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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는 AI보다 칩 임플란트에 더 관심? [김헌식 칼럼]
대중문화를 보면 미래 세대는 사이보그와 늘 어울리며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에게 더 주목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래 세대는 별도의 기계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기계적 현상에 더 수용력이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지금이 인공지능을 넘어 무엇에 대비해야 하는지 대중적 테크놀로지의 비전을 생각하게 한다.
80년대 인기 영화를 살펴보면 인공지능은 물론 신체도 인간과 같은 기계 즉 사이보그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1982년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영화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SF 액션 스릴러 영화로 사이보그와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을 묻는 영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84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를 통해 더 대중적인 사이보그를 선보이며 20년간의 연작 시리즈를 잉태한다. 현재에 미래의 사이보그가 타임슬립하는 설정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면서 사이보그 공상과학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1987년 ‘로보캅’(RoboCop)은 뇌 이식과 사이보그를 결합한 설정을 보인다. 옴니 콘슈머 프로덕트(OCP)가 범죄자들에게 목숨을 잃은 경찰관의 뇌를 기계 신체에 이식해 로봇 경찰관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대신 에디 머피 경찰관의 기억은 소거한다. 더 나아가 1990년 폴 베호벤 감독의 ‘토털 리콜’(Total Recall)은 208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화성 거주 미래를 소재 삼고 있지만, 사이보그가 주인공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 이식이 주요 스토리텔링이다.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 Artificial Intelligence’는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인공지능 사이보그를 등장시키는데 이는 새로운 설정은 아니어서 1969년에 발표한 영국 SF 작가 브라이언 W. 올디스의 원작에 빚지고 있었다.
1990년 대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복제 인간 영화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6번째 날’(The 6th Day, 2000), ‘아일랜드‘(The Island, 2005) 등이 대표적이다. 자신이나 인류의 복제종은 익숙하지만 낯선 별도의 존재였는데, 새로운 밀레니얼 즈음의 불안과 혼란은 자기의 복제와 장수에 대한 욕망 나아가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복제 인간에 투영했다. 이런 불안과 혼란을 지나면서 대중은 현재의 인간 신체에 더 주목한다.
2008년 ‘아이언맨(Iron Man)’에서는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주목을 받는다. 기억을 이식하지도 않았고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지도 않았다. 신체에 각종 디바이스를 장착할 뿐이다. 심지어 아이언맨은 초인적인 능력이 없으며 사이보그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이며, 약간의 도구를 지닌다. 아이언맨 외에도 다양한 디바이스를 갖춘 캐릭터들이 어벤져스를 이루는 설정은 MCU열풍을 일으키며 최고의 글로벌 흥행작이 된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도구의 인간을 뜻하지만, 그 의미는 인간과 도구의 분리 관점에 있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를 요약한다면, 미디어는 신체의 연장(extension)이라고 했는데 감각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언급했을 뿐 물리적 신체화라는 설정이었고 심리적 연장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했다. 도구는 인간의 신체와 분리되어 있기에 불안과 공포를 언제나 배태할 수밖에 없다. 불안과 공포를 제어하고 긍정적 결과를 원하는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진력할 수밖에 없다.
‘블레이드 러너’나 ‘터미네이터’에서 설정했던 시간적 배경을 지나 우리는 2023년을 살고 있다. 아직도 사이보그는 나오지 않고 있고 이제야 데이터 학습을 통한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이 나왔고, 이조차 인간의 언어 패턴에 의존하고 있다. 인간은 이 시간에도 정보를 생성하고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은 상존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개별 도구화의 역량 증대가 아니라 본인들이 우월함을 갖는 것이다.
호모 파베르 관점에서 스마트폰만큼 실제적인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낸 것도 없다. 아직도 우리는 스마트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신체의 일부 같은 심리적 감각 심리는 있지만, 물리적으로 신체 일부는 아니다. 카드를 쓰지 않고 스마트폰 결제가 확산하는 가운데 집에 스마트폰을 놓고 온다면 결제는 물론이고 버스나 지하철도 탈 수가 없다. 신체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바이스를 착용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손에 장치를 심는다면 어떨까. 신체에 내장시키면 따로 챙기지 않고 언제나 연동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기술을 가리켜 ‘칩 임플란트’라고 한다. 특히 의료용 마이크로칩 이식 내장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의료용 마이크로칩 시장 규모는 2035년이면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꼭 의료용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게 이미 적용되고 있다.
미국 바이오칩 제작 업체 ‘어플라이드디지털설루션’은 2001년 어린이 유괴를 방지할 수 있는 ‘베리 칩’을 선보였다. 수술만이 아니라 주사로도 이식할 수 있는데 내장된 정보와 기록에 따라 위치 파악이 된다. 아동 유괴와 장기 적출이 심한 멕시코에서 상용화했다. 이미 보편적인 것은 근거리 무선통신(NFC) 기술의 칩을 몸에 심고, ‘RFID 기술’(무선 주파수 인식)을 통해 접촉 없이 신용 카드 결제한다. 스웨덴 철도는 손가락에 칩을 심어 기차를 이용하게 했다. 결제는 칩을 신체에 심어 스마트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 폰(bio-phone)’기술도 있다. 직원들 손에 칩을 이식해 사원증 없이 회사 출입을 가능하게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기업 ‘뉴럴링크’는 더 근본적인 칩 기술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칩을 손이나 발이 아닌 뇌에 심기 때문이다.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전자 칩을 뇌에 심어 뇌 신호를 읽어내고 제어하는 기술이다. 뇌에 일정하게 자극을 줄 수도 있는 이 기술을 활용하면 시력이나 청력 장애를 없앨 수 있다. 우울증이나 불면증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장애도 사라지게 한다. 신체 마비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지금은 어쩔 수 없는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목적도 있다.
아직은 넘어야 할 과제도 당연히 많다. 뇌처럼 민감한 부위에 함부로 적용하기 힘들기에 이제 막 동물 실험 단계를 지나고 있다. 또한, 사생활 침해나 정보 통제의 문제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러한 범위에서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칩 임플란트 기술은 일반화될 것이다. 특히, 미래 세대는 더욱 그럴 수 있다.
시청각 장애는 물론이고 발달장애가 있다면 칩의 뇌 자극을 통해 그 상태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카드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이상 트렌디 하지는 않다. 스마트폰을 챙기지 않아도 신용 카드 결제는 물론이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학생증이 없어도 강의실과 도서관 출입이 가능해진다. 식권을 사지 않아도 언제든지 자신 스스로 증명이 되기 때문에 밥을 굶지는 않는다. 아마도 학부모들은 뇌의 자극을 통해 자녀들이 학습을 우월하게 수행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데, 주저하지 않을지 모른다.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효율적인 결과물을 위해 칩 임플란트를 주목할 수 있다. 창의적인 결과물을 위해 예술가들도 시도할 수 있다. 좀 더 다양한 콘텐츠 생성을 위해서 이런 자극이 필요한 이들은 더 많을 것이다. 물론 이 단계를 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안전성 확보가 요구된다. 그런데도 대세는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인공지능 담론보다 훨씬 많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래 세대는 칩 임플란트 테크놀로지에 더 관심을 보일 것이다. 왜 그럴지 자명하다. 인공지능은 별도의 개체이자 도구의 범주에 여전히 머물 뿐이지만, 칩 임플란트 기술은 신체의 연장이자 생명의 연장이며 더 온전한 개인의 존재를 충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조사에서 대중에게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감이 더 많은 현실에서 성찰해야 할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