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서디나, 캘리포니아 - 1월 31일: 1993년 1월 31일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로즈 볼에서 열린 슈퍼볼 XXVII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버펄로 빌스의 경기 중 하프타임 쇼에서 마이클 잭슨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 George Rose/Getty Images)
JET 매거진이 발행한 1993년 12월6일자 잡지의 기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마이클 잭슨은 진통제 중독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은 진통제에 중독돼 공연을 중단한 바 있다. JET 매거진에 따르면 잭슨은 진통제 중독과 사투를 벌였고 팬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잭슨은 1984년 펩시콜라 광고를 촬영하다 화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후 수술로 인한 통증을 이기기 위해 진통제 다량 복용은 필수였다는 것이 마이클 측근의 설명이었다.
팬들은 그런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러나 진통제 중독은 그의 삶을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클은 약 중독으로 이상행동을 했고 건강은 점점 악화했다. 이에 가족들이 나서 그의 약중독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가 약으로 인해 통제 불능상태까지 왔다고 판단했다.
진통제에 의지해 통증을 이겨내려고 했던 마이클은 치명적인 마취제인 ‘프로포폴’까지 손을 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의학계에서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전문가들조차 “프로포폴이 가정에서까지 그렇게 사용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마이클의 집에서 유모로서 일했던 그레이스 르와람바(42)는 런던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자주 많은 약을 섞어 먹었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르와람바는 마이클의 약 중독을 치료받도록 하기 위해 그의 모친인 캐서린과 재넛에게 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알게 된 마이클은 곧바로 유모를 해고했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은 약물 사용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이클의 일대기를 쓴 한 작가는 마이클이 약물에 대해서는 “고집스럽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집착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이클은 약물 중독으로 한때 지적 능력이 잠깐 크게 떨어져 종적을 감춘 적도 있었다.
잭슨이 약물로 통증을 제거하고 안정을 취하려는 삶의 방식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배우)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 비스트지에 따르면 테일러는 마이클에게 아놀드 클라인 박사를 소개했는데 이 의사는 두 스타에게 아편이 들어있는 약을 처방했다고 한다.
약중독 이야기는 그의 가수인생만큼이나 화려했다. 그와 연관된 약물 이름은 수십 가지에 이르렀다. 그가 마취제인 프로포폴까지 쓴 것을 보면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이것이 타살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만 남았다. 그는 ‘팝의 황제’인 동시에 ‘약의 황제’였던 것이다.
잭슨이 불면증 치료를 위해 사용한 프로포폴은 매우 강력한 마취제로, 병원에서 수술 시 사용되는 약물이었다. 그러나 잭슨은 이를 자택에서 무리하게 사용했고, 이로 인해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인은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의 혼합으로 인한 급성 중독이었다.
잭슨의 주치의였던 콘래드 머레이 박사는 잭슨에게 프로포폴을 투여한 후 적절한 관리 없이 방치했으며, 이는 잭슨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머레이 박사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징역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의료계와 사회 전반에 걸쳐 유명인의 약물 남용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이클 잭슨의 약물 과다 복용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허점과 유명인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결합된 비극이었다. 그의 죽음은 약물 남용의 위험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며, 의료진의 책임과 더불어 사회적 경각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