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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g | 오바마 코드, 정치인들은 해독할 수 있을까?(10)] 토론을 즐기며 논리적 사고와 표현 능력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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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4년08월25일 22시5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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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g | 오바마 코드, 정치인들은 해독할 수 있을까?(10)] 토론을 즐기며 논리적 사고와 표현 능력 키워

​[들어가는 말 (매회반복)] 

 

버락 오바마.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지도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 “비탄자들의 총사령관”, “미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지도자”, “절대 신념을 잃지 않은 대통령”, “모범적이고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 “쿨(Cool)한 지도자”

오바마는 많은 수식어로 전 세계인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국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공감했던 리더로 인상 깊게 기억되고 있다. 

오바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미국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해 총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퇴임 시 최종 지지율은 59%로 빌 클린턴(66%), 로널드 레이건(63%)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직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34%), 다음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34%)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오바마는 퇴임 후 몇 년이 지난 2022년 NBC 뉴스의 설문조사에서도 공인(public figure) 중 긍정평가 51%를 받아 일론 머스크(31%), 조 바이든(42%), 케빈 매카시(13%), 도널드 트럼프(35%), 낸시 펠로시(31%), 마크 저커버그(8%)를 크게 앞질렀다. 

2018년 퓨 리서치의 설문조사에서도 44%의 응답자가 오바마를 최고 또는 두 번째로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아 단연 1위에 올랐고 빌 클린턴(33%), 로널드 레이건(32%), 트럼프(19%)를 제쳤다. 존 F. 케네디는(12%)를 기록했다. 

오바마는 어떤 대통령이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물론 그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책 중에는 필자의 철학과 맞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통령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그를 높이 평가했던 이유다.

오늘날 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는 정치인이라면 오바마에게서 배울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시리즈로 나눠보기로 한다. 
 

대학시절 오바마

 

LA 인근 대학인 옥시덴탈 칼리지에 입학한 버락 오바마는 입학 초기부터 인종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특히 흑인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흑인문화에 대해 아들에게 가르칠 게 거의 없었다. 그저 격려만 할 수 있었다. 오바마는 주로 옥시덴칼 칼리지의 흑인 단체 학생들과 교제를 했다.

 

교제 가운데 그는 흑인도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가졌음을 인식했다. TV에서 보는 획일된 거친 흑인만 있는 게 아님을 그는 알게 됐다. 흑인도 백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오바마는 당시 캠퍼스에서 진행 중이던 남아공화국의 차별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남아공은 흑백 차별정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차별정책으로 백인은 각종 특혜를 받았지만 흑인은 반대였다. 그가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발견한 게 하나 있었다. 그가 목소리를 높일 때 사람들이 그의 말을 경청했던 점이다.


고교시절 농구와 파티에만 빠져 있던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드디어 자신이 해야할 다른 일을 발견했다. 그는 토론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는 학우 및 교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해변가가 아닌 커피하우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단순히 토론만 즐긴 게 아니었다. 오바마가 다녔던 학교는 토론을 잘하는 남학생이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오바마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솔직히 그런 점도 있었다.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커피숍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가 되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한 커피숍에서 토론을 하던 중에 여학생이 오바마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봤다. 오바마는 ‘버락’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버락’의 뜻은 아랍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 여학생은 오바마에게 “앞으로 버락으로 불러도 되겠냐”고 물었고 오바마는 미소만 지었다. 오바마는 ‘배리’ 대신 원래의 이름인 ‘버락’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조모인 매들린 던햄은 버락이 이 대학에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2년 동안 지내면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옥시덴탈 칼리지의 로저 보시라는 교수는 오바마에게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버락은 놀라운 재능을 가진 젊은이었다. 그가 재능을 발휘하도록 나는 그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오바마는 이 학교에서 자아를 중심으로한 사고방법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보시 교수는 오바마의 두뇌를 자극했다.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에 다녔던 당시를 회상하며 “내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 외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 공헌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시 교수의 거센 교육 방법이 오바마에게는 자극이 됐다. 그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1981년 봄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의 규모가 작고 자신이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판단해 콜럼비아대학교로 전학하기도 했다. 콜럼비아대는 뉴욕에 있는 대학이었다. 오바마는 큰 도시에서 더 얻을 게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오바마

 

1981년 가을 학기에 콜럼비아대학에 등록한 오바마는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했다. 뉴욕은 LA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차량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고, 길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으며, 지하철이 발달해 있고, 24시간 움직이는 도시였다. 콜럼비아대학에 다니면서 오바마는 하루 3마일을 걸어다녔고 일요일에는 금식을 했다.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운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기를 썼고 때로는 시를 작성하기도 했다. 또한 독서량은 엄청났다. 오바마는 니체, 에르만 멜빌, 토리 모리슨이 쓴 책을 탐독했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다. 독서에 빠진 그를 두고 모친인 앤 던햄과 동생인 마야는 ‘수도승처럼 산다’고 놀려대기도 했다.

 

이 대학에 입학한 2년 후 졸업을 하게 된 오바마는 정치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 2년은 오바마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이곳에서 소위 ‘오바마 사상’을 만들었다. 그는 외로웠기에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했다. 마치 사상가처럼 살았다.

 

그가 학위를 받았을 즈음에 케냐에서 비보가 들렸다.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오바마는 LA 인근의 옥시덴탈 칼리지에 입학하면서 인종 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흑인 문화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인 그는 주로 흑인 단체 학생들과 교류하며 흑인 문화의 다양성을 인식했다. 특히,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캠퍼스 운동에 참여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 기울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그는 토론을 즐기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논리적 사고와 표현 능력을 키웠다. 로저 보시 교수는 오바마에게 잠재력을 극대화하도록 격려했으며, 이는 오바마가 타인을 위한 공헌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1981년, 오바마는 콜럼비아대학교로 전학하여 뉴욕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뉴욕에서 그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사상적 기반을 다졌고, 정치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사회적 정의와 평등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확립했다. 졸업 즈음에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나, 이는 그의 결단력과 동기를 더욱 강화시켰다. 이러한 경험들은 오바마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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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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