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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윤석열과 샤를 10세 ​

등록일 2024년06월01일 10시0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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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자화에서 샤를 10세는 '헌장'이라는 글자가 쓰인 당구공을 이로 깨려 하고 있다.

 

프랑스의 샤를 10세는 1824년 아르투아 백작 시절, 형제였던 루이 18세가 사망한 후 왕위를 이어 받았다. 그는 구시대적인 인물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개혁 분위기가 팽배했던 당시 프랑스의 상황에서 그는 정부를 비판하는 출판물 인쇄를 금지하고, 신문 검열법을 통과시켰으며, 귀족 중심의 내치를 하며 민생 경제를 어렵게 했다.

 

처음에는 인기가 높았다.

 

화려한 언변과 좋은 풍채, 또 정치범들을 사면시켜 주는 등의 유화 정책으로 긍정적인 인상을 줬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강경 왕정주의자(Ultraroyaliste)이자 전제군주로서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강경 왕정주의자 빌렐을 수상으로 임명하며 강력한 복고 정책을 시행했다. 극단적인 복고주의 정치로 1826년부터 의회의 심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 빌렐은 복고주의자들에게마저 버림받고 1828년에 사임했다.

 

프랑스 경제가 점점 더 불안정했음에도 샤를 10세가 귀족들의 재산은 계속 보호해줬기에 1830년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당시 의회는 샤를 10세의 보수주의, 복고주의에 반대해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의결했는데 샤를 10세는 이에 의회를 해산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샤를 10세는 극대화된 국민의 불만을 읽어내지 못했고, 권위주의에 빠져 출판의 자유를 아예 중지시키며 투표 방식을 바꾸는 등의 내용이 담긴 ‘7월 칙령’을 발표했다.

 

프랑스 혁명을 늘 마음에 품었던 파리 시민들은 대혁명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을 포함한 칙령이 발표되자 7월26일 반기를 들었다. ‘르 나시오날’ 신문이 칙령을 비판하는 글을 공개했고 혁명이 일어나게 됐다. 소위 ‘7월 혁명’이다. 파리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쌓고 농성을 벌이며 샤를 10세의 퇴위를 요구했다. 시가전 끝에 파리 시민 2000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 혁명으로 퇴각한 샤를 10세는 영국으로 망명해 1836년까지 생존했다.

 

샤를 10세의 역사 자료를 읽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났다. 윤석열 대통령도 샤를 10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찐윤’을 언론 관련 정부 부서의 장으로 임명해 언론 장악을 노렸고, 중산층 이하 국민의 삶보다는 대기업 성장 중심의 정책으로 상류층의 지지, 중하층의 반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혁명이 당시 파리 시민들의 기억속에 깊에 남아 있었던 것처럼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제6공화국 탄생을 이끌었고,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바 있다. 혁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경험한 상황에서 샤를 10세와 윤석열 대통령은 왕정주의자처럼, 전제군주처럼 통치를 하며 민중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샤를 10세가 의회를 해산했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은 무려 14차례 거부권을 행사(행사할 예정 법안까지 포함)하며 의회를 무시했다. 샤를 10세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처럼 윤 정권은 언론과 시민에 대해 ‘입틀막’을 하는 게 일상이 됐다. 

 

권위주의, 복고주의가 샤를 10세의 핵심 사조였다면 윤석열 정권도 권위주의, 일방주의를 일삼았고 자신에 비판적인 기사를 내는 언론에 대해 끊임 없이 고소를 하거나 핵심 책임자를 교체하는 등 샤를 10세와 닮은꼴처럼 정치를 했다. ‘입틀막’은 이 정권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샤를 10세가 극대화된 시민의 분노를 읽어내지 못했던 것처럼 윤 대통령은 정권 심판론이 강했던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 참패, 제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참패라는 국민의 분노 표현을 마음에 품지 않았고 제22대 총선 국민의힘 연수회에서 어퍼컷 세리모니를 하고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국민의 기존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 정권이 전제주의처럼, 왕정주의처럼, 복고주의처럼 보이는 사건은 이태원 참사, 채상병 순직 사건, 의료개혁 등이었고 14차례나 이뤄진(질) 거부권 행사였다. 매년 7건의 거부권 행사는 ‘거부권의 왕’ 이승만(연간 약 3건) 전 대통령보다 2배 이상 더 한 기록이다. 

 

군 내에서 알아서 해결할 문제를 자신이 직접 개입해 대형 사건으로 만든 채상병 사건과 이태원 참사와 관련되어 일반 시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태도와 행정, 과학적인 조사 전혀 없이 단순 산수로 2000명 증원을 선택해 의료개혁을 발표하고 이후 의료계 의견을 전혀 듣지 않으려는 태도 및 행정 등은 이 정권이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며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권으로 여겨지게 했다. 

 

샤를 10세는 혁명그룹에 의해 쫓겨났고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적 혁명 운동을 통해 어떤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국민의 반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4년 임기 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중임제(4년 중임)와 대통령 권한 축소 및 3권분립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혁명에 의해 쫓겨나는 것보다는 오히려 역사에 기여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상황을 역전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윤 대통령이 프랑스 혁명, 7월 혁명의 결과를 인지하며 현명한 선택을 해주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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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T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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