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어린이는 순수하고 맑은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괴물같은 표정으로 ’검둥이’를 외친다.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미국 현대 메이저리그 야구(MLB)에서 최초의 흑인 선수로 기록된 재키 로빈슨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42’를 보면 관중석에서 로빈슨의 모습을 보고 표정이 밝아지는 백인 어린이에 카메라를 집중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어린이 바로 옆에 있던 부친이 경기장으로 뛰어나오는 로빈슨을 향해 “검둥이(nigger)”라고 소리 지르는 등 인종차별 언사를 한다. 주변에 앉아있던 관중도 역시 비슷한 폭언을 한다. 이때 그 어린이도 로빈슨을 선수를 향해 분노를 표출한다. 나는 이것을 문화라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은 인종차별을 하고 차별 발언을 당연시하던 문화 속에 있었다. 그 어린이는 순수하고 착해 보였지만 그의 입술에서 “검둥이”라는 외침이 흘러나왔다.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문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오늘날 대한민국 공교육 문화도 그런 게 아닐까. 대한민국 공교육 문화는 학생들을 지나치게 보호한 나머지 교사들의 인권을 계속 침해하고 있다. 언론에서 연일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고, 그들을 향해 폭언하고,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보도가 나온다. 또한, 학부모들의 교사를 향한 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학생은 학생을 왕따시키고 학교폭력을 가한다. 이게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처벌당하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
“우리 애는 착해서 (학교에서) 그런 행동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대부분이겠지만 영화 ‘42’에서 본 어린이처럼 아이가 착해도 문화가 폭력과 폭행과 폭언으로 가득 차 있으면 착한 아이도 폭력과 폭행과 폭언을 하게 되거나 잠재적인 폭행자가 된다. 여기에 학교는 경쟁 풍토로 가득 차 있기에 아이들 안에는 남을 배려하는 정도가 아무래도 낮을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인은 지금 보이는 것보다 훨씬 착하다. 정말 착한 민족이다. 역사에서 그것이 보여졌다. 그래서 DNA에 심어진 착함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하지만 문화는 착하지 않다. 지금 한국 문화는 사실 악하다. 매우 악하다. 오직 나만 성공하면 되고 오직 나만 편하면 되는 악한 문화가 자리했다. 악한 문화 앞에 착한 것은 무용지물이다. DNA가 문화를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미국이 인종차별을 죄악시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100년쯤 걸렸다. 그 덕분에 흑인 대통령도 탄생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미국 사회에 많고 인종차별적 행동이 여기저기서 자행된다. 문화를 바꾸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학교 문화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그것에 대한 대안은 ‘대안적 학교(alternative school)’라고 생각한다. 대안적 학교는 공교육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공교육의 문화를 답습하지 않아도 된다. 기존 공교육의 악한 문화를 배격할 수 있다.
공교육에서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학생끼리 존중하지 않는데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공교육 예찬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그래도 정부가 하는 시스템 안에 있어야 불안하지 않다” “사회성이 키워지려면 공교육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현재 정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학생이 온전히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폭력적 사회성, 교사와 동료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성을 키우게 하려면 계속 공교육에 보내세요.”
나는 감히 말하는데 한국에 제대로 된 교육이 부활하려면 정부와 기업과 사회가 대안적 학교를 지지하고 지원하고 대안적 학교 졸업생들을 인정해줘야 한다. 물론 대안적 학교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기존 공교육을 받았던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문화를 새롭게 만들 확률은 대안적 학교가 더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대안적 학교가 한국 교육계 변화에 작은 불꽃이 되어 큰불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한다. 너무나 미안한 말이지만 다른 대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