 남매에게는 새해에 가장 기억에 남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시면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응급차가 오다 보니, 상황설명을 하지 못해서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해서 글 남기신다면서 장문의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시아버님께서도 저희 결혼식을 앞두고,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가 결혼식 때 기적적으로 깨어나셔서 그 심정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고, 신랑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책에도 그 내용을 담았어요.
Q. 네. 책 내용이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따뜻한 나눔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저는 진짜 유명하거나 잘난 사람도 아닌데요. 그런 저도 해냈으니까, 여러분 모두 꼭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일이든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시작하세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어요.”
“실패하면 성공할 때까지 또 도전하면 돼요.”
6년 전에 돈도 없고 경험도 없이 오송에서 제일 큰 규모의 160석 문 닫은 가게를 인수해서 기부와 나눔으로 망한 가게를 살릴 수 있었는데요. 많은 분이 나눔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재능이면 재능, 나아가 어려움을 겪을 때, 따뜻한 손길과 눈길이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저 역시 힘든 시기에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버티고 버텨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기부와 봉사를 항상 실천해왔던 노력의 결실로 봉사 표창패 수상의 행운도 얻게 되고, 시에서 주신 표창패는 동기부여가 되어 앞으로 더 많이 나눔하고 봉사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어요.
나눔과 봉사를 하면 무엇보다 저 자신이 행복해지고, 좋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일이 몰려오더라고요.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고,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모든 분이 따뜻한 나눔으로 성공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어요. 행운목에 꽃 피는 것처럼 각자의 행운목에 꽃이 피는 그런 삶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인터뷰어의 나가는 말>
인터뷰하면서 알게 되었다.
작가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이다. 본인 스스로가 말하는 나눔과 주변의 도움도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기에 더한 한 가지가 있다. 경청이다. 작가는 경청을 참 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식당을 인수하고 직원들의 말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들었다.
보통은 어떤가? 자기가 사장이니 자기 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누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 배운다는 마음으로 그분들의 의견을 잘 듣고 반영했다. 또 있다. 손님들의 의견도 세심하게 챙겼다. 무엇이 불편하고 뭐가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반찬을 보고 반찬의 호불호를 살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속으로 “와!”라고 감탄했다.
이 또한 고난도의 경청이라 볼 수 있다. 말로 하는 것 이외의 것을 통해 고객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작가의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한 책을 출간할지도 모르겠다.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