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A 캠퍼스 내에 있는 재키 로빈슨 등번호 42번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필자.
온라인 전일제 대안학교 증강세계관학교의 목요일은 '무비 데이'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미국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13일) 미국 역사 시간에 학생들과 필자는 영화 ‘42’를 보았다.
'42'. 무슨 뜻일까?
바로 미국 최초의 유색 인종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다. 그 등번호를 따서 만들어진 영화다. 감독은 브라이언 헬겔랜드.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컥했다. 이 영화를 벌써 3번째 보는 것인데도 감동이 밀려왔다.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은 1943년부터 50년까지 브루클린 다저스의 구단주로 활동한 브랜치 리키 덕분이었다.
리키는 재키 로빈슨에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당시 흑인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없었는데 자신이 왜 흑인 선수를 영입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학 코치 시절 원정길에 올랐다가 팀내 최고의 선수이자 흑인인 찰스 토머스가 숙박 거부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실랑이 끝에 자기 방에서 재우기로 한 리키는, 토머스가 자신의 검은 피부를 한탄하며 통곡하는 것을 보고 이 잘못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리키 구단주의 이야기를 미화된 허구라고 이야기하지만 토머스의 일대기를 쓴 리 로웬피시 작가와 토머스 자신이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증인이 되어줬다.
이 이야기는 뉴욕 타임스에 실렸다. [관련 기사 클릭]
리키는 재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의 존재가 나로하여금 야구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리키 구단주는 “고맙다”라고 재키에게 진심을 다해 인사한다. 리키 역을 맡은 해리슨 포드의 연기는 감동적이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뉴저널리스트 투데이를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이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반응이었다.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이러쿵저러쿵 말만 많았다. 그래서 언론을 통한 변혁이라는 사명을 갖고 태평양을 건너온 나는 언론을 운영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재키 로빈슨 정도의 핍박은 아닐지라도 약간은 비슷한 외로움, 분노가 내 안에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때 김영태 전문 칼럼니스트가 정말로 꾸준히 일주일에 두세 꼭지씩 글을 올리고 있었다. 마치 재키 로빈슨이 “나는 사람들의 차별적 발언을 신경쓰지 않고 야구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김영태 칼럼니스트는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정해진 날짜에 글을 올렸다.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도 밥을 먹은 적도 없고 심지어 전화 한 통 한 적도 없는데 그는 그렇게 자성지겸예협을 보였다. 자성지겸예협은 자발성, 성실함, 지속성, 겸손, 예의, 협동심이다.
어쩌면 리키 구단주의 심정이 나와 비슷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빈슨의 열심과 재능과 자발성과 성실함과 지속성이 리키 구단주로하여금 야구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게 했듯, 나도 언론에 대한 관심과 사명을 회복할 수 있었다. 김영태 칼럼니스트는 나에게 재키 로빈슨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언론사 운영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함이 느껴지지만 나에게는 재키 로빈슨과 같은 존재가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이런 분들이 최근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 이런 분들 2명, 5명, 10명, 100명, 1000명이 모인다면 첫 흑인 메이저리거 덕분에 미국 문화와 사회가 변화가 있었듯, 언론과 한국사회도 변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장 쓰러질 듯 힘들지만 힘을 내어 달려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