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셔터스톡
드라마에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주 정확한 스토리가 아닐 수는 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명확하다.
직장 초년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지하철 문이 열리자 급하게 뛰어간다. 딱 봐도 지각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달려가고 있는데, 길을 잃은 듯한 한 노인과 마주한다. 모두가 외면하고 지나가는데, 이 청년은 그 모습을 보고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다. 가던 발길을 돌려 상황을 묻고 어찌어찌해서 그 노인을 경찰에게 안내하고 가던 길을 다시 달려간다.
청년은 도착해야 할 시간보다 한참 늦게 도착한다.
그렇게 달려가도 간당간당했는데, 중간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당연히 늦을 수밖에. 그보다 더 문제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단순한 출근 지각이 아니라 중요한 미팅에 늦었다는 거다. 어떤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미팅이었는데, 당연히 불발될 수밖에. 망연자실한 청년은 어떻게든 회복하려고 사정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아쉬워하는 이 청년은, 자신의 오지랖을 원망할 뿐이었다. 자! 이 이야기가 여기서 그냥 마무리됐다면 이렇게까지 언급하지도 않았을 거다.
드라마의 묘미는? 반전이다.
이 청년이 경찰에 안내한 노인 덕분(?)이었다. 이 노인은 치매를 앓고 있었다. 집을 나온 이후 치매 증상이 일어나 방향을 잃고, 가던 길도 잃었던 거다. 이 노인을 찾은 아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경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경찰은 손사래를 치며, 이 노인을 잘 안내해 준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혹시 몰라 전화번호를 적어놨다며, 그 번호를 전달해 준다. 아들은 그 번호로 전화를 했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여기가 반전이다.
그 사람이 바로 미팅에 늦게 왔던 청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인의 아들이 바로, 늦게 왔다는 이유로 거래를 파기한 거래처 대표였던 거다. 다시 만나자고 해서, 재회한다. 결과는? 당연히 거래 성사뿐만 아니라, 이후 이뤄지는 모든 거래를 이 청년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한다. 이 청년은 시간을 맞춰 만났어도 어떻게 될지 모를 거래를, 노인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성사시키게 되었다. 그에 더해, 앞으로의 거래까지 보장받게 되었다. 너무 짜릿한 전개였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일까?
현실에서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때도 생각해 봤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봤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냥 갔을 거다. 출근 지각이었다면 모를까, 중요한 미팅이었다면 그냥 갔을 거다. 내 머릿속에서 그 미팅을 잘 마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사실 앞으로도 장담할 수 없다. 이 청년처럼 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큰 일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 청년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냥 착한 마음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돌이켜 봤다. ‘마음의 경중(輕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문제를 더 무겁게 여겼느냐는 말이다. 내가 미팅에 늦지 않게 가는 것과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저울에 달았을 때, 노인의 추가 내려가는 것을 청년은 빠르게 판단했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상처는, 손톱에 난 작은 것도 크게 보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타인의 상처는, 아무리 크게 난 것도 남 일이라 생각할 때가 많다. 언제나 나의 추가, 더 무겁다고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타인이 짊어지고 있는 추의 무게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내가 아니면 도와줄 수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내가 거저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웃으로 대해줬던 것처럼, 나도 이웃으로 대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