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 2014년 6월 22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대회 H조 경기에서 알제리의 이슬람 슬리마니가 팀의 첫 골을 넣은 후 동료들과 함께 축하하는 모습, 한국의 홍명보 감독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Quinn Rooney/Getty Images)
아래 글은 필자가 2010년 7월에 작성한 글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이 ‘쉼’을 선택했다. 그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2년6개월의 대장정을 마쳤다. 그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그가 계속 대표팀을 맡으면 잘해야 본전도 아닌 잘해도 손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원정 16강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는 이벤트도 없고 그에 버금가는 성적도 없을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나마 지금 박수를 치는 이가 많을 때 물러서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약체에 비기거나 패하는 일이 발생하면 ‘허무 축구’를 외치는 자들이 기세등등할 것이다.
허정무 감독은 아쉬움은 남겼지만 한국적인 토양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감독이었다. 현재의 월드컵팀이라면 누가 감독을 맡아도 16강은 확실히 갈 것이라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유럽 빅리그 출신으로 23인 명단을 짜게 된 나라들도 16강 진출에 실패하거나 16강에서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국내 감독이 원정 16강 진출을 인도한 것은 분명 좋은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아쉬운 결정이 몇 차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수비 위주의 태세로 나선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그의 이번 월드컵에 대한 지도력은 한국 지도자로서는 최고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국 지도자가 나섰더라면 이런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국내 감독 등용은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 히딩크 시대에 한국은 이렇다할 감독을 영입하지 못했고 국제 무대에서 표류했다. 그 어느 누구도 만족스러운 외국인 감독은 없었다. 그런데 허정무 감독 영입이 대안이 됐고 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자꾸 외국인 감독을 다시 영입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의 성공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히딩크, 비엘사 급의 감독이 아니라면 외국인 감독은 영입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여러 한국인 감독이 거론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홍명보 감독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축구의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고 선수로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 본 인물이다. 미국 프로축구, 일본 프로축구에서 활동해 글로벌 마인드도 있고 무엇보다 월드컵 출전 경험(4회)이 풍부해 그 무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어느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다.
선수로서 능력도 뛰어났던 그는 공격과 수비를 너무나 잘 이해한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기도 했고 수비수 및 미드필더로서 오랫동안 경험을 했다.
고려대학에서는 체육교육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너무 마음이 좋아 ‘흥부’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 덕, 체를 갖춘 몇 안 되는 지도자인 것이다. 200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18년 만에 8강으로 인도한 그는 감독으로서도 합격점을 받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은 23세 이하 선수만 출전하고 나이 초과 선수는 와일드카드로 3명까지 지목할 수 있다. 이는 그가 2014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서 적임자가 될 수 있는 최고의 환경 여건이다. 4년 후에 23세 이하 선수들은 24-27세가 되어 대표팀의 주축이 될 것이고 와일드카드 선수들은 30세 안팎이 될 것이다. 그들이 월드컵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 사실상 2014년 월드컵 대표 선수들이라는 개념으로 팀을 운영한다면 그렇게 부담되는 일은 아닌 것이다.
4년 동안 준비한 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보다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실리와 명분 모두에서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른 감독이 맡았다가 물러나고 홍명보 감독이 중간에 들어오는 것보다는 지금부터 ‘홍 감독 체제’로 준비를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홍명보 감독은 2013년까지는 와일드카드 선수만 잘 조절하면 되고 월드컵 1년을 앞두고는 월드컵에만 집중하면 된다.
홍명보 감독을 2014 브라질 월드컵 감독으로 임명하길 기대한다. 국내 축구 환경이 열악한 한국은 4년 동안 준비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팬들이 한 가지 숙지해야 할 것은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팀 감독이 된다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의 성적에 너무 민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적이 잘 안 나오더라도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웨일스 카디프 - 2012년 8월 10일: 런던 2012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승리한 후 홍명보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경기는 2012년 8월 10일, 웨일스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사진: Julian Finney/Getty Images)
위 기사를 작성한 후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에게 2012년 런던 올림픽호를 맡겨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도록 이끌었고 이 영광을 안고 2013년 6월24일 그는 대표팀에 승선했다.
필자의 바람처럼 2010년부터 월드컵 대표팀을 동시에 운영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는 뒤늦게라도 월드컵팀 감독이 됐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좋지 않았다.
조광래 감독의 해임 후 최강희 감독이 잠시 팀을 이끌었으나, 그는 월드컵 아시아 예선 통과 후 사임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재정 문제로 외국인 감독 영입이 어려워 홍명보를 선임했으며, 그는 단기 계약을 요청했다. 홍명보의 지도 아래, 대한민국은 2014 월드컵에서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러시아와 1-1로 비겼지만, 알제리에게 2-4로 패하고 벨기에에게 0-1로 지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딴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으나, 평가전 부진과 경기력 저하로 '의리 축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2009년 U-20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던 홍명보는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지만 월드컵 부진으로 한국 축구의 암흑기를 맞게 한 인물로 낙인 찍혔다. 월드컵에서 실패했지만 그는 감독으로서 완전히 실패한 인물은 아니었다. 월드컵 빼고는 대체로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홍 감독은 축구의 기본기를 무시하는 것을 싫어한다. 기본이란 볼트래핑, 볼키핑, 드리블, 패스를 말하는데 홍명보호는 이러한 기본이 상당히 갖춰져 있는 선수를 선호한다. 손흥민은 대표적인 기본기가 잘 갖춰진 선수다. 기본기가 잡혀 있는 선수들을 위주로 봅기에 홍명보호의 경기를 보면 대체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브라질 월드컵은 예외였다.
물론 안정된 경기가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승운이 없으면 안정되게 경기를 하고도 질 수 있다.
홍 감독은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에서 “대표팀에서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219쪽)라고 썼는데 실제 그의 팀 운영은 선수들로하여금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테크니컬한 부분에서도 홍명보는 높은 수준을 보였다. 공격과 수비가 약 30m 간격을 유지하며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꽤 지속적이고 견고하다.
홍명보 축구에서 효과적인 포메이션과 창의적인 움직임은 공격과 수비가 안정되게 하고 볼 점유율을 높인다. 홍명보호는 마지막으로 즐기는 축구를 선호한다. 홍명보 호의 골세레모니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팀 분위기가 경직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도쿄 - 2024년 2월 21일: 울산 현대의 홍명보 감독이 2024년 2월 21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벤트포레트 고후를 상대로 팀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 Masashi Hara/Getty Images)
2024년으로 패스트포워드. 홍명보 감독을 선발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고 필자를 포함해 모두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축협만 국내 감독을 원했다. 이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에도 축협은 재정 문제로 국내 감독을 고집한 바 있다.
그때와는 약간 상황이 다른 점도 있다. 홍명보 감독은 예선부터 약 2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2014년에는 1년밖에 없어 월드컵 팀이 안정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토 쿠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울리 슈틸리케, 파울루 벤투, 위르겐 클린스만 등 외국 감독이 거쳐갔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낸 감독은 4년 동안 함께 한 벤투 감독이 유일했다. 외국인 감독이 긴급처방은 해줄 수 있지만 한국 축구의 지형을 바꾸지는 못했다.
비록 과정과 절차 등이 축구 팬들의 마음에 들지 않지만(울산 팬들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 ㅠㅠ) 그래도 한국 감독 중에서는 가장 나은 감독이 뽑혔으니 응원을 보내는 게 나을 듯하다.
속상한 팬들은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그래도 클린스만보다는 훨 낫겠지.
물론 축협의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볼 때 축협의 개혁을 시도하면서 홍명보 호는 이대로 가도록 할 수밖에 없다. 모순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