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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아카데미는 백래시? 왜 오펜하이머를 선택했을까? [김헌식의 문화 스펙트럼]

-이민 소재를 넘어 보편적 소재와 연출로

등록일 2024년03월14일 19시5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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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심 기대를 했던 셀린 송, 송하영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감독상이나 각본상을 받지 못해 아쉬운 2024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생각을 해보면 워낙 다른 작품들이 쟁쟁했기 때문이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가 각본상을 받았는데 그에 상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법정 공방 속에서 드러나는 언사와 논리의 치열함은 영화라고 해도 프랑스 문학의 본질까지 생각하게 했다.

 

그렇지만 작품상의 기준에서 보면 ‘추락의 해부’도 ‘오펜하이머’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등 7개 부문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 법했다.

 

일단 이 영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과 오펜하이머의 갈등과 결단에 대해서 다뤘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에도 핵을 둘러싼 공방과 갈등이 있다는 점에서 미래에도 계속될 화두이다. 여기에 미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동안 꾸준하게 조명해온 놀란 감독의 연출력이 뒷받침되었다.

 

일정한 예술성에 어느 정도의 대중성과 함께 사회적 가치도 있으므로 아카데미가 좋아할 만한 영화다. 여기에는 백래시 효과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오펜하이머’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가여운 것들’의 엠마 스톤의 수상 장면에서 읽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연기상을 받으며 전임 수상자인 양자경(여우조연상)과 키 호이 콴(남우조연상)에게 눈길을 주지 않거나 손조차 잡으려 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2023 아카데미는 제작진은 물론 주요 배우가 아시아계였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게 7관왕의 영예를 몰아줬다. 작품상 감독상은 물론이고 여우 주연/조연상 그리고 남우조연상까지 받았다. 이 작품은 역시 이민세대에 관한 소재였다. 한동안 아카데미는 골든글로브와 달리 이민과 다문화 소재와 형식의 작품에 시상을 해왔다.

 

이러한 가운데 백인 배우들의 불만이 일정하게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기 자체로 평가받는 게 아닌 것을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35세의 엠마 스톤은 두 번째 수상이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처음으로 받는 상이니 더욱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수상에서 인종에 관한 문화적 무의식이 시상식에서 엠마 스톤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통해 일부 드러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 때문에 ‘패스트 라이브즈’가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고 작품상이나 각본상 후보에만 오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도 했다. 이른바 백래시(Backlash) 분위기다. 다만 이러한 백래시 정서는 아시아나 유럽 영화에만 영향을 미친 것을 아닐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cese)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은 작품상이나 감독상 나아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상 수상에도 실패했는데 오펜하이머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석유를 둘러싼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을 통해 미국의 부 축적 과정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미국인들에게는 불편한 영화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마블 시리즈는 영화가 아니라고 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다운 영화였다.

 

물론 대중성 면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도 또 하나의 아쉬움은 인디언 원주민 출신 릴리 글래드스턴이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한 점이었다. 중요한 것은 인종적인 차별을 넘어서 아카데미는 그들에게 편하고 익숙하고 가치가 있는 것을 중심으로 평가를 좋게 한다는 점이 다시 드러난 셈이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23년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흥행수익 1위를 차지한 바 있던 영화 ‘바비’가 아카데미상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조차 지명되지 못했다. 즉각 언론은 물론 일반 관객 사이에서는 감독 거윅과 배우 로비가 푸대접 즉 차별을 받았다는 지적이 비등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백인이다. 가부장제를 재치있고 풍자한 영화로 대중적 흥행까지 했는데 아카데미가 외면한 것이다.

 

더구나 켄 역의 남자 배우 라이언 고슬링은 연기상 후보에 올리니 정작 라이언 고슬링은 바비 없이 켄은 없다고까지 했다. 무엇보다 남성중심주의를 풍자한 영화 내용과 시상식 후보선정이 같았는데, 이를 두고 작가 조디 리퍼는 영화 속 대사를 이용해 ‘우리는 사실 가부장제를 아주 잘하고 있다.’라며 비꼬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무시는 없다면서 차별에 대해서 일축했다. 흥행했다거나 사랑을 받았다고 아카데미에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할리우드 리포터의 수석 편집자 레베카 선도 성차별이라고 하는 것도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성취는 간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색 인종 연기자에 대한 차별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한국계 배우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패스트 라이브즈’의 그레타 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훌륭한 연기력에 호평이 있었지만, 후보에 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크리틱스 초이스에서는 연기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여전히 흑인보다도 더 간과되기 쉬운 아시아 특히, 한국계 배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2024 아카데미 시상식은 나름의 작품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아카데미에서 좋아할 만한 수상작이 나왔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문화적 무의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대중적인 소구력과 사회적 그리고 인류애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를 만들어 도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평가되지 않을 때 아카데미에 대한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한국 콘텐츠도 오히려 역설적인 유색 인종과 아시아계의 어드벤티지를 활용하는 전략에서 벗어나는 노력은 여전해야 한다. 이민 소재의 작품이 언제까지나 먹힐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을 2024 아카데미는 잘 보여주었다. ‘미나리’나 ‘성난 사람들’, ‘패스트 라이브즈’를 넘어 ‘기생충’의 성과를 확장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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