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승 교수가 의료계와 정부에 1년 유예를 제안하고 있다. Photo by NjT.
“30년 동안 환자만 조용히 보고 이런 자리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제가 나왔을 때 어떤 심정으로 이렇게 하는지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와 의료계에 지혜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12일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월 말까지 정상 진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의료 파국이면서 시국선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피해는 지금의 환자와 미래의 환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의인 방 교수는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이 그대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USMLE(미국의사면허시험) 시험, 필리핀 시험, 싱가포르 시험 많이 보는데 그들이 왜 힘들게 공부해서 남의 나라 국민을 치료해야 하나? 우리나라 국민을 치료해야 하지 않나?”라며 정부와 의료계가 지혜를 모아서 비상시국을 비켜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2012년에 OECD가 한국 의료계를 조사해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의사 수가 모자라지 않다고 했다. 12년이 지났으니 새로운 조사가 필요하고 당시에도 1년의 조사 기간이 필요했기에 1년 후에 합의된 결과를 갖고 1천명을 늘려야 한다고 하면 의료계나 정부가 동시에 1천명을 늘려야 한다고 일치된 결과로 말을 하자”고 제안했다.
방 교수는 “1년 동안 OECD와 같은 외국의 공신력 있는, 검증된 제3의 기관에 연구를 의뢰하고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의뢰하면 몇 개의 연구가 1년 뒤에 취합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합의, 일치된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 낸 통계를 가지고 이렇게 계속 싸울 것 같으면 피해를 보는 쪽은 국민이다. 그래서 저희가 추천하는 것은 외국 기관과 국내 기관의 연구 자료를 1년 후에 취합해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 협의체가 필요하다. 정부, 위협만 해서도 안 되고 정부, 의협, 국민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여당, 야당의 정치인, 전공의도 대화 협의체에 들어가야 한다. 전공의는 필수인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들을 포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방재승 교수는 이어 “현재 의사 수 증원보다 필수/공공 의료 살리기가 더 급하다. 국가적으로는 저출산, 이공계 R&D 예산 삭감, 반도체 전쟁 등이 더 시급하다. 연구가 진행되는 1년 동안 이런 이슈를 살피고 대화 협의체에서는 필수 의료 패키지, 지역/공공 의료 살리기 패키지 등을 논의해서 정책을 수립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국가를 위해 더 나은 것 같다”라고 서울대 비대위의 견해를 전했다.
그는 또한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촉박하다. 당장 내년도 신입 의대생 수를 결정해야 하기에 교육부 일정도 촉박하다. 의사 수 증원을 합의한다고 해도 각 지역 간의 의견 대립 소지가 다분하다. 저희 생각은 의사 수 증원보다는 필수/지역/공공 의료 살리기가 더 시급하다고 본다. 의협과 교수들은 정부가 내놓은 ‘필수 의료패키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나중에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이 없다고 하면 끝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협의체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방 교수는 비대위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면 의대생과 전공의 전원 복귀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비대위 대외협력팀장인 김준성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의대 증원은 행정 편의주의”라며 “2,000명 증원은 의학자를 무시하는 태도고, 서울의대 교수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현재 의사들의 집단 이탈은 개개인의 결정이지, 누가 강요한다든가 핵심 세력이 있는 게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뉴저널리스트 투데이가 2022년 OECD의 통계를 리서치해본 결과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가 2.6명으로 이는 일본(2.6명)과 같으며 미국(2.7명), 캐나다(2.8명)와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도 3.2명이다.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오스트리아로 5.5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의대 졸업생은 인구 10만 명당 7.2명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최하위에서 2위였다. 꼴찌는 이스라엘로 6.8명이었다. 미국(8.5명), 캐나다(7.4명), 일본(7.3명)도 모두 최하위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