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월드컵 경기장. 정작 아프리카 땅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검은 돌풍이 없었다. the FIFA World Cup 2010 quaterfinal between Uruguay and Ghana, 2 July 2010, Soccer City, Johannesburg
이것을 '황색돌풍'이라고 해야 할까.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 예선은 아시아 팀들의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메시의 아르헨티나에 2-1로 승리한 다음날 일본이 전통의 강호 독일을 2-1로 꺾었고 한국도 우승후보 우루과이와 0-0으로 비겼다. 그리고 이란이 유럽의 다크호스 웨일스를 2-0으로 누르며 4일 연속 아시아 돌풍이 이어졌다.
4일 동안 3승1무를 기록한 아시아 팀들은 단순히 스코어에서만 좋은 결과를 낸 것이 아니라 경기 내용이 매우 좋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전 세계 일부 언론인 중에는 아시아가 이렇게 가다간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어떤 언론인은 아시아의 돌풍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는 ‘황색돌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검은 돌풍’을 패러디한 표현이고 필자만의 표현이다. 인종을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라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검은 돌풍’이라는 표현이 있었기에 이를 적용해본 것이다.
바람직한 언어는 ‘아시아 돌풍’일 것이다. ‘검은 돌풍’은 아프리카 팀들이 월드컵에서 엄청난 성과를 낼 때 나왔던 표현이다. 한때 월드컵 출전권을 한 장밖에 갖지 못했던 아프리카는 1982년에 두 장으로 올려 배정받았다.
당시 카메룬과 알제리는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했고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벌이거나 그들을 누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알제리는 당시 서독을 2-1로 누르고 첫 ‘검은 돌풍’을 일으켰다. 알제리는 예선 라운드에서 2승1패를 기록했지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지는 못했다. 아프리카 팀이 2승을 거두는 것은 당시로는 엄청난 일이었다. 카메룬도 이탈리아와 1-1 무승부, 폴란드와 0-0 무승부, 페루와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3무로 성공적인 첫 월드컵을 치렀다. 카메룬은 이탈리아와 승점이 같았지만 골득실차에 의해 3위로 아깝게 12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조1위는 폴란드였고 이탈리아에 2위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아프리카의 다크호스 모로코가 폴란드, 잉글랜드와 0-0으로 비기고 포르투갈을 3-1로 누르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모로코는 16강에서 서독에 0-1로 패했지만 검은 돌풍을 2회 연속 이어가는 아프리카 팀이 됐다.
이후 검은 돌풍은 매대회마다 있었고 적어도 국가대표팀은 유럽, 남미팀이 호락호락하게 볼 수 없었다. 유럽에 진출하는 아프리카 선수들도 많이 늘어났다.
아시아의 ‘황색 돌풍’은 2002년에 잠시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올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한국은 2010년 월드컵에서도 16강에 올라 아시아의 강자로서 우뚝 올라섰다. 하지만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잠깐 있었던 일로 치부했고 이후 결과로 입증됐다. 일본이 2018년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것 외에는 아시아 팀들은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2022년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가 돌풍을 일으키는 것일까. 단순히 아시아 국가에서 대회가 열리기 때문일까.
국가별로 살펴본다.
일본은 이미 자국 리그의 수준이 높은 데다가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다수 있어 좋은 국가대표 선수를 뽑을 인프라가 잘 되어 있다. 일본 J리그는 토요타, NTT도코모, 닛산, 파나소닉, 미츠비시, 히타치 등의 대기업들이 뒷받침을 하고 있어 매우 탄탄하고 외국의 유명 스타들을 영입해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도미야스 다케히로(DF)와 미토마 카오루(MF)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에서 활동 중이고 구보 다케후사는 레알 소시에다드 소속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는 무려 8명이나 된다.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선수 3명, 포르투갈 리그에 소속된 선수도 7명이나 된다. 기타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수십 명이나 돼 유럽파로만 국가대표팀 두 팀은 넉넉히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국내 리그가 탄탄하고 유럽파도 많기에 일본은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세계 축구의 강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명장을 만나지 못한 것이 이들의 숙제다.
Photo by Mehdi Bolourian. 아시안컵 우승팀이자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는 이번 대회에서 첫 2경기 패배로 탈락을 확정지었다.
한국은 자국 리그는 약한 편이지만 유럽파나 해외파들이 많아 역시 세계 무대에서 소위 말해 ‘쫄리지’ 않는다. 손흥민, 김민재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두 선수를 중심으로 최근 스페인 리그에서 떠오르는 스타가 된 이강인, 프리미어 리거 황희찬, 분데리스가에서 뛰는 이재성, 정우영, 프랑스, 잉글랜드, 그리스를 오가고 있는 골잡이 황의조, 그리고 그리스의 황인범 등이 대표팀의 핵심이 되었다. 단기전에서 승부를 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선수층이 두꺼우려면, K리그의 활성화가 필요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나라가 되려면 국내 축구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란은 아시아에서는 전통의 강호이고 쉽게 이길 수 없는 나라이지만 월드컵 무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번 대회 1차전에서 잉글랜드에 2-6로 참패했을 때 그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웨일스에 2-0으로 이기고 호락호락한 팀이 아님을 역으로 입증했다. 이란 선수들은 꾸준히 유럽에 진출했고 이는 이란 대표팀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요소가 됐다. 상위 리그는 아니지만 러시아 리그, 포르투갈 리그, 네덜란드 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른 선수들이 이란 팀에 포진되어 있다. 피지컬과 기술이 어느 정도 되는 선수들이 있기에 팀웍이 좋고 감독을 잘 만나면 깜짝 돌풍은 충분히 가능한 팀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역시 반짝 돌풍은 가능한 나라다. 자국 리그는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해외파도 거의 없고 유럽파는 단 한 명도 없기에 월드컵에서 반짝 돌풍만 가능한 나라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돌풍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아시아는 미래의 월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낼까. 2차전이 진행되면서 축구 팬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