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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g | 오바마 코드, 정치인들은 해독할 수 있을까?(7)] 다양성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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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4년08월04일 14시4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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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g | 오바마 코드, 정치인들은 해독할 수 있을까?(7)] 다양성의 아이콘

​[들어가는 말 (매회반복)] 

 

버락 오바마.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지도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 “비탄자들의 총사령관”, “미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지도자”, “절대 신념을 잃지 않은 대통령”, “모범적이고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 “쿨(Cool)한 지도자”

오바마는 많은 수식어로 전 세계인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국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공감했던 리더로 인상 깊게 기억되고 있다. 

오바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미국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해 총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퇴임 시 최종 지지율은 59%로 빌 클린턴(66%), 로널드 레이건(63%)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직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34%), 다음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34%)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오바마는 퇴임 후 몇 년이 지난 2022년 NBC 뉴스의 설문조사에서도 공인(public figure) 중 긍정평가 51%를 받아 일론 머스크(31%), 조 바이든(42%), 케빈 매카시(13%), 도널드 트럼프(35%), 낸시 펠로시(31%), 마크 저커버그(8%)를 크게 앞질렀다. 

2018년 퓨 리서치의 설문조사에서도 44%의 응답자가 오바마를 최고 또는 두 번째로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아 단연 1위에 올랐고 빌 클린턴(33%), 로널드 레이건(32%), 트럼프(19%)를 제쳤다. 존 F. 케네디는(12%)를 기록했다. 

오바마는 어떤 대통령이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물론 그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책 중에는 필자의 철학과 맞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통령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그를 높이 평가했던 이유다.

오늘날 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는 정치인이라면 오바마에게서 배울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시리즈로 나눠보기로 한다. 

 

 

버락 오바마의 모친인 앤 던햄은 두 번째 남편인 롤로 소에토로와 함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살았다. 오바마도 6세부터 10세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앤 던햄이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의료시설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배리(오바마의 어린 시절 애칭)가 동네에서 놀다가 손을 다쳤다. 앤 던햄은 이웃의 자동차를 빌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병원의 풍경이 가관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두 명의 남자가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앤 던햄이 두 사람에게 의사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우리가 의사다”라고 답했다.

 

배리 엄마는 두 사람에게 부상 정도를 설명하고 빨리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놀라웠다. 그들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배리는 이날 팔에 20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이 일이 발생한 얼마 후 앤 던햄은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배리가 의료 시설이 좀 더 좋은 곳, 교육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앤 던햄은 부모님이 거주하는 하와이로 아들을 보냈다.


배리가 미국으로 가기 직전에 그의 가족 형편은 크게 좋아지고 있었다. 군대 제대를 한 양아버지인 롤로 소에토로가 미국 오일 회사에 입사하면서 갑자기 경제적으로 풍요해졌다. 오바마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사도 있었다. 당시에는 갖기 어려운 냉장고, TV도 있었다”고 말했다.[1] 이전에는 작은 방갈로에서 살았는데 이와 비교하면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으로 보내진 이유는 어머니의 뜻 때문이었다. 교육, 의료 환경이 좋지 않은 나라인데다가 양아버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 것을 감지한 앤 던햄은 1971년 오바마를 하와이로 보냈다.

 

오바마의 인도네시아 삶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인도네시아 전통 복장을 하고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했던 기억은 그에게 생생하게 있지만 종교적인 배경이 복잡해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가 1968년 입학했던 세인트 프란시스 아시시 재단 학교는 인근 지역에서 교육환경이 가장 좋은 초등학교였는데 무신론자인 그의 어머니 앤, 그리고 모슬렘인 롤로에게는 가톨릭 학교라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오바마 어린 시절

 

2년 후 아버지가 오일 회사에 입사하면서 이사를 하게 된 배리는 모델 프라이머리 스쿨 멘텡이라는 공립학교로 전학을 했다. 공립학교이기에 그는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는 모슬렘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의 정신세계는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철저한 무신론적 긍정론을 가르쳤고 양아버지는 모슬렘 교육을 했으며 가톨릭 학교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양아버지인 롤로는 그러나 독실한 이슬람교도는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배리에게 모슬렘 신앙을 가질 것을 권유하긴 했지만 이유는 이웃들과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앤 던햄은 배리에게 “종교 자체는 존중을 해야 하지만, 너무 빠져들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양아버지 롤로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는 양아들 배리가 강한 남자가 되길 원한다고 해서 호랑이 고기를 가져와 먹였다. 그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을 가르쳤다. 롤로는 또한 복싱글러브를 집으로 가져와 배리에게 복싱을 가르쳤다. 개고기, 뱀고기, 메뚜기를 가져와 먹인 사람도 양아버지였다. 양아버지는 여자와 술과 서양음악을 좋아했다.

 

친어머니 앤 던햄도 독특함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타 인종과의 결혼이 금지됐던 당시 아프리카 및 아시아 출신 교환학생과 두 차례 결혼을 했던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배리의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은 다양성과 독특함이 키워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우기가 되면 물이 허리까지 차는 일을 경험했고, 연을 갖고 놀았으며, 닭싸움을 지켜봤고, 찬물 목욕에 익숙해져 있었고, 모기와 밤마다 싸웠다. 그는 또한 변기 대신 땅을 파고 그곳에서 변을 보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 생활 속에서 경험했고, 가난, 질병, 부자와 빈자의 분리가 무엇인지 인도네시아에서 배웠다.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한 지 6개월 만에 그들의 언어와 풍습에 완전히 익숙해진 배리는 교육열이 강했던 모친 덕분에 미국적인 사고방식도 잃지 않았다. 앤 던햄은 매일 새벽 4시에 배리를 깨워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준비를 시켰다. 학교 공부를 도우면서 앤 던햄은 정직해야 하고 공정해야 하고 판단력이 있어야 하고 미래를 위해 자신을 가꿀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의 어린 시절 경험은 그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시간은 오바마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을 통해 가난과 불평등, 의료와 교육의 한계를 직접 목격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정책을 수립할 때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계층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바마의 어머니 앤 던햄은 아들에게 정직, 공정성, 판단력,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강조했다. 이는 오바마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접한 경험은 그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바마의 어린 시절 경험은 그가 정치인이 되었을 때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강한 의지와 공정성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자질들은 그가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리더로서 기억되게 했다.

 

미국은 다양성의 나라인데, 오바마는 다양성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을 존중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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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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