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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잘 쓴다. 아무리 좋아도 지나치면 나쁘다. 이런 뜻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공부하면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찬사를 보낸다. 책을 밤새 읽으면 자랑거리가 된다. 과(過)독서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밤새보면, 좋게 말하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봉준호 같은 명감독도 주말의 명화만 기다렸고 밤새 봤기 때문에 아카데미 수상을 할 수 있었다. 밤새 텔레비전 영화를 보는 어린 봉준호를 보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걱정했을 법하다.
이런 우려와 걱정의 대상은 매체의 발달 역사와 함께 변한다. 영화, 비디오, 게임 그리고 이제 스마트폰으로 옮겨왔다. 과의존, 과몰입이라는 단어 그리고 여기에 중독이라는 말도 흔하게 따라붙는다. 생각해 보면 이런 매체를 어떤 수단이나 용도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몰입이나 중독이라는 말이 달라진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24.2%(2021년 기준)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포함되어 있다. 2020년에 비해 0.9% 늘었다. 이는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의 내용이었다.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는 스마트폰 사용 조절 능력, 건강·일상생활 문제 발생 여부 등 스마트폰 이용이 과의존 위험군인지 파악하는 국가승인통계다. 전국 17개 시·도 에 걸쳐 1만 가구를 방문해 1대1 면접 조사를 한다. 2016년 처음 조사할 때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중은 17.8%이었다.
이렇게 보면 점점 더 늘어나서 문제가 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3월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디지털 정보격차, 접근성)스마트폰 과의존 분야 2022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중 과의존위험군 비율은 23.6%였다. 2021년 24.2%보다 0.6% 감소였다.
또한, 통계청이 3월 23일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국민의 스마트기기 사용 시간은 평일 1.4시간, 휴일 1.8시간으로 2021년보다 각각 0.5시간씩 줄었다. 전체적으로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줄었던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줄었을까? 아무래도 코로나 19 팬데믹을 가장 유력한 이유로 꼽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에서는 비대면 콘텐츠가 늘었기 때문이다. 비대면 상황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더 많이 썼다.
앞선 ’스마트폰 과의존 분야 2022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령대별 과의존위험군에서 유·아동(만3~9세) 26.7%(-1.7%), 성인(만20세~59세) 22.8%(-0.5%), 60대 15.3%(-2.2%)였다. 모두 전년과 비교해 볼 때 감소했다.
하지만, 청소년(만10~19세)만 늘었다. 40.1%(+3.1%)로 전년과 비교했을 때 상승했다. 오히려 비대면 상황이 아닌데 이렇게 늘 수가 있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심각한 중독 현상이 강화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다들 일상으로 복귀한다면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의존위험군은 그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봐야 한다. 그들에게 게임 및 영화·TV·동영상 이용량이 증가했다는 응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렇게만 보면 학생들이 주로 공부는 하지 않고 딴짓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 대책은 이에 부합해 보인다. 스마트폰 과의존 등 디지털 역기능 해소에 필요한 스마트쉼센터(전국 18개소)를 운영해 연 50만 명 교육을 목표로 운영하고 예방 교육 및 캠페인 등 다양한 정책까지 추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연 50만 명을 교육 목표로 삼았으니 개인들의 이용 행태 나아가 그 절제력의 결핍이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해법이 정확할까?
기성세대 관점에서 공부란 종이책을 보는 것이다. 또한, 공책에 뭔가 써야 할 것 같다. 또한, 공부하는 시간과 놀이 시간은 분리되어 있을 듯싶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학습 교재 자체가 다르다. 카세트테이프나 오디오북을 넘어 어린 시절부터 동영상으로 학습한다. 스마트 패드를 통해서 영상을 보고 필기를 하며 도식이나 그래픽을 구성하기도 한다. 더구나 다른 이들과 이를 공유한다.
동영상을 듣고 게임을 하다가 다시 동영상을 듣는 경우도 많다. 놀이와 학습을 하나의 스마트 기기에서 동시에 수용한다. 따라서 무조건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과몰입이라고 하거나 중독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문제 삼지 않을 텐데, 그 책의 정보량이 스마트 기기의 정보량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거꾸로 스마트 기기가 무조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원론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이다. 학생들이 대면 수업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한다면 그것은 학습에 관한 내용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스트레스 증가를 의미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많이 쓰거나 하면 예컨대 하루에 이용 시간이 몇 시간 이상이면 중독이라고 규정하기 쉽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 과몰입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는 하나같다. 예컨대, ‘쾌락이 질병이 되는 순간’의 저자는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날 세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하루 중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정해둘 것, 게임이나 단톡방처럼 중독성이 강한 기능을 사용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볼 것,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을 다른 데로 돌릴 새로운 취미나 활동을 찾을 것. 스마트폰을 분리해 버리는 조치들이고 개인의 의지와 행동에 의존하고 있는 전형적인 해법이다.
과연, 스마트폰은 취미나 여가, 가외 활동의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2022년 카톡 불통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었던 것이 아는 지인들과 수다를 못 떨거나 재밌는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개 업무상의 문제가 매우 컸다. 오히려 업무 연락이 오지 않아 좋았다는 역설적인 반응도 있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괜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조직이나 일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금융 관련 애로 사항이 매우 많았다. 즉 스마트폰은 필수적인 노동의 도구이자 생계의 수단이다. 누군가에는 자산을 매우 중요하게 좌우한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엔터테인먼트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90년대 방식이다. 마치 집 전화가 있는 손전화가 필요하냐는 인식과 다름이 없다.
특히, 새로운 세대는 스마트폰과 분리될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는 부분적이다.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점도 있다. 코로나 19가 완화되면서 봐야 할 학습 동영상과 자료 검색이 많아졌다. 노동과 놀이 그리고 학습의 수단이자 장이며 투자와 재테크는 물론이고 미래 성장과 로드맵을 위한 매우 중요한 자신의 신체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분리하고 절연해야 한다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스스로 그것을 자신에게 활용해야 그것에 대한 오용과 중독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지에 성장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자기 몸의 핸디캡에 대한 인식과 함께 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신체화의 방법을 모색한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이 자신의 신체의 연장인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체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물리적이지만, 심리적 웨어러블 디바이스 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