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일 수만명의 의사들이 여의도에 집결해 정부의 2000명 의대증원에 대해 강력 항의하고 있다. 사진 - 뉴저널리스트 투데이
양비론(兩非論)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양쪽 모두 아니다’라는 의미다. 서로 충돌하는 의견이 있다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영어권에서는 bothsidesism(보스사이지즘)이라는 표현을 쓴다. 양비론은 가해자가 남용해서 문제가 된다. 가해자는 양비론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김준형, 윤상헌은 ‘언어의 배반’에서 “양비론은 비판자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기존 권력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박창식은 ‘언론의 언어 왜곡, 숨은 의도와 기법’에서 “(양비론은) 겉으로 공평하고 균형을 이룬 것처럼, 중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논리의 결과는 중도적이지 않다. 둘 다 나쁘다고 하면 힘이 약한 쪽이 더 타격을 받는다. 힘이 약하다 보니 목소리 높여 문제 제기하는 쪽을 무력화시킨다.”라고 썼다. 김호기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양비론은 책임의 경중(輕重)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사태의 인과 관계를 불분명하게 한다.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치료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봉합할 따름이다.”이라고 강조했다.
강준만은 양비론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양비론은 그 내용과 맥락을 따져야지 양비론 자체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하다. 양비론을 펴선 안 될 사건이나 상황이 있는가 하면 양비론이 필요하거나 불가피한 사건이나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의 양비론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개별적 비판을 해야지, 모든 양비론은 문제란 식으로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라고 썼다. 그는 이어 “무조건적인 ‘양비론 비판’이 많아진 이유는 인터넷,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으로 특정한 정치적 시각에 심취한 수용자들이 신문과 같은 전통적 미디어에 가하는 압박이 강해진 탓이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즉, 정치 고관여층이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에 압박을 가해 보수 언론은 국민의힘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고 진보 언론은 민주당을 비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소위 ‘모두 까기’를 못하게 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양비론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 이른바 ‘모두 까기’를 못하게 되고 이는 때론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간다는 것이 강준만의 주장이다.
의료계의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는 현 의료 사태를 양비론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과학적 의대증원 2000명이 잘못됐지만 국민, 환자들이 더이상 피해보지 않아야 하니 의료인들의 파업도 잘못됐다고 보는 관점을 양비론으로 보았고 이는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 사태를 양비론적으로 보면 이는 마치 일제가 이완용, 친일파들을 꼬셔서 한입합방을 성공했기에 국민, 백성들이 더이상 죽지 않도록 김구, 이승만, 독립운동세력이 일제에 맞서 싸우는 것을 비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전두환이 광주에서 5.18 학살을 해 독재정권이 이미 수립됐으면 국민, 학생들이 더이상 죽지 않아야하니 김영삼, 김대중, 민주화운동세력이 정부와 싸우는 것을 비난하는 양비론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양비론을 펼치는 자들에 대해 “역사는 기회주의자, 친일파, 친독재 전두환부역자라 부른다”라고 했다.
이번 의료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약간의 양비론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태를 촉발한 측은 정부이고, 정부의 주장은 너무나 단순한 탁상행정에서 나왔기에 더 강력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고 지금의 의료개혁은 그 출발점이 큰 문제였다.
출발이 문제였기에 비판을 받아야 할 쪽은 정부다. 의료계도 그동안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사태가 촉발된 것에 대해 정부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좀 더 신중하고 좀 더 과학적으로 좀 더 합리적으로 의료개혁을 진행했더라면 국민의 절대 지지를 받았을 터인데 ‘10년 후에 1만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니 매년 2000명 증원한다’는 너무나 단순한 주장은 한때 G7 합류 가능성이 논의됐던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주장이 맞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