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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을 넘어서 미래에 필요한 것 [김헌식 칼럼]

-학문적 교육의 미래가 인재를 살린다

등록일 2023년07월07일 19시2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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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주연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과학자’에는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선 킬러 문항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상위 1%만 진학하는 자사고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은 일이 끝난 밤이면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를 푼다. 자사고에 근무하는 경비원까지 면학에 힘쓰는 모습 같다. 어느 날 낮은 점수의 수학 성적 때문에 학교는 물론이고 기숙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1학년 학생은 경비원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다음 날 아침 학생은 자신이 풀어야 할 수학숙제에 답이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학생은 놀라며 경비원을 졸라서 수학을 알려달라고 조른다. 끈질기고 집요한 학생의 간청에 못 이긴 경비원은 그 학생의 딱한 가정환경까지 알게 되면서 수학을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지도하는 수학 문제 풀이는 학교 수업과 판이하였다. 왜 이러는 걸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학생은 당연해 보였다. 입시 문제 수학 풀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경비원은 북한에서 탈출한 천재 수학자였다. 세계적으로 어렵다는 리만 가설까지 풀어낸 장본인으로 관련 논문까지 집필했다. 점점 학생은 원리를 터득하면서 수학에 대해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천재 수학자가 의도했던 바였다.

 

그런데 영화의 중반 이후에는 이 천재 수학자 때문에 학생이 위기에 처한다. 성적은 오르는데 몰래 학교 교무실에 갔던 사실이 밝혀졌고, 이 때문에 시험 문제를 절도한 범인으로 몰리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탈북천재 수학자의 최고 논문을 출력하러 갔을 뿐이었다. 오로지 학생의 억울함을 밝혀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도 자신이 남한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학생이 학교에서 쫓겨난 위치에 처하자, 마침내 그는 용기를 낸다. 무엇보다 이때 그가 스스로 자신을 밝히면서 수학에 대한 남북한의 태도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북한에서는 수학 연구가 오로지 무기를 만드는 데 쓰여서 수학을 마음대로 연구할 수 없기에 북한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남한에 오니 이번에는 남한에선 시험 성적 잘 받아서 좋은 데 취직하려고 수학을 공부하더라.’

 

영화 제목에서 언급한 ‘이상한 나라’는 사실상 남과 북을 모두 공통으로 지적하는 셈이다. 북한의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은 학문적인 차원에서 연구하는 수학을 논하고 있었다. 자사고 학생에게 강조한 점은 학술적인 관점에서 원리를 공부하는 태도였다.

 

처음에는 낯설게 여겼던 학생은 점차 원리 중심으로 접근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선생님의 문제 풀이 방식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교사는 원리보다는 문제를 푸는 스킬 특히 출제자의 의도에 맞추어 답을 맞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은 전혀 밀리지 않고 오답은 오답이라고 지적한다. 이후 더욱더 교사는 학생을 괴롭히는 데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학생을 답안 절도 범죄자로 몰아가기에 이른다. 더구나 학원과 짜고 학원에서 낸 문제를 교내 수학 경시대회에 내건다. 물론 이런 교사의 행태는 현실에서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수학에 대한 잘못된 교육과 이를 조장하는 입시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영화의 마무리는 한국이 아니라 제3국에서 천재 수학자와 학생이 연구를 이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를 통해서 미뤄보자면, 영화는 한국에서는 수학을 원리를 중심으로 학문적 탐구가 있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표현하려 했는지 모른다.

 

킬러 문항 논란을 보면 이러한 점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서 지적했듯이 고등학교 1학년생이 이미 3학년 과정을 선행 학습해 놓고 있고 이는 모두 사교육 덕이었다. 공교육의 정규 과정대로 학습하는 학생은 수학 포기자가 되기 딱 알맞았다. 다른 학생들과 실력 차이가 월등하기에 능력과 관계없이 열등생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행학습을 하는 것은 다른 학생보다 유리한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당연하게도 이는 의대를 중심으로 한 인기 학과에 진학할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는 수포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는 물론이고 입시 시스템이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원리를 탐구하는 태도는 결코 당장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가져다주지 않고 진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다만,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생명은 살리지만, 수학을 연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수학의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움직인다. 2022년 7월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국제수학연맹(IMU)이 최고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제도권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하고, 고교 1학년에 자퇴했으며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 과정을 마쳐야 했다. 본래 대학의 전공도 물리학이었다. 하지만 오랜 연구에 대한 자질을 키웠다.

 

이런 과정이 있어서 그는 50년 동안 난제였던 리드 추측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풀었고, 그의 해법은 정보통신, 반도체 설계, 교통, 물류, 기계학습 등 다양한 방식에 쓰이고 있다.

 

지금까지 수학을 언급했지만, 수학은 킬러 문항의 단골 과목이다. 킬러 문항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고 분명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관점을 좀 넓혀서 킬러 문항의 논란 와중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서 어떻게 입시에 정립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역량 있는 인재들이 도태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수학만이 아니라 여러 학문에 모두 해당하는 것이다. 뛰어난 인재들이 한국에서 묻히거나 외국으로 유출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영화에서 외국에 가야 했던 두 사람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허준이 교수도 미국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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