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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칼럼] 알파세대의 바퀴 벌레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미래에 사랑과 생존을 갈구하는 심리

등록일 2023년05월12일 18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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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변신>, 초판본 표지

 

 

 

영화 ‘설국 열차’에서 마지막 꼬리 칸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던 음식은 많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음식은 바로 바퀴벌레를 갈아 만든 일종의 양갱(묵)이었다. 꼬리 칸 사람들이 바퀴벌레를 먹어야 하는 설정을 통해 관객들은 봉준호 감독이 비참한 삶을 부각하려 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장면에서 궁금했던 것은 정작 엉뚱한 것이었다. 열차 안에 그렇게 많은 바퀴벌레가 무엇을 먹고 자랄 수 있는가였다. 바퀴벌레가 먹는 먹이는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집에 바퀴벌레가 꼭 붙어서 사는 이유다. 바퀴벌레는 사람과 붙어살지만, 사람의 음식에 기생해 살 뿐 도움을 주는 것은 없다. 음식이 부족할 텐데 설마 죽은 사람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

 

보통 바퀴벌레의 등장은 그 공간이 청결하지 않은 신호로 읽힌다. 더러움의 상징인 것이다. 물론, 영화 ‘설국 열차’에서 꼬리 칸 하층민들에게 '양갱'이 필수 식량으로 등장하고 있어서 누군가는 바퀴벌레가 영양학적으로 풍부한 단백질 등을 공급해 준다는 연구 결과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퀴벌레의 가치는 하층민, 그 가운데에서도 어디 다른 갈 곳이 없는 극빈층일 때, 그래서 이거라도 먹어야 할 때가 되어서야 재발견 되었을 뿐이다. 바퀴벌레가 식량으로 쓸모 있으려면 인간의 처지가 그만큼 비참해야 한다. 그제야 바퀴벌레는 그나마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

 

이런 알파 세대의 질문에 부모들은 전문 업체에 연락하겠다며 농담을 하지만, 이 답을 자식들은 서운하게 여긴다. 나오지 못하게 방에 가둔다는, 일명 '감금형' 답안 역시 서운함을 유발하기는 마찬가지다. 답안은 다양하다. 그래도 예쁘게 대하겠다고 하면 감동형, 사람으로 돌리겠다고 말하면 노력형, 그리고 드물겠지만, 같이 바퀴벌레가 되겠다고 하면 희생형 등등.

 

알파 세대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할 수 없고 자칫 본심을 들킬 수도 있다.

 

알파 세대 사이에서 이런 질문이 유행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린 그들이 가족에게 던지는 물음 속에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자화상이 담겨 있다. 벌레로 변하는 설정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벌레는 그래도 얌전한 축에 속한다. 최소한 바퀴벌레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퀴벌레는 더러운 생물체로 받아들여진다. 온갖 음습한 곳을 다 다니며 병균을 옮기는 존재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벌레 같은 존재감을 가진 것은 오래되었지만 알파 세대에게 이제 바퀴벌레가 뇌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것도 한참 꿈에 부풀어 있을 그들에게 말이다.

 

어린 그들은 왜 하필 벌레 가운데 바퀴벌레로 변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요즘 알파 세대의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현상이다. 바퀴벌레는 사람과 같이 산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같이 공유하는데 집안에 부스러기가 있으면 그것을 주식으로 삼기도 하지만 식탁의 음식에도 입을 댈 수 있는 게 바퀴벌레다. 오로지 사람만이 바퀴벌레가 침을 묻힌 사실을 모를 뿐이다. 같이 살지만 몰래 숨어서 음식만 축내는 존재. 진짜로 곤충인 '바퀴벌레'가 되는 게 아니라, 관계적으로 봤을 때 스스로를 가족 가운데 바퀴벌레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밥만 축내는 존재같이. 

 

물론 일부에서는 위에서 나온 '바퀴벌레 질문'을 해보는 것 자체가 가족문화가 달라진 거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이런 질문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심리라면 두 가지 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가족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랑을 받고 자랐거나 원만하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결국 가족의 사랑만이 의지할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질문을 던지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대답해야 한다. 질문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는 법이다. 질문하는 자는 권력자다. 그렇다면 권력의 중심축은 자녀에게, 알파 세대에게 있다. 부모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데 자신을 위한 답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에 드는 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자녀는 절대 강자일까? 집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집안에서만 그럴 수 있는 우물 안 개구리의 절박함이 아닐까 싶다. 가족 안에서는 왕자나 공주일지 모르지만, 그 밖에서 자녀들의 처지는 빈민을 넘어 투명 인간이 된다. 가족에게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물어보는 상황, 미래 세대에는 절박할 수 있다. 잉여적 존재로 무가치하게 간주 되던 그들이 이제 벌레가 된다. 밖에서 쓸모가 없는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와서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마는 집단주의 문화의 기운이 아직 농후하다. 아니 ‘설국 열차’의 버전으로 생각한다면,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어쩌면 바퀴벌레만도 못하지 않은가. 바퀴벌레는 식량으로라도 쓸 수가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실용적 도구화는 그들이 바라는 궁극의 목표가 아닐 것이다. 무가치하게 그대로 버려지려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 어떻게 살아남을까?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야 한다.

 

바퀴벌레는 끈질긴 생명력의 존재다. 밟아도 살아남은 곤충이다. 실제로 고생대를 거쳐 중생대 공룡 멸종기에도 바퀴벌레는 살아남았다. 공룡 멸종기는 물론이고 빙하기도에도 멸종하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모두 해충이라는 인식도 오류다. 4,000여 종의 바퀴벌레가 있고 그 가운데 40종의 바퀴벌레만 해충, 나머지는 자연환경에 이로운 곤충이다. 바퀴벌레처럼 오래 질기게 살아남고 싶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바퀴벌레처럼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갖고 싶다.

 

“중꺽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하지만, 단 하나 걸리는 점은 가족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복지와 사회적 시스템보다 가족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퀴벌레 가족처럼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국민의 현실이 알파 세대에게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마지막 꼬리 칸에 탄 바퀴벌레 한 쌍이 될지언정 살아남아야 한다.

 

“어느 날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

 

사랑하는 가족이여, 비록 바퀴벌레처럼 살아갈지라도 우리를 버리지 말아달라. 밟지 말아달라. 그들의 미래에 닥칠 더 큰 빙하기에도 마지막 사랑을 그대로 해달라. 이렇게 부탁하는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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