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셔터스톡
침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있다.
때로는 침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를 말리게 할 때도 있지만, 침묵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다 참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도, 어른이 되면서 배우고 있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침묵이 필요한 시점을, 크게 세 지점으로 집어볼 수 있다. 상대방이 인지하고 있을 때와 명확하지 않을 때, 그리고 시점이 맞지 않을 때다. 하나씩 살펴보면 이렇다.
첫 번째 시점은, 상대방이 이미 인지하고 있을 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것인지, 상대방이 이미 아는 상황이다. 표정과 태도를 보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아이들이나 후배들이 이런 상황에 부닥칠 때가 대부분인데,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잔소리가 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해야 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반복해서 말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왜 그런 경우 있지 않나?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 계속 잔소리하면, 그 마음이 점점 옅어지고 나중에는 정당화하려는 마음마저 든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된다.
두 번째 시점은, 명확하지 않을 때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명확하지 않을 때 섣불리 내뱉는 말은, 오히려 내 발목을 잡게 된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제대로 사실 파악을 하지 않고 말부터 하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 말과 행동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고 하니, 더 말도 안 되는 말과 행동으로 덮으려고 한다. 일반 국민은 다 알고 있는데, 마치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누군가의 말만 듣고 그것이 마치 전부인 것으로 간주해서, 섣부르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분명 크게 당할 수 있다. 상식선에서 파악하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시점은, 때가 아닐 때다.
때가 아닐 때는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효과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필요한 시점에, 메시지를 전달해 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필요하지 않은 시점에 잘못 전달한 메시지는, 다시는 그와 관련된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한 마디 단어만 꺼내도 기겁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둘만 아는 표정에 묘한 정적이 흐르다가, 누군가 이내 분위기를 전환한다.
내가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스며들 때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필요한 말이라면, 그 사람이 듣든 듣지 않든, 그 사람에 판단에 맡기고 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말을 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마음에 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질색하는 말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말하는 사람은 좋은 의도 일진 모르지만, 상대방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된다. 뭐든 때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말도 그렇다. 그래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은 참 멋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