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잉글랜드 - 2024년 3월 27일: 프린스 잭슨, 파리스 잭슨, 그리고 비기 잭슨이 런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열린 ”MJ: 더 뮤지컬”의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제공: John Phillips/Getty Images)
마이클 잭슨은 생애 두 번 결혼 생활을 했다. 첫 번째 아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였다. 1994년 5월18일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을 한 잭슨과 프레슬리는 1996년 1월18일 이혼했다.
두 번째 아내는 데비 로우였다. 마이클은 프레슬리와 이혼한 10개월 후 로우와 혼인 신고를 했으며 1999년 10월8일 이혼했다. 두 사람은 1996년 11월15일 호주 시드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마이클이 프레슬리와 헤어진 이유는 성격 차였다. 프레슬리는 2009년 피플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성격적인 장애가 있었고 그에게 맞춰가며 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로우와의 이혼사유도 비슷했다. 그러나 로우는 마이클과 한지붕 아래서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로우는 이혼 후에 마이클이 재판을 받을 때마다 긍정적인 변론을 한 바 있다.
충성스러웠던 전처들
세인은 로우를 두고 약속을 지키는 충실한 전처라고 평가했다. 물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로우는 한 재판에서 마이클을 변호하는 말을 했는데 이에 검사 측이 “사전에 약속된 발언이 아닌가”라고 질문을 하자 “나는 마이클과 두 아이를 영원히 보호할 것”이라고 말해 법정 분위기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마이클이 로우와 결혼한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 프레슬리는 마이클과의 재결합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 마스크 뒤의 남자’라는 책에 보면 프레슬리는 마이클과의 재결합을 위해 유명 변호사인 자니 코크란에게 중간 다리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로우가 인공수정으로 갖게 된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프레슬리는 마이클의 아내로 복귀할 수 없게 됐다. 로우는 첫 번째 아이인 프린스 마이클을 1997년 2월에 LA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에서 낳았다. 로우는 첫 번째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마이클이 병원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프린스 마이클은 태어나자마자 네버랜드에서 자랐다.
자녀양육에 올인
마이클은 첫 번째 아이의 양육에 집중했다. 로우는 훗날 “내가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었어도 별 의미가 없었다. 마이클이 워낙 정성을 다해 그 아이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이클은 첫 번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보모와 간호사 여러 명을 고용했다. 그는 네버랜드 저택의 실내공기 질(air quality)을 수시로 조사하는 등 온 정성을 다해 첫째를 키웠다.
1998년에는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패리스 캐서린이고 여자아이였다. 패리스 캐서린은 베벌리힐스에 있는 스폴딩 페인 메디칼 센터에서 태어났다. 마이클은 같은 방법으로 둘째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스레 양육했다.
마이클의 세 번째 자녀는 친부가 마이클이라는 주장이 있다. 프린스 마이클 II가 세 번째 아이의 이름인데 이 아이는 ‘블랭킷’으로 잘 알려져 있다. 셋째 아이는 2002년 초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됐다. ‘블랭킷’의 친모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이클은 친모의 뜻에 따라 신원 공개를 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 방송사의 다큐멘타리 촬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모는 대리모였고 나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갖게 됐다. 나는 그가 어떤 인종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적인 수준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셋째 아이 별명을 '블랭킷'으로 한 이유
이 다큐멘타리의 인터뷰어였던 바쉬어는 “셋째 아이를 왜 블랭킷으로 부르냐”고 질문했는데 이에 마이클은 “블랭킷은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축복이라는 단어와 같다. 사랑과 보호를 보여주는 단어라서 그를 블랭킷으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마이클은 세 자녀가 엄마 없이 자라도 행복했다고 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이클은 “아이들의 주변에는 돌봐줄 여성이 많이 있다. 온종일 그들을 돌볼 여성들 말이다”라고 덧붙이며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의 가정을 꾸리는 방식, 결혼 생활 방식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어린 아이들을 사랑했고 어린 아이처럼 살기를 원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는 영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리고 오프라 윈프라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들을 잘 돌봐주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실제 건강이 좋지 않은 어린이들이 네버랜드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던 그다.
하지만 어른들의 돈 욕심이 그를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몰고 갔고 그의 어린이에 대한 선행은 추행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마이클 조셉 프린스 잭슨 (두 번째 자녀)
마이클 조셉 "프린스" 잭슨 주니어는 마이클 잭슨의 첫째 아들로 199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마이클 잭슨과 데비 로우로, 부모의 이혼 후 양육권은 마이클 잭슨에게 넘어갔다. 2009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할머니 캐서린 잭슨이 그의 법적 보호자가 되었다. 프린스는 201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아버지의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며 대중 앞에 섰고, 이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관심을 보이며 프로듀서, 감독, 배우로 활동할 계획을 밝혔다. 2015년 버클리 학교를 졸업한 후 2019년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패리스 잭슨 (두 번째 자녀)
패리스 잭슨은 1998년 마이클 잭슨과 데비 로우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은 자녀들을 미디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항상 가면을 씌우고 다녔지만, 2009년 마이클의 추도식에서 처음으로 얼굴이 공개되었다. 이후 패리스는 다양한 방송과 인터뷰에 출연하며 자신의 삶과 경험을 나눴다. 2017년 모델로 데뷔한 후, 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8년 영화 "그링고"로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비기 잭슨 (세 번째 자녀)
마이클 잭슨의 막내 아들인 비기 잭슨은 2002년 대리모를 통해 태어났으며, 주로 대중의 눈을 피해 조용한 삶을 살아왔다. 2009년 아버지의 사망 후 할머니 캐서린 잭슨이 그를 양육했다. 비기는 영화와 만화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기후 변화 문제에도 열정을 가지고 있다. 2024년에는 할머니 캐서린과 함께 아버지의 유산 관련 법적 분쟁에 참여했으나, 이후 그녀의 법적 비용을 유산에서 충당하는 것에 반대해 법정에서 이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