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ICCsports. 2002 월드컵 당시 미국 스테이플스 센터로 몰려들어 응원을 했던 한인들.
[들어가는 말(매회 반복)]
축구는 단순히 공을 차는 게임일 뿐일까요? 이 질문은 종종 축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열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기됩니다. 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동안, "나는 축구 경기를 단 한 게임도 보지 않았다. 공을 여기저기 차며 네트 안에 넣는 것에 전 세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 미국의 지인을 기억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도 "공을 골대 안에 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서 사람들이 저렇게 난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들은 축구를 단순한 공놀이로 보는 일부 사람들의 관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전 세계 수백만 팬들에게 축구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인생의 드라마를 구현하고, 팀워크, 전략, 인내, 그리고 끊임없는 경쟁 정신을 반영합니다.
축구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성공을 위해서는 팀워크, 전략, 때로는 조금의 행운이 필요합니다. 이 게임은 협력, 열심히 일하는 것, 승리와 패배를 다루는 귀중한 교훈을 가르칩니다. 또한, 많은 문화에서 축구는 언어, 국적,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는 통합의 힘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함께 불러 모으고,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을 만들어냅니다.
축구의 매력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골을 넣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게임이 주는 건전한 흥분,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의 긴장감, 그리고 전 세계 팬들의 공유된 경험에 관한 것입니다. 선수들과 팬들의 열정과 헌신은 축구를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 인간 경험의 고저를 포괄하는 세계적 현상으로 만듭니다.
2. 한국인은 호모 루덴스?(2)
국가대표 축구가 아니면 대부분 한국인은 축구라는 스포츠에 그다지 많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 MBC-TV의 축구 해설가인 서형욱은 스포츠 서울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올렸다.
“월드컵 환상은 깨졌다. ‘월드컵 16강 진출’이 한국 축구의 희망봉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 1승, 16강, 8강, 급기야 4강까지 일궈내며 온 나라가 축구와 붉은색 셔츠로 뒤덮였음에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16강은 물론이고 4강 고지에까지 올랐지만, 결과적으로 축구계의 소득은 미미하다. 일시적인 축구붐과 몇몇 대형 축구 스타를 만들어냈지만, 이것은 축구 발전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월드컵 4강’은 그저 한순간의 꿈이었고 꿈에서 깨어난 지금 우리는 잠들어 있던 시절에는 그나마 기대라도 있었지…하며 텅 빈 스탠드를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갔을 정도로 축구를 사랑하는 서형욱의 ‘월드컵, 꼭 가야 하나’라는 외침은 이 분야 전문가의 날카로운 지적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축구 자체를 좋아하는 팬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인은 축구라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외국팀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성과적 기쁨을 누리고 싶어한다. 2002 월드컵 당시 LA 스테이플스 센터라는 실내 경기장에는 무려 2만 명의 한인 동포들이 모여 조국 한국 대표팀을 응원했다. 스테이플스 센터의 주인이자 미국 프로축구리그의 팀인 LA 갤럭시의 구단주인 라이위키 회장은 한인들의 이러한 열기를 보고 한국 선수를 영입하면 구단 마케팅이 대박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곧이어 적극적으로 한국 선수 영입에 나섰다. 그래서 갤럭시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홍명보다.
2002년 당시만 해도 한국인의 영웅이었던 홍명보 선수가 갤럭시의 홈구장인 홈디포 센터에서 뛰게 되었는데 이 경기장에 한인의 모습은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수천 명의 관중동원을 기대했던 (박찬호의 LA 다저스 시절처럼) 갤럭시의 참담한 마케팅 실패였다. 한국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잘못 판단했던 것. 다음은 당시 미주 한인 언론의 홍명보 관련 기사다.
"최근 LA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LA 갤럭시 구단은 야심 차게 홍명보를 영입한 것만큼 효과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갤럭시 구단이 홍명보를 영입한 것은 LA의 상당수의 한인이 새로 개장된 홈디포 센터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주된 이유였지만 실제 홈경기장에는 한인들이 거의 찾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갤럭시 구단 단장은 당시 “솔직히 조금은 실망스럽다. 예상보다 한인 사회의 축구 열기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예상과는 달리 홈 경기에는 한인 팬들이 거의 찾지는 않았지만, 원정경기에서는 오히려 관중동원 효과를 누렸다는 것이 갤럭시 관계자의 설명. 실제 뉴욕 원정 당시 약 7천 명의 한인 팬들이 몰려들어 축구 관계자들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한국 대 터키전 당시 미국 서부 시간으로 새벽 4시에도 붉은 유니폼을 입은 1만 8,000여 한국 교민들이 스테이플스 센터를 가득 채운 채 대형 TV 화면을 보며 열광적으로 응원했던 것을 지켜보며 한인 홍보 효과를 기대했던 갤럭시 구단은 매 경기 500명도 되지 않는 한인 관중 수에 실망하고 있다.”
한국 팬들은 세계 최고의 무대가 아닌 미국 메이저리그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만약 미국 메이저리그 축구가 세계적인 무대였다면 한인 팬들은 홈디포 센터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최고가 아니면 관심이 줄어드는 이런 분위기는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강준만 교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은메달 받고서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선수는 한국인밖에 없다. 이것 하나로 다 정리가 된다. 이런 현실이 시사하듯이, 한국의 ‘최고 병’, ‘최대 병’, '최초 병’이 조만간 치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간 많은 걸 이루었지만 아직도 한국인의 자부심 또는 자존감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의 지적 후에 올림픽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칭찬을 받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메달을 받지 않았어도 박수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긍정적인 변화다. 경기 자체를 즐기며 의미를 찾는 호모 루덴스의 회복이 조금은 이뤄진 것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인간을 ‘타고난 놀이꾼’으로 지칭한다면, 자본주의에 의해 스포츠를 하는 인간으로 길들여진 것을 의미하는 '호모 스포르티우스(Homo Sportius)'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자존감이 낮으므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데 모두가 몰두해 있다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은 옳아 보인다. 국내 최고는 왠지 성이 차지 않는다. K-리그를 세계적인 리그로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이 호모 루덴스를 호모 스포르티우스로 환원(reduction)시키는 주요 역할을 한다. 한국 언론의 축구 관련 기사는 온통 결과 중심주의다. 결과 중심주의에 관해 축구 분석가인 최형준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은 항상 결과를 먼저 보게 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를 잘 모르면 '이겼나 졌나'에 만 관심을 두게 마련이다.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지만 축구 자체에 오랫동안 관심을 뒀던 팬이라면 이제는 그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축구를 볼 때 꼭 봐야 할 공식 같은 것이 있다.”
즉, 축구 자체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가 되어야지 승부와 결과와 돈에 더 집중하는 호모 스포르티우스는 지양하는 것이다.
그는 축구 자체를 즐기기 위해 4가지를 순서대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순위: 압박축구 ▶2순위: 팀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나 ▶3순위: 승패 및 응원 ▶4순위: 천운(天運).
한국을 예로 들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은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최종 평가전인 가나전에서 경기 내용은 좋았지만, 결과(1-3 패배)가 좋지 않아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그런데 가나전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경기 내용이었다. 가나전을 1~4순위의 내용으로 살펴본다.
1순위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압박축구라고 했다. 한국은 과연 압박을 잘했나? 선수들이 체력이 떨어져서 때로는 중원 압박이 느슨해지는 현상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압박(pressing, 압박)이 잘된 편이었다.
체력 회복이 되면 느슨해지는 빈도가 줄어들어 압박이 전체적으로 잘 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들이 압박의 중요성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1:1 대결에서 밀리면 압박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1순위 공식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는 어느 정도 축구의 기초가 다져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순위로 봐야 할 것은 과연 감독이 팀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느냐이다. 당시 한국 대표님 감독이었던 아드보카트는 히딩크 전 감독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었다. 기술적인 면과 세계 축구의 이해도 면에서는 손색이 없는 지도자였다. 그래서 제1순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답변을 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아드보카트가 히딩크보다 준비시간이 부족했고 선수들의 컨디션이 최고 정점에 이르게 하는 일정관리를 했느냐인데 이는 본선에서 토고전을 보면 파악할 수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아쉬운 점은 당시 월드컵 기간에 불거진 러시아 프로구단과의 계약설인데 이는 한국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됐다. 유럽 선수라면 개의치 않고 넘어갈 일이지만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선수의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이는 한국 선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 2순위에 대한 평가는 이성적인 것으로 자신이 진정한 축구 애호가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를 볼 때 꼭 가져야 할 평가의 우선순위다. 1순위와 2순위를 잘했는데도 졌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쉬운 패배'가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고 할 수 있다.
축구를 다루는 언론 기자들은 이것을 건너뛰고 제3순위로 넘어갈 때가 너무 많다. 제1, 2순위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 이기기를 바라며 응원을 하는 것이 바로 제3순위다. 열심히 응원하는 것은 바로 제3순위에 해당하고 이는 이성이 아닌 감성이다. 한국 언론은 그런데 이성을 뒤로 제쳐놓고 감성만 자극하는데 이는 당시 가나전이 끝난 후 확연히 드러났다. 감성만 자극하는 평가는 한국 선수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1, 2, 3요소가 모두 나타날 때 관전자로서 호모 루덴스로 복귀할 수 있다.
마지막인 제4순위는 천운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기도했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나. 종교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하늘의 운을 바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선수들이 잘 싸워서 20번 슛을 했는데 5번은 골대를 맞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천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면서 이 4가지 공식을 기억해두고 보자. 축구 보는 감각이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최형준 분석가의 말은 단순히 축구를 보는 눈의 업그레이드 차원을 넘어서 호모 루덴스가 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축구 팬들이 호모 루덴스로 남을 기회를 주지 않고, 끊임없이 호모 스포르티우스로 환원되도록 팬들을 자극한다.
한국 언론의 결과주의적인 평가, 즉 호모 루덴스보다 호모 스포르티우스적인 평가는 2006년, 2010년, 2014년, 2018년 월드컵 본선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모든 분석과 보도가 결과주의, 성과주의에 집중한 내용이었다.
어떻게 호모 루덴스가 될 수 있을까? 최형준 분석가의 말처럼 승패보다는 축구 자체를 즐기는 차원에서 축구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다음으로 축구를 문화 속에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축구와 문화를 연결시켜 축구를 통해 각 나라와 민족의 문화를 배우고 그 안에서 즐김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호모 루덴스의 자세이다. 가장 좋은 것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것이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 ‘타고난 놀이꾼’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